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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May 11. 2022

모두 다 김밥 때문이야

안 먹는 아이에서 잘 먹는 아이가 됐으나

소리가 다섯 살 때 눈은 떴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누워만 있었다. 억지로 일어나 앉혀 좋아하는 계란 프라이를 얹어 밥을 주니 한 입 받아먹더니 못 먹겠어, 엄마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안 먹는 아이는 배고플 때까지 두어야 한다기에 좋아하는 간식을 제한하고 먹는 것에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며 하루쯤 지났을까.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춰야 하나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남편은 소리가 갖고 싶어 했던 뽀로로 버스를 구매해서 두 팔로 안고 나타났다.


뽀로로 버스를 본 소리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고 그 틈새에 우리는 소리를 업고(잘 걷지 못했다. 조금 걷다가 힘들다고 주저앉았다.) 가까운 우동집으로 향했다.(소리는 면을 좋아한다.)

먹지 않으려고 하는 아이에게 면 가닥을 짧게 잘라 천천히 먹게 했고,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조금씩 계속 먹였다. 금지했던 초콜릿도 사와 아이 입에 넣어줬다.


우동집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소리는 잘 걸었고 희미했던 미소는 크게 웃는 모습으로 바꿨다. 이후로 나는 아이를 먹이기 위한(야채와 생선 등 골고루 먹이기 위한) 시도를 포기했다. 꼭 야채가 아니더라도 치킨, 피자, 햄버거 본인의 입맛에 당기는 것으로 무엇이든지 먹으면 고맙게 여겼다.


40주를 채우지 않고 37주에 3킬로그램도 못 되는 체중으로 태어난 소리는 여섯 살 때까지도 체중은 미달이었고, 키도 또래에서 작은 편이었다. 작고 마른 아이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놀이터를 뛰어다녔다. 소리는 말은 느린데, 몸은 재빠르네 말하면 남편은 나 닮아서 그렇지, 대답하며 웃었다.


소리 나이 일곱 살 코로나 바이러스로 학생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유치원생도 마찬가지였다. 이사와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치원을 그만두고 네 살 동생과 엄마와 집 안에서만 지내는 소리의 활동은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는 중 엄마인 나는 식단에 있어서 신세계를 발견했으니. 잘 먹지 않는 네 살도, 밥을 물고만 있는 일곱 살도, 따스한 밥에 소금과 참기름을 넣어 비비고 계란 지단과 햄을 넣어(야채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꼬마김밥을 말아주니 밥 한 솥이 금세 없어졌다. 아이들이 직접 김밥을 말겠다고 하니 즐거운 놀이처럼 시간도 빠르게 흘러갔다. 김밥을 마는 즉시 꿀꺽꿀꺽 잘 받아먹는 아이들을 보는 게 신나서 일주일에 두세 번은 김밥을 말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엄마 모모가 나보고 돼지래. 아홉 살인 소리가 나에게 말한다. 재빠르던 움직임은 둔해졌고 달리기는 힘들어한다. 건강 검진에서 운동이 필요합니다, 라는 얘기도 들었다. 긍정적인 것은 또래 중 항상 작았던 키가 이제는 중간 정도로 컸다는 것인데.


복부에 살이 찌는 남편의 체형을 물려받아 소리 역시 복부 중심으로 살이 붙는다. 상의 사이즈를 한 사이즈 크게 구입하기 시작했고 남편은 더 이상 나 닮아서 그렇지, 웃지 못하게 됐다. 아구아구 밥을 먹고 있는 소리에게 적당히 먹어야지, 말할 때도 있다.


소리의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마른 체형이기도 하고 성장 불균형도 고려해야 하기에 점심을 많이 먹었다 하면 저녁은 가볍게 먹는 것(주먹밥에 과일, 계란 프라이나 두부 부침에 된장국)으로 식단을 조절하고 있다.


예전과는 반대의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우리 집 체형이 본래 가녀린 체형이 아니고 남편 쪽 역시 그러하니 타고난 체형을 어떻게 하나, 타고난 식성(탄수화물을 선호하는)을 어떻게 하나, 쓰러지지만 않으면 되지라고 느긋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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