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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Nov 25. 2024

2. 우린 지옥 끝까지 가는 거야.

병사시절, 암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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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속받은 부서에는 선임병이 2명 있었다. 덩치는 산만 하지만 어깨, 다리, 무릎, 어딘가가 늘 고장 나있는, 그래서 성격이 오락가락하는 왕고참과 그 사람에게 갈린 맞선임. 둘 다 어딘가 고장 났다고 해야 하나, 확실한 건 고등학교까지 만나본 적 없는 부류였다. 특히 아래에 있는 맞선임은 무언가 심각해 보였다. 아, 진짜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 정도로.


 내가 그 부서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지. 병사부터 하사까지, 대충 3년 정도를 거기에서 보냈으니 생각해 보면 나도 미친놈이 되지 않은 게 용할 정도였지. 아니, 생각해 보면 나도 미친놈이 되었다. 인간의 악의를 느꼈고 사람을 무는 법을 배웠다. 누가 내게 그랬지, 몇 년 사이에 사람 눈빛이 바뀌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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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병사들만 고장 난 게 아니었다. 그곳에서 근무하는 모두가 어딘가 문제가 있었다. 준위급인 반장과 바로 아래 원사는 둘 다 성격이 정반대여서 A부터 Z까지 모든 일에서 부딪히고 싸웠고, 서로 신사적인 모습을 추구했기에 목소리를 키우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스파크를 튀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싸움을 중재하고 팀을 이끄는 선임부사관, 상사는 이미 갈릴대로 갈려서 스트레스에 죽지 못하고 사는 수준이었고.


 우리 팀은 그런 팀이었다. 다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제발 내려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소규모 팀, 하지만 그 반장과 부반장 사이에 누가 끼어들겠냐면서 너네밖에 없다는 말과 함께 절대 내려보내주지 않는 팀. 아귀도라고 하면 맞을까. 우린 죄지은 것도 없는데 외지에 있는 소규모 팀이라는 이유로 지원도 받지 못하고 그들에 싸움에 등쌀이 밀려서 매일 고통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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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에는 악폐습이라는 것이 만연했다. 공군에 무슨 악폐습이 있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일하는 곳에서는 악폐습이라고 하는 게 있었다. 중사, 하사들 사이에서 집합시키고 기합주는 일은 당연하게 있었고, 내가 하사가 될 때쯤에서야 기합이 없어져 집합시키고 갈구는 문화만 남았다. 내리갈굼과 철저한 관리, 누가 이런 멍청한 문화를 만들었는지 몰라도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사람들은 그런 걸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점.


 부대에는 하사 5대장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후배들을 갈구고 괴롭히는데 도가 튼 인성에 문제 있는 사람 5명, 그러니까 그 시절 기준에는 군기반장이라고 불리던 사람들. 그들의 명성은 대대까지 널리 퍼져있었고 모두 그들을 공공연하게 하사 5대장이라 불렀다. 그리고 재미있는 점은 그 5대장 중에 여럿이 소규모 팀인 우리 팀에 있었고. 어떻게 팀에 있는 하사들 성격이 다 그럴 수 있는지. 준위, 원사, 상사, 하사, 딱 중사만이 언급되지 않았다. 사실 상사 선임도 굉장히 좋아했고 존경했던 인물이지만 내가 제일 존경했던 인물은 그 중사였다. 팀 내 정상인이자 앞으로도 그 자리를 지키며 고통받을 인물, 내가 떠난 후에도 다른 자리에서 고통받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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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고참은 평소에 운동을 즐겨했다고 한다. 내가 왔던 때부터 전역할 때까지 늘 어딘가를 다쳐서 운동하는 걸 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평소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운동은커녕 몸도 움직이지 못하고 늘 어딘가에 앉아서 살만 찌고 있다면 스트레스는 얼마나 쌓일까. 그는 쌓인 스트레스를 우리에게 풀었다. 사실 그 하사들의 내리갈굼의 영향도 컸지만, 그도 군대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지 못했기에 우리에게 그걸 대신해서 푼 것이다, 정확히는 나보다 내 위의 선임병에게 말이다.


 여기서 악의적인 내리갈굼 문화가 도드라진다. 하사들은 자기 선임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왕고참에게 풀고, 왕고참은 선임병에게 풀고, 그러면 선임병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는 나를 매일같이 자신의 방으로 불렀고 처음에는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중에는 내 젓가락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야기부터 나와 같이 밥을 먹으면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는 식의 이야기를 2시간씩 떠들면서 나를 붙잡아놓고는 했다.


 누군가 이 악의 연결고리를 끊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놀랍게도 이 연결고리는 내가 하사가 되기 직전까지도 끊어지지 않았다. 나와 맞선임은 기수도 몇 기수 차이 나지 않았기에 우리는 지옥 끝까지 함께 갈 관계였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군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인간의 순수한 악의를 느꼈던 관계로 기억에 남았다. 그가 전역하는 날, 나는 휴가를 나갔고 우린 마지막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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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년도에 가장 핫했던 키워드는 선진병영이었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 키워드였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웃음이 나온다. 우리 생활관에는 하나의 금기가 있었다. 이병, 일병이라면 절대 xx 생활관 근처를 지나가지 말 것. 이유는 딱 하나였다. 당시 그곳에 사는 최선임 병장들이 지나가는 저계급 병사를 방에 불러 이유 없이 욕하고 갈궜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전역하기 직전까지 새로운 병사들이 오면 가장 먼저 교육하는 사안이 있었다. 절대 3층 좌측 복도를 통해 이동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지금 들으면 모두 웃을 것이다. 그런 병사들이 있다면 신고하면 그만 아닌가? 요즘에는 신고하면 무조건 격리하고 다른 곳으로 보낸다던데. 물론 당연히 당시에도 그런 제도가 있었다. 소원수리함과 마음의 편지라는 제도였다. 하지만 그 제도에는 가장 큰 허점이 있었다. 업무가 과중한 주임원사가 일일이 모두 확인하지 못하고 으뜸병사라고 불리는 주임원사 보좌병이 대신 확인했다는 점이다.


