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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Apr 25. 2022

하루

여섯 시까지 도착 예정인 새벽 배송이 한 시에 문 앞에 놓여있다는 알림음이 울렸다.

우유, 계란, 호박, 콩나물, 파프리카를 냉장고에 넣는데, “엄마, 엄마, 팔베개.”


양팔을 십자 형태로 뻗고 천장을 바라본다.(양팔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아이들의 존재감) 십자가라면 행복한 십자가라고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리처드 라이트의 <미국의 아들>을 읽다가 중단했다. 공황상태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히며 피 흘리는 새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았다. (새장이라는 세상 속에서,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것들로 파괴되어 가는 사람) 의도치 않은 살인이 일어났을 때 책을 덮었다. 겨울이 오면 다시 읽자. 이 가련한 사람을 읽어내기에는 눈이 부시게 화사한 계절이다.


두툼한 이불빨래에도 쌓여 있는 설거지에도 방긋방긋 웃게 된다. 핸드폰에 문제가 일어나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문의하면서도 얼굴에는 옅은 웃음. 내 웃음에 아이의 웃음소리는 더 높고 커졌다. 방실방실, 방긋방긋.


즈삣즈삣, 끼끼끼, 끼악끼악, 찌찌찌, 삐릿삐릿,

포롱포롱 반가운 화음에 맞춰 걷는 걸음. 자작나무 이파리들이 떠오르는 해 속에서 반짝인다. 싱그러운 아침 나오길 잘했다. 호흡이 나 아닌 것들과 얽히며 새로워진다.


들이마시고 내쉬고, 들이마시고 내쉬고.


안에서 머물던 마음이 밖으로 향한다. 하얗고 붉고 푸른 것들이 눈에 입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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