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은 없다. 평화가 곧 길이다." (간디)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투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외신의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비폭력으로 폭력을 이겨낸 마하트마 간디가 있었다면 어떤 얘길 했을까?
인도 화폐에는 예외 없이 간디의 얼굴이 있다.
10루피, 50루피, 100루피...모든 지폐에 단 한 사람, 간디뿐이다.
이황, 이이, 세종대왕, 신사임당 등등 지폐 단위마다 제각각 다른 우리와 차이가 난다.
인도=간디, 비교 불가다.
그래서 나는 궁금했다.
어릴 때 소심했고, 젊을 때 방탕했으며, 때때로 거짓을 일삼았고, 목적(독립)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영국과의 타협)을 가리지 않기도 했던 복잡다단한 한 인간의 정신세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간디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델리의 버킷 리스트 0순위는 그래서 간디박물관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을 찾긴 쉽지 않았다.
누구나 그의 얼굴이 그려진 지폐를 쓰고 있었지만, 누구나 다 그를 기념하는 곳을 쉽게 알려주진 못했다.
광화문 한복판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있는 것처럼 델리에서 간디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간디박물관(National Gandhi Museum)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구글맵은 메트로 바이올렛 라인을 타고 델리 게이트(Delhi Gate) 하차, 4번 출구로 나가서 750m 걸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했지만 델리 길 찾기는 지도 그대로 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이럴 경우 사람을 통한 방법이 유일한데 길을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얘들 인도인 맞아? 싶을 정도로 학생들도 몰랐다.
'위대한 영혼'(마하트마)께서 통곡하시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습식사우나 수증기 속에서 편백나무벤치 찾듯 온몸을 땀에 적시며 찾아갔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이정표가 될만한 표식이 없었다. 출입구는 조촐했다. 기념관은 검소했다.
'위대한 영혼'(마하트마)이라는 수식어가 보여주듯, 간디는 '인도의 국부'라는 한계를 넘어선다.
박물관의 콘텐츠는 '비폭력 저항'의 상징이 어떻게 구체화됐는지를 한 땀 한 땀 보여준다.
그의 성장, 저항, 독립,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디테일이 촘촘히 전시되어 있다.
소심했던 학창시절, 흔들렸던 청년시기, 번민했던 독립과정, 조건없던 희생정신, 이곳은 한 인간의 개인사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티끌 같았던 한 인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거듭나고, 공감을 얻고, 마침내 불가능의 영역 한복판에서 어떻게 꿈을 이뤄내는가 하는 인간정신의 다큐멘터리를 보여준다. 출생과 어린시절, 영국유학,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주, 비폭력의 신념 사티아그라하, 아시아인 등록법에 저항한 트란스발 행진, 인도국민회의 의장 선출, 영국 전매사업에 저항한 소금행진, 종파를 초월한 하니의 인도 염원, 그리고 힌두교도에 의한 암살...
전시실 한편에서 듣는 그의 마지막 심장소리는 그 어떤 고동보다 크다.
인구수만큼이나 그들이 모시는 신이 존재한다는 인도,
80%가 넘는다는 힌두교 신자들과 함께 공존하는 이슬람과 시크, 그리고 마이너리티가 된 불교까지...종교의 멜팅포트인 인도에서 간디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료했다.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My life is my message.)"
그렇다면 그의 삶에 기반한 그의 메시지는 종교를 뛰어넘어 비폭력을 통한 평화를 뜻하는 것일 텐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공방을 보라. 뉴스가 전하는 헤드라인은 여전히 종교갈등으로 촉발되는 무력충돌, 그로 인한 희생이다. 비폭력으로 폭력을 이겨낸 성자의 물레 돌리기는 지속가능한 평화인가, 아니면, 되풀이되는 폭력의 일상을 상징할 뿐인가. 간디는 말했다.
"진실이 신이다(Truth is God)."
이 말이 진실이라면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는 신은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