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공항에서 만난 망국의 수도승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by Spero

돌아올 때 공항은 떠날 때와 사뭇 다르다.

분리-입문-귀환의 서사를 이루는 영웅 신화 속 주인공처럼.

뉴델리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3 터미널,

모든 게 낯설었던 17일 전 입국할 때의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

앞만 보고 출구를 통과했던 그때와는 달리 나는 수시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마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파도 앞에 선 해변의 길손처럼.

트로이를 떠나 이타카로 돌아가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이런 것이었을까?

면세점 구역을 벗어나자 베다 신화에 나오는 태양신 수리야가 관능미를 내뿜고 있다.

남성인 듯 여성인 듯 분간키 어려운 간다라 풍 표정은 늘 나를 홀린다.

수도승인 듯 승려 한 분께서 셀카를 찍고 있다.

피사체가 원하는 배경이 무지하게 클 땐 사정없이 팔을 내밀어야만 한다.

가제트 형사처럼 팔을 쑤욱 늘릴 수도 없는 일이고 이거야 참...

각이 잘 안 잡히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카메라를 건넨다.

잘됐다.

서로 찍어주기 상부상조는 이방인을 하나로 엮는다.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의 동병상련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말을 섞는다.


-어디서?

=코리아...사우스 코리아, 당신은?(왜 난 늘 이런 식인가, 코리아 한 다음 꼭 사우스를 한번 더 붙인다)

-네팔, 사실은(actually) 티벳...인도에서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백그라운드가 금세 감이 잡힌다.

아마도 티베트 망명정부의 승려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인도는 처음?

=그렇다. 맥그로드 간즈를 보지 못하고 가는 게 아쉽다.


승려의 입가에 수리야 같은 미소가 번진다.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남겨 두는 것은 좋은 것이다.


미당의 싯구가 떠오른다.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해녀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서정주 '시론' 중에서


스친 인연의 승려께서 이번 여행에 화룡점정을 찍어주셨다.


"남겨 두는 것은 좋은 것이다."


Save the best for last.


사우스 코리아보다 33배 넓은 인도 땅에서의 짧은 체류, 스쳐 지난 찰나의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어느 날, 불현듯, 다시 가게 될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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