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의 빛, 아버지의 침묵

아버지의 말, 나의 길

by 진주

나이가 들어가며, 아버지를 꼭 닮은 큰 남동생의 얼굴에서 오래전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동생은 열다섯, 나는 스물두 살이었다. 동생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나는 동생들보다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 대가로 오랜 시간 '맏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유언 속에 살아왔다. 비록 선택의 여지없이 남겨진 죽음이었지만, 유언보다 더 큰 유산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도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가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스무날 남짓 병상에 누워 계셨다. 나는 매일 저녁 성경을 읽어드렸다. 그분의 영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아버지는 신부님께 세례를 받으셨고, 그날 이후 우리 가족은 믿음의 길을 함께 걷게 되었다. 그렇게 마지막을 준비하시던 아버지의 말씀들은 내게 유언이 되었다. “내일 우리 집 가는 날이다.” “엄마를 부탁한다.” 그 말씀을 남기신 다음 날, 5월 13일 저녁 9시, 아버지는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마지막 인사로 “나 먼저 간다”라고 말씀하시며 먼 길을 떠나셨다. 그날의 마지막 말씀, “엄마를 부탁한다”는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그 시절 나는 간호학을 공부하며 신앙 안에서 죽음의 의미를 고민하던 기독교인이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죽음은 육체를 떠나는 영혼의 이탈'이라는 기독교적 관념이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았고, 이는 이후 내 신앙과 삶의 중심이 되었다.

아버지의 삶은 그 자체로 빛이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셨지만 서울로 올라와 주경야독으로 중·고등학교를 마치셨고, 배운 기술로 양초 제조 공장을 운영하며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셨다. 새벽 별을 보고 나가 달빛을 따라 돌아오셨고, 자가용 대신 화물 자전거를 타시던 그 뒷모습은 지금도 가슴 아린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정직과 성실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셨던 분, 남쪽에 빛을 비추라는 의미의 '남광양초'는 아버지의 정직한 노동의 상징이었다.

그 빛은 또한 나누고 베푸는 삶이었다. 겨울이면 파라핀이 녹는 화롯불 곁에 장작이 이글이글 타올랐고, “삐끄덕, 삐익” 대문이 조용히 열릴 때마다 낯선 손님들이 들어왔다. 걸인이라 불리던 그들은 외모와 달리 따뜻했고, 그들의 손등은 삶의 고단함으로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우리 집은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머물다 가는 작은 쉼터였고, 아버지는 그렇게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나누던 분이셨다. 전기가 귀하던 시절, 아버지의 기술은 많은 이들에게 '빛'이 되었다. “자고 일어나면 돈이 발 달려 들어오더라”라고 웃으셨지만, 곧이어 “언젠가부터 돈은 스스로 걸어 나가더니 늘 제자리더구나”라고 하셨다. 이 말들은 지금까지도 내 삶을 지탱하는 가치가 되었다. 아버지께선 탐욕보다 노동의 대가를 존중했고, 그런 삶의 태도가 내게 남겨진 가장 값진 유산이었다.

육 남매를 마루에 세워놓고 호통 한 번이 전부였던 자상한 아버지는 딸에게 유독 엄격하셨다. 여자라고 바지를 입지 못하게 하셨고, 방학 중에도 아침 9시 이전에는 반드시 일어나야 했다. 식사 때는 밥 한 공기 이상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규율이었지만, '잠꾸러기'나 '식충이'로 살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셨다. “여자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신부 수업을 받다가 시집가서 현모양처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시면서도, “가장 존경받는 직업은 의사와 교사다”라는 말도 자주 하셨다. 어쩌면 내게 그런 길을 가길 바라셨는지도 모른다.

나는 34년간 교사로 일했고, 명예퇴직 후에는 간호사로 다시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의 꿈이던 교사의 길도 걸었고, 내 꿈이던 간호사의 길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엄마를 부탁한다”는 유언 덕분에 엄마와 나는 좋은 벗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주판알을 튕기며 장부를 넘기시던 아버지의 손, 여름에도 긴 바지를 걷고 이마에 땀을 흘리며 기계 옆을 지키시던 그 모습이 그립다. 그리고 문득, 가시고기 아버지가 떠오른다. 어미 없이 알을 지키며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침입자로부터 둥지를 지키다 새끼들이 독립하면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그 아비 물고기처럼, 아버지의 사랑은 조용하지만 강인하게 내 삶에 깊이 스며 있다. 많이 받기만 하고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유언과 유산, 그 모든 것이 결국 아버지의 사랑이었음을. 이제 그 사랑을 품고 남겨주신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내가 드릴 수 있는 유일한 감사이다. 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삶의 빛은 내일의 아이들에게 이어질 한 줄기 희망이 되어, 오늘도 내 길을 걸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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