작가 김훈은 밥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썼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밥벌이의 지겨움' 중에서)
저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삶의 우선순위는 '밥-일-꿈'이다.
먹고살기 위해 할 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일하면서 꿈꿀 수 있는 사람은 더 행복하다.
델리는 종교의 성지다.
힌두교 최대 사원 악샤르담이 있고, 이슬람 왕궁 붉은성이 있고, 힌두와 이슬람을 넘어 독립을 꿈꾸는 시크교가 있고, 가톨릭 교회와 불교 사원, 종파를 초월한 바하이 교가 있다. 시크교는 인도 사회에서 힌두와 이슬람에 비해 여전히 마이너리티이지만 상징적인 면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터번을 두른 모습에서부터 외양으로 차별화되는 시크교도는 자신들을 전사(warrior)라고 부른다. 그들은 무굴과 영국에 저항했고, 힌두에 맞서 독자적인 국가 건설을 주장했다. 힌두교가 대세인 인도에서 시크교도가 절반이 넘는 펀자브 지역은 여전히 독립의지가 강하다. 한마디로 시크는 힌두도, 이슬람도 아닌, 독자적인 종교다.
델리에서 시크교도 카란지트 씨를 만났다.
그는 도심 중심부에서 약간 벗어난 장푸라역 근처에서 3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 집안의 아버지이고 할아버지다. 일상 속에서 늘 터번을 두르고 있진 않지만 온 가족 모두 시크교도다.
-시크교는 이슬람인가?
이런 식의 질문은 대단히 무례한 것이다.
왜냐 하면 질문은 기본을 알고 해야 하는 것이 예의지, 막무가내로 해대는 것은 무례다. 종교를 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 카란지트는 대답했다.
=전혀 다르다.(Totally no!).
-그러면 힌두?
=전혀(Never). 우리는 구루를 따른다.
이방인의 무식을 무례로 받아들이지 않은 그의 친절한 설명에 감사드리며...
시크(sikkh)는 '제자'라는 뜻인데 그들이 따르는 스승을 구루(guru)라고 한다.
시크교를 창시한 첫 번째 그루는 나나크(1469~1538),
그는 "나는 힌두도 아니고, 무슬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저마다 믿는 신이 다를 뿐 결국 신은 모두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슬람의 유일신 사상과는 다른 시각이다.
힌두교의 카스트 제도도 반대했다.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크가 숭배하는 구루는 10대째 이어지고 있다.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처럼.
카란지트 씨는 여러 생각 말고 '황금사원'을 꼭 가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차선책도 제시했다.
시크교의 성지인 펀자브 주 암리차르 황금사원(하르만디르 사히브)에 가지 못할 경우 델리의 시크교 사원 구루드와라 방글라 사히브로 가면 된다고 했다. Gurudwara는 Door to the Guru, 구루로 통하는 문, 스승께 이르는 문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시크교사원이다. 방글라 사히브는 문을 통과한 뒤에 나타나는 공간, 집의 개념이다. 이곳에는 시크교도들로 차고 넘친다. 본산은 아니지만 시크교의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사원 내부에는 황금으로 장식한 예배당이 있고, 육신과 영혼을 정화하는 연못이 있다. 제일 중요한 것, 밥을 공짜로 준다.
내가 믿지 않는 말 1순위는 '언제 밥 한번 먹자'는 말이다.
이런 말 하는 사람 열에 아홉은 자기가 한 말 기억 못 한다. 진짜 밥 먹을 생각한 사람은 날짜를 잡는다. 혼밥은 외로운 일, 함께 밥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구루드와라 방글라 사히브에는 하루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는다. 대단한 일이다. 남녀노소, 종교, 신분, 국적 가리지 않는다. 이곳에 오면 모두가 식구가 된다. 이 낯선 식구들을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양파를 까고, 감자를 썰고, 밀가루 반죽을 하고, 짜파티를 굽고, 커리를 끓인다.
맞은편에 앉은 시크가 내게 묻는다.
-어디서?
=코리아... 사우스 코리아.
-배고프지?
=......
-우리는 형제다.
이 낯선 사람은 왜 내게 부라더(brother)란 호칭을 붙이는가.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종교를 뛰어넘는다.
함께 먹는다는 건 함께 나눈다는 것이다. 독식과 탐욕 아닌 나눔과 배려다. 낯선 도시 초면의 사람들과 커리에 짜파티를 찍어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식구(食口)란 무엇인가?
빈식판이 채워지고,
가득 담긴 음식을 비우고,
허기가 채워지면서 떠오르는 얼굴들...
식구(食口),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은 진저리 나게 목이 메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