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의 나라에 솟은 이슬람 브랜드

꾸툽 미나르

by Spero

BTS 리더 RM은 일전에 스페인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Q&A를 주고받았다.


Q : 니넨 이제 K라는 수식어가 지겹지도 않냐?

A : 천만에! K-POP은 프리미엄 라벨이야, 명품이 언제 지겨운 거 봤냐?

(El Pais, 20230315)


유쾌한 청년의 통쾌한 촌철살인에 보는 사람이 상쾌했다.


힌두교도가 절대 다수인 인도에서 이슬람 유적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짧은 소견이지만 인도 내 메이드 인 이슬람은 명품 브랜드다.

모디 정부가 메이드 인 차이나를 패러디해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정책으로 세계의 제조업을 이끌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곤 있지만 메이드 인 이슬람의 경지까진...글쎄?

그렇다면 아그라의 타지 마할은 인도 내 메이드 인 이슬람의 대표상품인가?

아니다. 인도 곳곳에는 이슬람의 손으로 탄생한 명작이 부지기수다.

델리의 꾸툽 미나르는 아그라의 타지 마할, 자이푸르의 하와 마할이다.

미나르(Minar)는 미나레트(Minaret), 이슬람 예배시간을 알리는 탑으로 사막의 등대 같은 역할을 한다.

사막에 등대라니?

이와 관련해 내겐 이런 경험이 있다.


뉴 밀레니엄을 앞둔 1999년 나는 우즈베키스탄의 고도(古都) 부하라에 들렀다.

부하라는 '사원'이라는 뜻,

도시 전체가 하나의 이슬람 사원이었다. 오아시스 도심 한복판에 웅장한 탑이 자리하고 있었다. 칼란 미나레트였다. 칼란은 페르시아어로 '거대한', 미나레트는 탑을 뜻한다. 예배시간을 전하는 '무에진'이 탑 꼭대기에 올라가 "알라는 위대하시다~"를 소리 높이 외치면 이슬람교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예배를 올린다. 부하라의 칼란 미나레트는 여기에 또 한 가지 기능이 있었다. 그것은 비단 이슬람교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미나레트의 아랍어 어원은 마나라, '빛을 두는 곳'이란 의미, 그러니까 굳이 번역하자면 광탑(光塔)쯤 되겠다.

길 떠난 사람에게 사막은 바다와 비슷한 공간이다.

어둠이 내리면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구분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불 밝힌 미나레트는 사막을 건너는 카라반들에게 등대 같은 역할을 했다.

탑에서 나오는 불빛을 기준으로 방향을 정하고 사막을 건너 오아시스 도시에 도착했던 것이다.

부하라 칼란 미나레트


부하라의 칼란 미나레트는 이슬람교도들의 성스러운 예배시갼 알림터이면서 동시에 신혼부부의 야외 촬영장 그리고 때때로 아이들의 축구장이기도 하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셈이다. 따라서 미나레트가 있다는 건 이땅은 이슬람 땅이란 얘기다.


인도의 종교 분포 통계에 따르면 힌두교 80%, 이슬람 14%,

한마디로 두 종교 간 양적 격차는 쨉이 안 되는 수준인데 인도에는 이슬람 유적이 생각보다 많다.

바로 그 힌두의 나라 인도, 그 중심지 델리에도 미나레트가 있다.

델리의 명물 꾸툽 미나르는 오아시스 도시 부하라의 그 미나레트와 같은 건축물이지만 기능은 달랐다.

델리의 꾸툽 미나르는 예배시간을 알리는 시계탑 혹은 사막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등대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니었다. 일종의 승전기념탑이다.

델리 술탄국의 첫 군주 꾸툽 웃 딘 에이백이 힌두 왕조를 궤멸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힌두의 나라에 세운 이슬람의 깃발인 셈이다.

높이 72.5m, 인도에 현존하는 벽돌로 세운 가장 높은 탑이다. 이곳은 천년 가까워 오는 오늘날까지 힌두교도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침략의 역설이다.

입장료가 내국인은 40루피(650원)인데 외국인은 무려 600루피(만원 정도)이다.

열다섯 배나 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가치가 있을까?

있다!

이곳에는 공존의 가치가 있다.

정복과 피정복, 지배와 피지배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온 인도 사람들은 꾸툽 미나르를 자신들의 선조가 세운 자랑스러운 건축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힌두의 나라 인도 속 이슬람 문화는 마치 하나처럼 서로 스며들어 있는 것같다. 마치 간다라 미술 양식에 담긴 동서양의 혼합된 이미지를 볼 때처럼. 그것은 미국 여행을 하면서 인디언 보호구역에 갔을 때 가졌던 느낌과는 다른 것이었다. 콜럼버스적 시각에서는 미 대륙이 개척의 역사였겠지만, 인디안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침략의 역사였다. 그런데 인도는 느낌이 다르다. 힌두 속 이슬람, 이슬람 속 힌두가 카레라이스처럼 그냥 하나로 비벼져 있다. 이슬람 양식에 산스크리트어가 새겨져 있는 건축물처럼 말이다.

꾸툽 미나르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유적군에는 이슬람, 힌두, 불교, 가톨릭 등 종파를 초월한 순례자들의 발길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벽돌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천 년의 숨결 그대로다.


723년, 지금으로부터 1,300년 전 혜초 스님이 인도 곳곳을 순례하셨다.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다섯개의 인도(오천축국)를 둘러보며 써내려간 기록의 흔적이 곳곳에서 잡힐 듯하다. 스님께서 인도 구석구석을 순례하며 사라진 불교의 영광에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이후 힌두교가 영원불멸한 것은 아니었다. 스님의 입적 5백 년 뒤 이슬람 침략의 역사는 힌두교 말살을 시도했다. '칼이냐, 코란이냐' 유일신의 절대신앙으로 요구한 외세에 맞서 힌두교는 속수무책이었다. 힌두교는 절멸했을까? 아니올시다. 인도에서 힌두교도는 여전히 열에 여덟이다. 힌두스탄으로 진격한 이슬람의 역사는 꾸툽 미나르로 상징되는 노예왕조 침략을 시작으로 무굴제국에 이르기까지 무려 5백 년을 지속한다. 의문이 생긴다. 그 침략의 세월을 견뎌낸 힌두의 힘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답을 공존의 가치에서 찾아보고 싶었다.

나는 델리 곳곳에 자리한 힌두, 이슬람, 시크, 바하이 사원들을 대부분 둘러보았다. 그 곳에서 공존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힌두교는 이교도에 저항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흡수했다.

'칼이냐, 코란이냐' 유일신 정서와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가히 만신(萬神)의 종교답다.

적대적 세력이 세운 브랜드를 명품으로 만든 힘은 아마도 '공존'이었을 것이다.


내로남불, 내 편이 아니면 적, 적폐와 카르텔이 반목하는 양자택일의 사회로부터

불과 일곱 시간 비행해 도착한 땅에서 본 것은,

'공존의 가치'였다.

keyword
팔로워 46
이전 03화한낮에 달빛광장을 거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