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추위가 겨울을 알리더니, 오늘은 바람도 불지 않고 따뜻하다.
그냥 괭이와 그릇을 가지고 집을 나섰다. 초겨울이지만 양지바른 곳에 냉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나섰다. 햇볕이 잘 드는 산 밑, 배추밭에 물이 잘 빠지라고 테두리를 깊게 고랑을 만든 곳이 있었다.
그곳 깊은 고랑에 냉이가 보였다. 주위에 모든 것들이 얼어서 잎이나 가지는 말라 있다. 겨우내 땅속에 있다가 이른 봄에 나올 것이다.
그런데 냉이는 아직 잎이 살아있다. 살아있는 잎도 가장자리는 말랐고 냉이 속잎은 아직 푸릇하다. 이 냉이 잎도 겨울이 깊어지면 얼어서 마를 것이고, 봄이 오면 가장 먼저 푸른 잎을 내밀 것이다. 냉이는 보통 이른 봄에 캐지만, 추운 겨울에도 싹만 보이면 나물이 된다. 긴 추위를 견딘 냉이가 향은 더 좋다고 한다. .
여럿 날 추워 땅이 얼어 힘들 줄 알았는데, 아직 땅은 얼지 않았다.
이번에 냉이 캐려고 호미 대신 작은 괭이를 가져갔다. 냉이 뿌리가 땅에 깊이 있기에 괭이가 더 좋을 것 같다.
냉이가 모여 있는 곳을 찾았다. 겉잎은 말라 있고 잎들이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냉이다. 잎이 많이 말라 있고, 큰 것들을 중심으로 작은 냉이들이 모여 있는 경우가 모여 있는 곳이 있다. 큰 것이 씨앗이 떨어져 주변에 냉이 군락을 만들어 놓았다.
이런 냉이를 괭이로 바로 옆에 깊게 파서 흙과 같이 냉이 뿌리를 캐는 것이다. 잎이 무성해서 뿌리가 굵을 것 같은 것도 캐면 별로인 것이 있고, 잎은 별로 보이지 않지만 캐면 뿌리가 굵은 몇 년 묵은 냉일 때도 있다. 냉이는 뿌리까지 먹는 나물로 오히려 뿌리가 냉이의 향과 맛을 낸다.
보기에도 오래 묵어 보이는 냉이를 괭이로 깊게 파서 흙과 같이 캐내면서 “뚝” 하는 소리가 난다. 이런 경우는 깊게 내려간 냉이 뿌리가 중간에 끊어진 것이다. 어떤 경우는 “쑥” 하는 소리가 나면, 냉이 뿌리가 상하지 않고 뽑혔다는 소리이다.
며칠 춥다가 포근한 기운을 느끼니, 봄날 아지랑이 같은 그리움 찾아 들로 왔다. 냉이 찾아온 것은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이 떠오르는 곳으로 왔다. 냉이 있는 들판, 엄마와 같이 냉이 캐던 것이 그립고 마음속에 따뜻한 기운을 느낀는 곳이다. 그 추억이 그리움이 되어 남아 있다.
오래전 봄날에 엄마와 함께 냉이 캐려 저수지 밑에 갔었다. 그다음에도 한두 번 더 갔었다. 아직 추운 바람이 부는 저수지 둑 밑에서 냉이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엄마에게 “이거 냉이냐” 물어보면서 냉이를 배웠다. 비슷한 풀들이 많아서 혼돈되었다. 나중에는 냉이와 비슷한 잎이 넓고 뿌리도 더 실한 들냉이도 구별하였다. 엄마가 몇 번이나 알려 준 것이다. 지금도 냉이를 어떻게 생긴 것이라 생각은 떠오르지 않지만, 냉이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때 냉이 캐려 같이 가자고 했을 때 선뜻 나서 주던 엄마, 아마 냉이는 엄마에게도 옛날의 추억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들에게 엄마와 같이 간 여행만큼이나 추억과 즐거움으로 남았다. 아들은 아직도 그때의 추억을 잊지 못하고 엄마가 그리워 냉이 캐러 온 것이다. 내가 여기 온 것은 엄마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찾으러 온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가 보이면 남들 앞에서 곁으로 가지 않았다. 엄마가 못생겼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또래에서 가장 못생긴 순난을 닮은 것 같아서였다. 그때는 엄마 결혼사진에 순난이와 비슷한 것 같았다.
나이 들어서도 그렇게 살갑게 엄마에게 대하지 못했고, 돌아가실 무렵 “엄마 사랑해”를 하고 싶어서도 못하고서는 돌아가시고 난 뒤, 오랫동안 후회했었다.
이제 엄마가 없으니까 그 못생겼다고 생각하기도 했던 엄마 얼굴이 그립다. 머리에 그려지는 엄마의 얼굴은 너무 잘생긴,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보고 푼 얼굴이 되었다.
엄마와 같이 캐던 냉이의 추억은 이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엄마, 엄마 얼굴은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고, 주름진 그 얼굴이 가장 아름답다. 엄마는 언제나 나를 좋아했고, 늘 내 편이었다.
그 그리움이 더하는 것은 엄마 같은 내 편이 없어서 그런 것일 것이다. 지금 주변에 내 편은 찾을 수 없다. 그때 그런 엄마가 내 편인 걸 못 느꼈다. 지나고 나니 마음으로 알았고, 엄마가 너무 그립다.
나이는 들었지만, 엄마 같은 내 편을 찾고 싶다. 그러면 나도 영원히 그편이 되리라
겉잎이 말라 있는 냉이는 얼마지않아 가져온 그릇에 가득하다.
주변에 아직 냉이가 보이지만 다음날에 또 그리움이 찾아오면, 오기로 하고 돌아왔다. 냉이를 장만하는 것이 캐는 것보다 더 시간이 오래다.
마른 겉잎을 뜯어내면 안쪽에 작은 잎들이 나온다. 그것과 이어지는 뿌리 부근을 다듬고 뿌리에 붙은 흙과 잔가지들을 모두 떼어 낸다. 냉이를 하나씩 손질하는데 상당한 시간이다. 캘 때는 쓸 것 같은 것도, 다듬을 때 버리는 것이 상당하다.
냉이는 몇 번씩 씻어야 흙이 말끔히 없어진다.
봄 내음은 아니지만 향긋한 냉이 무침이나 생 콩가루를 묻힌 시원한 냉잇국을 끓일 것이다. 이렇게 초겨울 잠깐 포근한 날에 그리움 따라 들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