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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남북녀 Jan 10. 2024

일상과 오류

푹 익히지 않은 음식은 의심스럽다. 젓가락으로 프라이팬 위 노른자를 꾹꾹 눌러본다. 어느 정도 반숙이어야 할까. 아침으로 소리가 요청한 것은 낫또와 반숙으로 익힌 계란 프라이다. 나 역시 어릴 때는 반숙 계란을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특유의 냄새 때문인지 피하게 된다. 노른자가 올려져 있는 파스타의 미끈거리는 식감에 그대로 두고 나온 적이 있다.

 

겨울에는 나가지 말자, 춥잖아. 나뭇잎이 물들어가기 시작할 때부터 나도는 내게 말해왔다. 눈이 펑펑 오는 날, 눈썰매를 타고 싶은 소리와는 다르게 나가지 않으려는 나도를 반강제로 데리고 나갔다. 경사로와 공원에는 아이들이 모여 눈썰매를 타거나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영상에 가까운 날씨라 오후에는 눈이 녹아 질척거렸으나 하얀 세상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놓인 선물 두 개를 보더니 작은 게 내 거 같다고 나도가 말한다. 왜? 장난을 많이 쳤거든, 헤헤. (그래도)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줬네. (미안하면서도 즐거운 나도의 표정)


반에서 노래 부르기를 준비하라는데 소리의 대답은 여자아이들의 <퀸카>. 검색하여 소리와 <퀸카>를 듣는다. 혼자 이 노래 부를 수 있겠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르고 싶은 노래와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구별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내 제한 속으로 아이를 들어오게 하지 말자와 가스라이팅일까라는 마음 한구석의 갈등은 계속됐다.) 초등 노래를 검색해서 들으니 <러브송>과 <모두 다 꽃이야>를 소리가 마음에 들어 했다. <내가 바라는 세상><네 잎클로버><네모의 꿈>도 들으며 좋다고 웃었다. 학교에서 배운 노래 중 좋아하는 노래를 물으니 <하얀 나라>라 대답했고, 학기를 끝내는 지금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는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 다 꽃이야>를 선택했다. 책을 읽으며, 설거지를 하며 소리가 부르는 <모두 다 꽃이야>를 듣는다.

 

‘오늘 하루가 인생이다’라는 구절은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에서 읽었고 혼돈이 오기 전에 잘 살아야지는 <나의 진짜 아이들>을 읽으며 한 생각이다. 치매에 걸린 여성의 진짜 기억은 어느 것이었을까. 삶은 어느 방향으로도 뻗을 수 있다. 그 안에서의 자세에 대해 생각한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황동규 <즐거운 편지>

 

 


일상 기록 후 노래 부르기 날, 가사를 잊어버리는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모두 다 꽃이야> 악보를 아이 가방 속에 넣는다.


현관에서 엄마 외치며 들어오는 아이     


노래 잘 불렀어?

<네모의 꿈> 불렀어.

어떻게? 가사 모르잖아.

가사가 나왔어.

가사가 나와?

아, 노래방 기계구나

응 노래방 기계. 애들은 퀸카, I AM 이런 거 불렀어.

동요는 안 불렀어.

<네모의 꿈> 연습할 걸

잘 불렀어, 박자도 안 틀리고. 99점 나왔다.(웃는 아이)

    

<네모의 꿈>을 듣는 순간 나는 아찔했다. 처음 보는 노래방 시스템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현기증을 느끼며 내가 사람들 앞에 서 있는 듯했다. 새로운 것에 (걱정을 앞세우기보다는) 흥미를 느끼는 아이는 개의치 않고 평상시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노래방 시스템이 도입된 학교에 다니면 가사를 외울 필요가 없다. 이 단순한 사항을 나는 상상할 수 없었다. 노래방 시스템이 도입된 학교에 내가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근심이 오류 속에서 시작되는 것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이라는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길을 그는 그의 길을 걷는다. 같은 듯 보여도 너무나 다른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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