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눈이 내렸다. 첫눈인데, 폭설이다. 눈길은 히말라야 길도 걸었지만, 못 걸을 정도의 길은 별로 없었다. 시작하는 곳에 눈이 많아 표지판이나 이정표를 찾기 힘들다. 겨우 화살표를 찾아서 다음 표식을 찾는데 온 신경이 섰다.
오늘은 서해랑 길 97코스를 시작하는데, 그다음 코스까지 갈 수 있으면 갈 생각이다.
계단을 오르는 길에 눈이 쌓였다.
생각보다는 눈이 많고 산길은 발이 깊게 빠진다.
폭설이 내릴 줄 예상치 못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일단은 운동화가 눈에 젖으면 양발까지 젖어 걷기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산으로 오르기 전에 마트에서 비닐봉지 두 개를 구해 운동화 위에 신었다. 푹푹 빠지는 눈 속에 비닐은 처음에는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조심해서 올라도 얼마지않아 비닐 바닥이 찢어졌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미끄러진다.
미끄러우니까 신발 젖는 것보다 안 넘어지려는 것에 신경이 옮겨진다. 계속 걸으니까 양말까지 젖은 것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발은 젖었지만 움직이니까 덜 추운데, 장갑을 낀 손은 눈이 들어와서 손이 시리다. 겨울 설산 산행에서 방수가 되는 장갑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온통 설국이다.
대설은 간밤에 내린 것이다.
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는 무게를 이기지 못해 쳐져 있다. 하얀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도시도 흰 세상이다.
눈 맞은 나무들은 눈꽃이 각양각색이다. 걷는 산길은 온갖 눈꽃이 만발한 산행이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산길에 발자국이 나 있다. 두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다. 깊은 눈 속에 한 사람이 먼저 가면, 뒷사람이 앞사람이 간 발자국을 따라 걷는 것 같다.
처음에는 돌아서 내려갈 생각도 했지만, 앞서간 사람이 있어 계속 갈 생각을 한다. 그 정도로 산길에는 눈이 심하게 쌓여 처음 만나는 심한 폭설이다.
멀리 정자가 보인다. 눈 속에 정자가 홀로 서 있는 것이 추울 것 같다.
아무도 없는 정자에서 멀리 도심의 높은 아파트를 내려다본다. 온통 흰 세상이 아름답고 평화로워 보이고 눈길도 이제 걷는 것이 익숙해졌다.
다시 출발한 길에서 앞으로 걸어가야 할 먼 산이 보인다.
간간이 내리던 눈이 그치고 먼 곳에는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날이 맑아 오니 눈꽃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이런 신기한 눈꽃들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산길에서 깃대봉이 눈 속에 홀로 서 있는 모양을 뒤돌아봤다.
산등선에 멀리 서 있는 철탑이 보인다. 오늘 가는 코스가 저곳은 아니기를 바라면서 걷는다.
가는 길옆의 윤형 철조망에도 눈이 내렸다.
아직 산으로 올라가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선명하다.
그런데 맑아 오던 날이 흐려지면서 눈이 심하게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따라 올라가는 발자국이 눈으로 지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따라 걸었다. 인터넷에 인천의 11월 폭설이 100년 만이라고 한다.
길옆에 눈 맞은 벤치가 있다. 많이 쌓인 눈을 보면서 앉아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앞서가는 발자국의 주인들이 보인다. 아저씨가 앞서고 그 뒤를 아주머니가 따라 오른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 걸었다.
눈은 계속 내리고 산 정상에 정자가 보인다.
그곳을 올라 두 사람은 정자 밑에서 쉬고 나는 이제 혼자서 걷는다. 지금부터는 혼자 길을 찾아서 가야 했다.
다시 가야 할 등 선이 보인다. 힘든 설산 산길이지만 말없이 걸었다.
신위에 신은 비닐은 초입에서 찢겨 그대로 달려 있고, 손발은 물에 모두 젖었다. 힘들어 눈꽃도 감상할 여유가 없다. 그래도 내려다보이는 시내의 풍광은 눈에 들어왔다.
중수봉을 지날 때 눈이 쌓인 봉수대와
표지석이 있고 앉아서 쉴 의자도 있지만, 내리는 눈을 맞고 쉴 마음이 아니다.
계속 걸어서 가는 길에는 나무들이 눈 무게로 길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다가 나무가 부러진 것이 보인다. 눈이 무거워 그 무게로 영하로 내려갈 때, 나무가 얼어 바람이 불면 순간적으로 결 따라 부러진다고 한다.
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더 미끄러지기 쉬운 길이고 눈길 하산길은 힘이 많이 들었다. 한 번 미끄러지고 조심하는데 다시 미끄러진다. 눈이 쌓여서 지나간 흔적이 보이지 않고 산길 아래 방향으로 힘들게 내려갔다. 서해랑 길 표식은 눈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피고개 산을 지나서 본격적인 내리막이다.
여러 번 미끄러지니까 내리막이 겁이 났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내려온 하산길이다.
오늘은 한 코스로 트레킹을 마칠 생각이다. 이렇게 무사히 온 것이 감사할 정도였던 하루였다. 서해랑 길에서 가장 어려운 코스에서 폭설이 내린 것이다. 그것이 올해의 첫눈이면서 너무 많이 와서 어려운 등산길이었다. 인천 시내의 높지 않은 산이어서 가능했지, 깊은 산이면 큰 사고의 위험성도 있었다. 눈은 지금도 내리고 오늘 밤에도 온다고 한다. 일단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