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연

by 북남북녀

몸져누웠다는 엄마의 연락을 받고 지하철을 탄 것은 오후 두 시였다. 반차를 쓰고 온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책 한 권과 지갑, 휴대전화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엄마 목소리는 한동안 밝았다. 혼자 살고 싶다고 말해온 엄마는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1인 가구 생활을 시작했다. 텔레비전과 4인 식탁, 싱글 침대로 꽉 찬 방에서 엄마의 얼굴은 환해졌다. 친구분들이 방문해 언제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한 사람 분량의 살림만 한다는 것에 엄마는 꽤 만족한 눈치였다.


박스와 플라스틱, 캔 고철이 쌓여있는 복도를 지나 엄마 집에 들어섰다. 머리카락이 하얀 분이 옆에 앉아계신다. 얼마 전보다도 더 마른 듯한 엄마는 침대에 누워있다.

“아이고, 먼 데서 뭐 하러 와. 이따가 보살 아줌마가 와서 뭘 하기는 할 거야. 일요일에 같이 떡국 끓여먹었는데, 속이 안 좋다고 그 이후로 계속 먹지를 못하더라고." 머리카락 하얀 분이 나를 보자 말한다.


오늘이 목요일이니 하루에 한 끼 겨우 먹는 엄마의 영양상태가 얼마나 형편없을지 한숨이 나왔다. “속이 안 좋아 먹을 수가 있어야지. 먹기만 하면 토하고. 어제 병원에 가서 수액 맞아서 그나마 나은데. 어지러워서 죽겠어.” 기력 없는 목소리로 엄마가 말한다. 오면서 사 온 죽과 이온음료, 사탕과 초콜릿을 식탁 위에 둔다. 엄마는 아무것도 못 먹겠다며 "보살 아줌마 올 거야. 오면 좀 낫겠지."라고 말하고 누워만 있다.


저녁때가 가까울 무렵 허리가 구부정한 보살 아줌마와 카키색 점퍼를 입은 엄마 친구분이 들어온다.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엄마는 잠에 들고 친구분들은 식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아파도 밥은 꼭 먹는데, 쟤는 곡기를 딱 끊어. 사람이 그래서 견디겠냐고"

“예전부터 그랬잖아. 내가 물어본 적이 있는데 어릴 때 하도 배를 곯아서 지금도 잘 못 먹겠데”


방 한구석에서 책을 들고 있던 나는, 친구분들의 말소리에 한 사람으로서의 엄마를 생각한다. 나와는 상관없이 자신만의 역사와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한 사람.


굵은소금과 매운 고춧가루, 미나리 한 단과 대야에 든 물, 식칼을 필요로 하는 보살 아줌마의 행동이 시작됐다. 몇 가지의 물건을 들고 집안을 왔다 갔다 한 보살 아줌마는 “얘, 들어온 게 있기는 있네. 옷이 보여”

“그때 양평네가 준 그 하얀 옷 있잖아. 그거 냉장고 위에 있으니까 버려줘”

보살 아줌마는 하얀색 옷을 찾아 탁탁 쳤고 친구분들은 이제 괜찮을 거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각자의 역사와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 그 속에 응어리져 있는 것들. 엄마의 응어리는 엄마의 방식대로 풀어야 하리라. 보살 아줌마의 행위 뒤에 엄마는 친구분들과 어울려 누룽지를 조금 먹을 수 있었다.


“오늘 밤에는 언니가 올 거야. 내일은 막내가 와서 잔대." “뭐 하러 와. 안 와도 되는데.” 기력 없이 침대에 누우며 엄마가 대답한다. 언니와 다음날 병원에 간 엄마는 수액을 한 번 더 맞았고, 누룽지에서 찹쌀죽으로, 밥으로 서서히 회복됐다.


주말에 전화를 거니 친구분들이 와 있다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에는 다시 힘이 돌아와 있다.

“영양소가 부족해도 엄마, 악몽을 꿔. 하루에 한 끼는 꼭 밥으로 먹어야 해.”

“알겠어, 알겠어.” 대답하고 바쁜 듯한 엄마는 전화를 끊는다.



*사진은 엄마가 휴대전화로 보내준 엄마네 집 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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