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과 공감

버나딘 에바리스토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을 읽고

by 북남북녀

퍼넬러피의 열여섯 번째 생일, 점식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가 생물학적 의미에서 넌 우리 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녀의 부모는 고아원에서 퍼넬러피를 데려왔다.

퍼넬러피는 자신을 자식처럼 키운 부모가 사랑한다고 말하길 기다린다

그러나 부모는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데도 평소처럼 식사를 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들려주지 않는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침실로 뛰어올라가 흐느낀다.

어머니가 올라와 위로해 주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아버지는 일정대로 골프를 치러나가고

어머니는 코미디 라디오 프로를 들으며 코바늘 뜨기를 한다

퍼넬러피가 울고 있는 침실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부모는 감정을 드러내는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퍼넬러피는 부모 몰래 몇 달 동안 쓰러져 혼자 운다.

대학에 진학하여 결혼하고, 교사가 되고,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다.

그녀 안에 쩍 갈라진 아픔의 깊은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에서 퍼넬러피 이야기

수전 손택은 태어난 후 부모와 살지 않고 보모에 의해 키워졌다. 수전 손택은 부모가 있는 중국으로 함께 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중국으로 가고 싶은 수전 손택의 마음을 중국 아이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행동을 교정하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영리한 수전 손택은 어머니가 자신의 마음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금세 눈치챈다.

수전 손택의 저항정신과 야심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스콧 펙은 아이가 기대하는 것을 훼방하는 부모의 행동을 악이라고 말한다.

아이가 소풍을 간다고 내내 신나 있다.

소풍 전 날 아이의 방이 지저분하다는 이유로 부모가 외출금지령을 내린다.

아이는 고대하던 소풍을 가지 못한다.

울고 소리쳐도 부모는 동요하지 않는다.

울고 소리치는 아이의 행동만 버릇이 없을 뿐이다.


퍼넬러피 부모는 마음이 아플 이야기(입양)를 해준 후 왜 그녀의 감정을 헤아려 주지 않는 걸까.

수전 손택의 어머니는 왜 어린아이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 걸까.

(부모와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보이지 않는 걸까)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 속 <해티> 이야기에서 아이들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다.

아이들이 괴롭힘 당한 일을 울면서 이야기하면 아이들의 아버지는 말한다.

그런 문제로 울면서 나한테 오지 말라고.

아버지는 노예제 시대를 거쳐 왔고 그 시대에 동생이 불에 타 죽는 것을 경험했다.

노예였을 때 그들은 아무 권리가 없었다. 이유 없는 죽음도 많았다.

분노가 가득한 아버지의 마음에 아이들의 괴롭힘 정도는 장난 같은 일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괴로운 처지에 놓였더라도 아버지는 자신이 가장 괴롭다.

아이들의 괴로움에 공감할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는 공감해 주는 부모의 역할이 크다.

공감하지 못하는 부모는 커다란 상흔을 아이에게 남길 수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그것이 아이들에게도 최선은 아닐 거다.

아이들의 시선에서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고 해 보자.

공감의 문제는 무지에서도 올 수 있다.

아니면 <해티>에서의 아버지처럼 자신 안의 상처에 골몰해 있느라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볼 여력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어떤 상처와 분노가 마음 안에 있든지 그것은 지나간 일이다. 과거다. 이미 죽은 것이다.

유령이 현재를 돌아다니며 훼방하게 하지 말자.

아이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여 어둠으로 끌어들이는 일에 동조하지 말자.

악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내 부주의함일 수 있다

의도적이든지 그렇지 않든지.




지금까지 경험에 의하면


아이는 사랑받기 위해 던진다. 긁는다. 발로 찬다.


아이는 사랑할 때 꼬집는다. 깨문다. 돌진한다.


아이가 졸릴 때 구른다. 뛴다. 밟는다.


아이가 심심할 때


엄마, 엄마 우유가 쏟아졌어 철벅철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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