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드니 촉의 소매치기는 인도인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하다. 소지품 관리에 신경 쓰도록 하자!
인도행에 앞서 관련 여행서적을 탐독하면서 읽었던 찬드니 촉 소개 내용이 신경 쓰였다.
코넛 플레이스 '똥총 사건'까지 겹친 터라 갈까 말까, 솔직히 좀 주저했었다.
이럴 때마다 늘 방향키를 잡아주는 이 분의 명언!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그렇다면? 가는 거지!
메트로 엘로우 라인을 타고 찬드니 촉 역 5번 출구로 나가니 노숙 가족인듯한 한 식구가 나를 맞는다. 행인을 올려다보며 손을 내미는 모습은 세계 공통이다. 대체로 이럴 때는 황급한 걸음으로 비껴지나간다. 어른의 모습보다 아이의 눈길이 뒤통수를 잡아당겨도 애써 모른 체한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가, 내가 낯설어진다.
가까스로 교행이 가능한 좁은 골목길이 짧게 이어졌고 그곳을 통과하자 대로가 나타났다.
찬드니 촉.
왕비를 위해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 자한 시대 17세기 때 만들어진 올드델리 최대 시장이다.
보석가게에서부터 주방용품, 면직물상, 장난감가게, 길거리 음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 점포들이 촘촘히 들어서 있다.
이 수많은 인파 속에 나를 노리고 있는 코넛 플레이스의 그분(?)이 계실는지도...
이런 트라우마에 시달리기 시작하면 여행은 끝이다.
낯선 곳에 오면 풍경을 눈에 담아야 하는데, 시선이 분산되기 시작하면 여행은 산만해진다.
이럴 땐 의도적으로 눈높이를 달리해야 한다. 앙각보다 부감으로 눈높이에서부터 우위를 점해야 한다. 따라서 올려보지 말고 굽어보아야 한다.
나는 이 도시에 구걸하러 온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걷지 말고 릭샤를 타자!
다시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널 때 낙타를 타듯.
"한 바퀴 도는 데 얼마?"
물으니,
"500루피"
하는 말투가 여행객 상대 멘트다.
"그냥 걸을래"
했더니
"400"
하며 따라붙는다.
"200!"
하니까,
"300"
한다.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것 같은 더위,
날리는 먼지와 오가는 거친 목소리,
그보다 더 큰 릭샤와 오토바이 경적소리,
시장에 가면 삶이 보인다.
흡사 황학동 중고시장의 확장판 같은 분위기의 찬드니 촉은 물건보다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어딜 가나 시장 한복판은 일상의 중심이다.
권력자들은 그래서 시장을 자주 들르나 보다.
동대문, 남대문, 서문, 자갈치... 그 뒤에 붙는 시장은 권력이란 배를 띄우기도, 가라앉히기도 한다.
인도를 통치한 이슬람 황제 샤 자한은 그의 딸 자하나라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시장을 건설하라!
황제의 궁 붉은성(Red Fort) 앞에 건설된 찬드니 촉,
힌디어로 찬드(Chand)는 달, 촉(Chowk)은 광장,
민중들에게 권력을 과시하려 한 '달빛 광장'은 결론적으로 황제에겐 치명적이었다.
후계자 자리를 쟁취하려는 형제들의 권력투쟁 끝에
아우(아우랑제브)는 형(다라)을 처단하고 그의 시신을 '달빛광장'에 전시한다.
민초들은 그러나 약자 편이었다.
다라를 지지한 저잣거리의 갑남을녀는 두려움을 울음과 탄식으로 대신하고,
그 흐느낌에 두려움을 느낀 아우랑제브는 형을 참수한 뒤 머리를 아버지 샤 자한에게 보낸다.
게임 종료를 알리는 미래권력의 메시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종말을 예견한 것이었다.
권력의 시작은 화려하나 왜 그 끝은 늘 이리도 처참한가.
무굴제국은 아우랑제브를 끝으로 사실상 역사 저편으로 페이드 아웃, 그 자리를 동인도 회사가 차지하게 되면서 인도 역사의 또 다른 챕터가 열린다.
왁자지껄 호객하는 상인들, 흥정하는 손님들, 셀카 찍는 관광객들,
누가 찬드니 촉을 두렵다고 했는가?
여행지에 대한 호불호는 현장에서 체험한 결과에 비례한다.
그림엽서 같은 풍경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지지만 소매치기를 당할지언정 다시 가고 싶은 곳이 있다.
찬드니 촉은 그런 곳이다.
삶의 끝자락에서 후회하게 되는 것은,
내가 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지 못한 일 때문이다.
한낮에 거니는 달빛광장, 찬드니 촉에 오길 참 잘했다.
소신공양을 요구하는 부처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땡중이 되기보단
외눈박이 거인들의 동굴로 걸어 들어가는 오디세우스가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