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날 아침과 에릭 호퍼

by 북남북녀

고양이를 원하는 소리에게는 펫시터 미미 선물이 도착했다. 노란색 옷 입은 미미와 함께 고양이 세 마리, 강아지 두 마리, 애견 대기장에 애견미용을 위한 자잘한 물품까지 들어 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 눈뜨자마자 트리 아래를 살핀 소리는 선물을 발견하고서 '나 조금 착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줬네'라고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차분한 말투와는 다르게 선물을 살피는 소리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눈은 반짝였다. 환희에 가득 차 있는 얼굴이었다.


며칠 전 나도는 아침에 일어나 꿈을 꿨다고 말했다. 무슨 꿈이냐 물으니 일각고래 꿈이라고 대답했다. 갈색 포장지를 뜯으니 택배 송장이 그대로 붙어 있는 상자가 보인다. 소리가 왜 택배 송장이 붙어 있는지 궁금해한다. 직장에서 택배를 받아 포장해온 남편을 보며 나는 눈을 찌릿한다. 산타 할아버지도 택배로 선물 샀나 봐, 말하는데 나도가 아빠가라고 대답한다. 소리는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살피느라 택배 송장은 잊어버린 눈치다. 상자를 열자 일각고래 피규어가 나온다. 나도의 손이 얼른 일각고래를 잡는다. 일각고래는 돌출된 이빨 하나가 송곳처럼 나와 있다. 위험하다고 판단해 사주지 않았는데 꿈까지 꿨다는 나도의 말에 송곳처럼 나와 있는 부분이 부드럽다는 상품설명을 읽고 구매했다. 뾰족한 부분이 내 눈에는 여전히 위험해 보이는데 나도는 손에서 일각고래를 놓지 않는다.


소리는 식탁에 펫시터 미미를 올려두고 인형놀이 중이다. 나도와 남편은 고래 피규어를 펼쳐놓은 작은방에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거실 한복판에 누워 서서히 밝아오는 밖을 보고 있다가 패딩을 발견했다. 베란다 의자에 걸쳐 놓은 분홍 패딩에는 주황색 음식 얼룩이 묻어 있다. 아랫단 지퍼 부위 둥그렇게 흘러내린 얼룩을 보면서 이거 언제 묻은 거야, 소리에게 물으니 '몰라'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장 얼룩을 어떻게 하지 못해 베란다 의자 위에 올려둔 것이 이틀 전인데 잊어버리고 있었다. 손으로 조물조물해야지, 세탁기에 넣어야지 생각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주문을 거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었다.



에릭 호퍼의 <길 위의 철학자>를 읽었다. 이 사람 책을 더 읽고 싶어서 가슴이 떨린다.


“농장에서 일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적응 불능자가 인간 사회에서 맡는 특이한 역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뒤 내 머릿속에 숨어 있던 문장으로 그것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에릭 호퍼는 일곱 살 때 어머니와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그 사고로 에릭 호퍼는 실명이 되고 어머니는 2년 후 사망했다. 열다섯 살 때 시력이 돌아왔다. 일시적 시력 회복으로 여겨 집중적으로 책을 읽었다. 아버지 사망 후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시작하며 독학으로 읽고 쓰고 연구했다. 돈도 지식도 사랑도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떠돌이 노동자 생활은 자신의 길을 찾는 내적인 여행이기도 했다.


‘내 머릿속에 숨어 있던 문장으로 그것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졌다’는 구절은 캘리포니아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일거리를 쫓아다니는 떠돌이 군단의 일원으로 노동할 때 나왔다. 크리스마스에 발견한 선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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