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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 있는 작은 마을

by 안종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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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 앞밭 가운데 크리스마스트리가 조용히 서 있다.

큰 별 아래 작은 불빛들이 밝아오는 아침에 반짝인다. 빛나는 트리의 불빛이 작은 마을을 보라는 것 같다. 이 밭은 마을에서 두 번째 나이 많은 사환 노인이 여름내 혼자 일하는 고추 밭이다.

교회와 떨어져 있는 트리는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을 간다. 나중에 들어보니 치매 끼 있는 노인이 객지 사는 아들에게 밭 가운데 트리를 세우라고 한 것이다. 노인이 믿는 예수 탄생을 지나는 사람에 더 알리고 싶은 것이다.


여기 조용한 마을, 조상에서 물려받은 땅을 가꾸며 사는 사람들이다. 자기 땅에 소중하게 생각하고 어릴 때는 할아버지가 그 땅에서 일하는 것을 봤고, 나이 들어 아버지와 같이 일하던 그 땅이다. 그렇게 세월과 같이 살아온 그 땅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결을 느껴지고, 아련한 그리움과 정이 묻어 있다. 그 땅은 늘 이곳에 있었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늘 같이 살아온 땅 들이다.

지금 작은 마을 앞은 가을걷이가 끝나고 빈 고춧대만 보이고 황량하다.


이른 봄에 이곳을 지날 때면 새걸 씨가 트럭 타고 들에 나가고, 수목 씨는 큰 트럭 타로 앞밭들을 갈고 있었다. 또 조금 더 가면 마을에서 제일 나이 많은 노인 부성 씨가 리어카를 끌고 부지런히 오가던 곳이다. 그런 풍경을 수십 년 동안 보아서 작은 마을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거기에 몇 년 전에 귀농한 박 씨도 외국인 일꾼을 데리고 부지런히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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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마을은 열 가구 정도이다. 마을 주변의 땅들을 가꾸면서 사는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거의 이곳에 나서 지금까지 농사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마을 이장인 새걸 씨는 여러 사람 일을 챙겨주는 분이고 토지를 가장 많이 붙인다. 수목 씨는 새걸 씨 보다 서너 살 많아서 늘 웃으면서 트럭 터 없는 집에 토지를 갈아 주는 친절한 사람이다. 가장 나이 많은 부성 노인은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춥고”, “덥고”, “더럽고”, “힘들고”를 가리지 않고 일만 해온 노인이다. 노인은 새벽 앞이 보이면 집을 나와, 해가 넘어가면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다.

귀농한 박 씨는 몸이 불편해서 일 못하는 사람이나 객지에 나간 사람들 토지를 붙이면서 마을에 홀로 와서 있다. 치매 끼 있는 노인이나 다른 노인들은 적은 토지에서 여름내 일하는 마을이었다. 작은 마을, 많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부지런히 사는 사람들이다.


지난해 겨울 어느 날, 늘 웃고 다니던 수목 씨가 머리가 아프다며 병원에 갔다. 인근 큰 도시 병원에서 힘든다고 서울로 보냈다고 한다. 큰 병원에 입원하고는 가족도 못 알아보는 중환자가 되어서 다시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고 보름 정도 지나서 새걸 씨도 갑자기 말을 못 해 급하게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고 누워있다. 그다음 귀농한 박 씨도 아프다면 병원으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수목 씨와 새걸 씨는 칠십 대이고, 박 씨는 환갑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여름내 농사 잘하고 가을걷이를 하고서 일어난 일이다.

작은 마을에 가장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되니까, 동네 사람들이 만나면 “아픈데 없냐”가 인사가 되었다. 그래도 나이 가장 많은 부성 노인은 추운 겨울에도 들판을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올봄에는 늘 들에서 일해야 할 사람들이 모두 병원에 가고, 부성 노인만 여전히 리어카를 끌고 다닌다. 지금까지 농사한 땅을 그대로 짓는 억척을 보이는 부성 노인 외에는 병원에 간 사람들의 토지는 읍내나 이웃 마을 사람이 경작하기 시작했다. 간간이 보이는 낯선 사람들이 작은 마을에 나그네처럼 낮에 일하고 밤에는 자기 집으로 갔다.

새로운 보이는 사람들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부성 어른은 여전히 리어카를 끌고 다녔다.

병원에 간 세 사람은 이제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작년 여름, 작은 마을을 지날 때 익숙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낯선 동네 같았다. 늘 이 작은 마을에선 수목 씨와 새걸 씨는 서로 농사를 잘 지으려 말없이 경쟁했었다. 오랫동안 서로를 의식하면서 살았는데, 이곳을 떠나니까 둘 간의 치열한 비교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서로 잘 하려고 한 것도 의미 없고 허무하다. 이제는 병을 먼저 안 지려고 경쟁하는지도 모른다.

작은 마을에서 농사를 천직으로 봄이면 씨뿌리고, 여름내 땀 흘려서 가을에 걷어 들이며 평생을 살았다.


그런데 작은 마을에서 여름내 일하던 부성 노인도 가을이 되어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 몇 달 있으면 온다는 소문이다. 소문은 작은 마을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은 마음으로 사는 부성 노인의 생각일 것이다. 들판에는 남보다 일찍 수확하던 부성 노인 콩밭이 아직 그대로 있다. 콩은 주인을 기다리는 것 같고, 오지 못하는 부성 노인은 누워서도 이 콩밭을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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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부모가 떠나면 자식이 이어서 농사짓던 작은 마을에 떠난 사람들 자리를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 돌아가시면 그 자식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돌아오는 사람도 있지만, 농사에 정이 붙지 않는다.


작은 마을은 조용한 마을이 되었다. 마을에는 아직 따지 않은 감들이 달려있다. 높아서 힘없어 따지 못하던 감나무는 이제 쳐다볼 사람도 없다. 감나무에 온종일 까치들이 매달려 있다.

내년 봄에도 싹은 돋을 것이다. 작은 마을에도 파종할 것이다. 하는 사람은 예전에 사람이 아니다. 멀리 읍내나 이웃 마을에서 외국 노동자들이 데리고 공사하듯이 몰려와 파종하고 또 수확해 갈 것이다.


조용한 마을에 적막감마저 돈다. 치매 끼 있는 사환 노인의 밭에 크리스마스트리가 홀로 서 있다. 사환 노인도 지금은 집에 있지만, 멀지 않아 요양원으로 객지에 있는 자식들이 모실 것이다. 작은 마을에 새로운 사람이 올지, 빈집이 늘어날지 알 수가 없다.

밭 가운데 홀로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작은 마을 앞에서 오랫동안 반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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