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루아. 스무 해의 불꽃

성급한 젊음이 남긴 불멸의 해답

by 진주

서론

에바리스뜨 갈루아(Évariste Galois, 1811~1832)는 21세라는 짧은 생애 동안, 수학과 정치, 인간의 운명을 동시에 뒤흔든 인물이었다. 그는 체제에 맞서 성급히 싸우다 요절했고, 죽기 전날 밤에 서둘러 남긴 메모가 오늘날 대수학의 혁명을 열었다. 이 글은 그의 생애와 성격, 성급함의 불행이 낳은 역설적 유산을 따라가며, 현대 노인의 성급함과의 연결을 모색한다.

젊은 날의 삶과 가족

갈루아는 프랑스 파리 근교 부르라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니콜라 갈루아는 자유주의 성향의 시장으로, 왕당파와의 갈등 속에 억울하게 정치적 모함을 당해 자살했다. 이는 어린 갈루아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어머니 아델레 마리는 라틴어에 능통한 교양인이었고, 아들에게 고전 교육을 직접 가르쳤다. 자유와 정의에 대한 이상, 지적 독립심은 부모의 삶과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는 15세에 수학을 접하면서 삶의 진로가 달라졌다. 고전 학문에는 흥미를 잃었지만, 수학 문제집과 저술에 깊이 몰입하며 독학으로 실력을 키웠다. 그러나 이 열정은 제도권 교육과 자주 충돌했다. 1829년, 갈루아는 프랑스 최고 학문기관인 에콜 폴리테크니크 입학시험에 두 번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면접 과정에서 시험관들의 권위를 무시하고 직설적으로 답해 반감을 샀다. 결국 그는 폴리테크니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덜 명망 있는 에콜 노르말에 입학했다.

성격과 기질, 그리고 불이익

갈루아는 직설적이고 성급한 성격으로 인해 많은 불이익을 겪었다. 논문은 혁신적이었으나, 메모처럼 급하게 정리한 원고는 심사위원들에게 난해하게만 보였고, 학계는 그를 외면했다. 그는 동료들과 협력하기보다는 날카로운 비판을 쏟아내며 고립되었고, 정치적 언행은 투옥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불운과 불이익 속에서, 그는 제도에 굴복하지 않는 정신과 수학적 통찰을 더욱 벼려나갔다.

성급함의 불행

갈루아의 삶은 성급함의 연속이었다.

정치적 성급함 : 그는 왕정에 맞서다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감옥에서조차 불같은 글을 써냈다.

학문적 성급 함: 그는 수학적 진리를 서두르다 미완의 논문을 제출했고,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과학에서 가장 가치 있는 책은 저자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분명히 밝힌 책이다. 난관을 숨길 때 독자에게 가장 큰 해를 끼친다.”


인간관계의 성급함 : 사랑 문제에서 연적과 결투를 벌였고,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섰다. 결국 1832년 5월, 21세의 나이에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임종 직전 그는 동생에게 말했다. “울지 마, 알프레드! 나는 스무 살에 죽기 위해 온 힘이 필요하다.”


그의 성급함은 불행을 불러왔지만, 죽기 전날 밤 서둘러 남긴 편지는 갈루아 이론의 씨앗이 되었고, 대수학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불멸의 유산으로 남았다.

질병과 시대적 배경

갈루아는 허약한 체질이었고, 감옥 생활과 정치적 격동은 그의 건강을 더욱 해쳤다. 그러나 나폴레옹 몰락 이후 불안정한 사회는 동시에 혁명가와 지식인의 교류를 가능케 했다. 억압과 투옥은 단점이었지만, 그 속에서 그는 사유를 깊이 하고 아이디어를 다듬을 시간을 얻기도 했다.

업적과 군 개념

갈루아의 가장 큰 업적은 사후에 빛을 본 갈루아 이론이다. 그는 방정식 해법을 군(Group) 개념으로 통찰해, 대수학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시켰다.


## 군(Group)이란?

일상으로 비유하면, 군은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조작의 집합이다. 예를 들어, 정사각형을 90도씩 돌리거나 뒤집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자. 이 모든 조작은 일정한 규칙을 따르며, 어떤 두 조작을 이어서 해도 다시 같은 집합 안에 머문다. 이렇게 “규칙적으로 닫혀 있는 연산의 모임”을 군이라고 한다.

갈루아는 방정식의 근을 찾는 문제를,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그 근들 사이에서 가능한 대칭적 변환의 집합, 즉 군의 구조로 이해했다. 이는 마치 문제를 직접 풀지 않고, 그 문제를 지배하는 규칙의 세계를 발견한 것이다. 그의 작업은 후대 수학자들에 의해 계승되어, 오늘날 현대 수학, 암호학, 이론물리학의 토대가 되었다.

노인의 성급함과의 연결

갈루아의 결투가 보여준 성급함은 오늘날 노인의 삶 속에서도 되풀이된다. 몇 분 늦어도 화를 내고, 서비스 대신 현금을 요구하며, 병원에 당장 가자고 재촉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갈루아가 제도와 권위 앞에서 보였던 조급함과 닮아 있다. 또 어떤 분은 배우자의 죽음을 두고 “나는 복이 없는 사람”이라며 절망하거나, 반대로 “국가와 선생님 덕분에 호강한다”며 감사한다. 이처럼 노인의 성급함은 갈등과 불신을 낳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실과 불안을 견디며 삶을 지켜내려는 몸부림이다. 갈루아가 성급함 속에서 불멸의 수학을 남겼듯, 어르신들의 성급함 또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절박한 목소리다.


갈루아의 생애는 성급함이 어떻게 한 인간을 불행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 성급한 흔적이 후대에는 진리의 씨앗이 되었다.


“과학은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갈루아의 이 말처럼, 삶의 여정도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끝없는 탐구와 성급한 시도 속에 있다. 노인의 성급함도, 젊은 천재의 성급함도, 결국은 불완전한 인간이 존재를 지켜내려는 방정식의 또 다른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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