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가위로 그린 방정식,컷아웃

마티스의 《재즈》와 노년의 삶

by 진주

 앙리 마티스는 1869년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방의 작은 도시 르 카토-캉브레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곡물을 다루는 상인이었고, 어머니는 옷감과 페인트 가게를 운영했다. 예술가의 집안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그는 법률가가 될 것처럼 보였으나, 병상에서 뜻밖의 전환을 맞이했다. 충수염 수술로 긴 요양에 들어갔을 때, 어머니가 물감을 건네주었다. 그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붓을 들었고, 그 순간이 예술로 향하는 시작이었다.그는 말했다.


“예술가는 탐험가다. 그는 자기 발견과 자신의 절차에 대한 관찰로 시작해야 한다. 그 후 그는 어떠한 제약도 느끼지 말아야 한다.”


마티스의 삶은 이 말의 증거였다.

1941년, 그는 암 수술과 낙상으로 쇠약해져 침상과 휠체어에 갇히는 삶을 맞았다. 손에 붓을 쥘 힘도 잃어버렸다. 많은 이들은 그의 예술이 거기서 끝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티스는 그 벽을 다른 방식으로 넘어섰다. 그는 가위를 손에 쥐었다. 색지를 칠해 자르고 붙이는 단순한 동작.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대체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였다. 그는 이를 컷아웃(cut-out), 곧 “가위로 그린다”라 불렀다. 병상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앉아, 눈앞의 벽에 색면을 배열해 나갔다. 신체는 제약을 받았지만, 색과 형태는 오히려 더 자유로워졌다.

 그는 한때 “나는 색과 형태의 춤을 본다”라고 말했다. 붓 대신 가위가 춤추고, 병실은 곧 스튜디오가 되었다. 침상은 절망의 자리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의 무대가 되었다. 신체적 한계를 받아들이는 대신, 그는 그것을 다른 창작의 절차로 변환시켰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 해결이 아니라, 절망을 승화한 정신적 결단이었다.

 1947년, 그는 《재즈》를 세상에 내놓았다. 서커스, 곡예사, 신화적 인물들이 단순한 색면으로 살아났다.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이카루스〉다. 파란 하늘 속 검은 인물은 추락하고 있었지만, 가슴에는 붉은 심장이 불타고, 주위에는 노란 별들이 흩날렸다.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있는 장면. 노년의 역설, 쇠약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이었다.

 마티스의 삶을 돌아보면, 청년기에 그린 〈춤(La Danse)〉과 노년의 〈이카루스〉는 서로 다른 시대와 도구 속에서도 같은 리듬을 품고 있었다. 붓으로 그린 젊은 날의 춤은 생명의 환희를 담았고, 가위로 잘라낸 노년의 이카루스는 추락 속에서도 불타는 심장을 보여주었다. 그는 평생을 통해 결국 ‘리듬의 예술가’였던 것이다.

 나는 현장에서 한 어르신을 떠올린다. 어르신은 낮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죽을 약을 가져오려면 오세요. 자식들에게 피해만 주고 싶지 않다.”

그 말속에는 삶을 포기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는 깊은 체념이 숨어 있었다. 자녀들이 모두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다니며 자신의 희생이 결실을 맺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내가 짐만 된다”는 죄책감에 눌려 계셨다. 소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근력이 약해져 가던 시기, 우리는 소파와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근력운동 교육, 정서적 지지, 방문요양팀의 영양·식이 관리, 방문목욕팀과 함께한 족욕·신체관찰, 그리고 복지용구 지원을 이어갔다. 그 결과 부종은 호전되었고, 일상도 조금씩 유지되었다. 그러나 근력의 약화는 완전히 막을 수 없었다. 결국 침대에서 일어서다 낙상해 고관절 골절로 입원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의 상태이다. 죽음은 인간의 뜻대로 앞당길 수도, 늦출 수도 없는 법이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기에, 떠나는 순간 역시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다가온다. 그렇다면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비관하거나, 서둘러 끝내려 하거나,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신 어르신의 마음은, 체념과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꺼지지 않는 심장의 불빛을 조용히 지키고 계신 것이라 믿는다.

 마티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러시아 출신 조수 '르디 파랑(Lydia Delectorskaya)'은 그의 곁에서 색지를 칠하고, 오린 종이를 벽에 붙여주었다. 아이디어를 말로 설명하면 그녀가 그것을 화면 위에 옮겼다. 딸 마르그리트와 아들 피에르 역시 곁을 지켜주었고, 니스 근교 방스의 햇빛은 병상에서도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병실은 스튜디오가 되었고, 침대와 휠체어는 작업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정신적 절망을 신체적 제약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시켰다. 도움과 사랑을 발판으로, 무력감은 창조의 에너지로 승화되었다.

 노년의 끝자락에서 그는 또 하나의 위대한 작업을 남겼다. 방스의 '로사리오 성당(Chapel of the Rosary, 1949~51)'이다. 병상에서 스케치를 하고, 조수들의 도움을 받아 스테인드글라스를 완성했다. 그는 이 성당을 두고 “내 인생 최고의 걸작”이라 불렀다. 죽음을 준비하는 공간조차 그는 빛과 색으로 가득 채웠다. 어둠 앞에서도, 그는 끝내 색채를 놓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영감이 오기를 기다리지 마라. 영감은 열중할 때 찾아온다.”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돌봄도 그렇다. 열중할 때 변화가 찾아오고, 사랑이 있을 때 회복이 가능하다. 낙상과 병은 마티스의 몸을 구속했지만, 가위는 그를 자유롭게 했다. 어르신의 쇠약은 삶을 꺾었지만, 통합 돌봄은 그분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마티스의 방정식은 단순하다.

쇠약 – 자유 + 단순화 + 사랑 = 새로운 창조.

《재즈》 속 가위 자국들은 노년의 답이었다. 추락 속에서도 별빛은 흩날리고, 심장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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