 주말 아침이면 모두 중앙복도에 모여 대청소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청소를 여는 첫마디, 당연히 청소 위치 배정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며칠 전에 소원수리함에 어떤 쪽지 넣어놓은 녀석 있는데 누군지 대충 안다. 너네가 잘했으면 애초에 혼낼 일도 없는데 왜 너네가 못해놓고 이런 쪽지를 쓰냐. 색출하지는 않겠지만 좀 알아서 잘해라."


 이미 누군지 알고 있고 앞으로 노골적으로 갈구지는 않겠지만 뒤로 행동하겠다는 신호. 그 말이 나오면 저녁쯤에 이미 누가 그런 쪽지를 써서 넣었는지 인물이 밝혀지고 주위에서 그를 향한 노골적인 행동들이 떨어진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이렇게 평화를 이어갔고 당연하지만 아무 문제 없이, 아무 불만 없이 모든 생활관원들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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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옥 끝까지 가는 열차에 탔고, 당연하지만 중도에 내리지 못한 채 끝까지 함께했다. 정말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었고 아마 지금 과거로 돌아갔다면 당장 맞선임 머리를 주먹으로 돌려버리던지 내 머리를 돌리던지 둘 중 하나 선택했으리라. 그래도 나는 살아남았고 어찌어찌 2년의 시간을 보냈다.


 핸드폰이 없는 시대, 지금의 병사들은 상상할 수도 없겠지만 우리는 그 시기를 보냈다. 웃긴 이야기지만 그때는 오히려 엿같은 일만큼 재미있는 일들도 많았다. 다들 각자의 취미를 가졌고, 각자 시간을 녹이는 방법을 배우고는 했다. 그리고 나도 2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만의 시간을 녹이는 방법을 얻었고. 내가 그때 했던 일은 가지였다. 하나, 노트에 글쓰기. 둘, 주말 아침부터 탁구만 시간씩 치기. 셋, 종교생활. 사실 외에도 악기라던지, 자격증 공부라던지, 재미있는 일들이라던지 많았지만 위의 가지만큼 열심히 했던 것들은 없었다고 단언할 있다.


 나는 입대 전부터 글이 쓰고 싶었다. 이미 자의든 타의든 공학으로 길이 결정되고, 앞으로 정해진 길만 가게 될 거 같은 인생 속에서도 글이 쓰고 싶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 홀로 글을 쓰고 지웠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더 글을 쓰고 싶고 더 잘 쓰고 싶어. 그 꿈의 발로가 군대였다.


 공군병에게는 200p 남짓의 공군 병사 수첩이라는 노트가 주어진다. 표지는 그럴듯하지만 안에는 줄만 그어진 싸구려 종이가 190~220p 정도, 공장에서 만든 물건일 텐데도 노트마다 페이지 차이가 나는 공업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싸구려 노트였다. 나는 그 노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내 노트를 모두 채울 때 동기에게 한 권 받아서 두 권, 후배에게 한 권 받아서 세 권, 선임에게 한 권 받아서 네 권, 다섯, 여섯, 일곱 권의 책을 채웠다.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엿같은 삼류 소설 이야기였고,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 비참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나는 아직도 맞선임의 이름을 잊지 않는다. 같이 1년 하고도 반이 넘는 시간을 보내놓고도 전화번호조차 교환하지 않은 그 사람, 자기는 전역 후에 어디 기업에서 일할 거라고 공공연하게 떠들던 그 사람. 이젠 화보다는 그냥 그 시절의 기억으로 끝내고 싶다. 이렇게 넓은 땅에서 또 만날 일도 없을 테니.


 이번에는 조금 어두운 이야기만 다뤘으니 다음에는 더 밝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썼던 소설들에 대한 서평이라던지, 종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취미 생활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말이다.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예전에 썼던 소설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진짜 어떻게 그런 걸 썼지? 솔직히 그 내용을 다루는 거 자체가 부끄러워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또 지금의 내가 다시 떠든다면 그건 그거대로 추억이 될 거 같아서 다음에는 꼭 다뤄야겠다 생각했다.


 이렇게 또 내 추억의 편린들을 모아 본다. 이게 추억인가, 생각하면서도 지나고 보면 전부 추억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때 내가 더 잘했더라면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었을까, 가끔 그런 생각도 해보고. 그때 모두가 바뀌지는 않더라도 작은 단위의 우리가 바뀌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까, 가끔 떠올려보고.


 위에서 말한 악폐습은 결국 사라졌다. 내가 하사가 되고 어느 정도 고참이 되어서 갈구는 위치에 섰을 때서야. 내가 갈구지 않고 내 후배들이 갈구지 않기 시작하는 시점부터 그 악폐습은 사라졌다. 가끔 갈굼의 최전선에 살았던 중사들은 그 시절을 떠올리며 왜 요즘 그러지는 않냐고 말했지만, 솔직히 그건 타인을 괴롭히는 행동이기 이전에 자신을 갉아먹는 행동이었다. 하사들이 모두 집합당하고 한 명 한 명, 앞에 나와서 후배들을 갈구다 모두 나가고 내가 앞에 나섰을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가 위에 올라가면 이런 짓은 그만두자. 나부터 안 할 테니 모두 하지 말자."


 우린 그런 짓을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 그런 짓에 우리를 엮지 말아 줘. 그게 우리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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