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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May 25. 2024

아∼ 이 향긋한 자연의 냄새!

기왕 하는 거 똑바로 하자는 슬로건은 농장운영의 마인드를 역동적인 진취성으로 거듭나게 했다.

마음가짐 하나가 이렇듯 생각을 180도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농장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관수시설을 완비했던 것은 수분요구량이 많은 사과대추의 특성 때문이지만 농장주의 각오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매주 한두 차례의 수분공급을 위하여

요사이는 물방울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점적관수가 대세라지만 성격 급한 겸업농부로서는 썩 내키지 않았다.

몇 시간씩 지루하게 관수하 방식이 아니라 단시간에 물줄기를 시원하게 분사하는 스프링클러 시스템을 채택하기로 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십 년 전부터 사용하여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방식인데 대개는 30미리의 농수관을 키높이 이상으로 설치한다.

농수관을 2미터 간격으로 가느다란 튜브호스를 무릎높이까지 길게 연결하여 미니스프링클러를 가동하는 형식이다.

매사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겸업농부의 삐딱한 성품은 이번에도 발현되었다.

그럴 바에는 굳이 무거운 농수관을 키높이 이상으로 높게 설치하는 이유가 뭐냐고?


딱히 물어볼만한 사람도 없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스스로 하는 것이 나을듯했다.

지금도 초짜농부지만 지금보다도 훨씬 경험이 일천하던 십 년 전의 일이다.

멋모르고 튜브호스를 짧게 설치하여 스프링클러를 키높이 이상의 공중에서 분사한 일이 있었다.


잎채소농가에서는 물을 분사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이지만 따가운 햇빛이 내리째는 5월의 한낮에 공중에서 스프링클러를 분사한다고 상상해 보라!

지난가을 묘목을 식재하고서 처음 새순이 돋아나던 어린 새싹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뜨거운 한증막에서 고문을 당하는 격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한 생각이 들지만 무지가 저지른 끔찍한 악행으로 기억된다.

무식한 자가 부지런까지 떨었으니 에잉!



참혹했던 그날의 사건 이후부터는 가능하면 아침저녁을 이용하여 관수하되 반드시 무릎높이 밑으로 살포하여 아린새싹에게는 수분이 닿지 않게 하려고 주의를 기울인다.

이런 경험을 나 혼자서만 하지는 않았을  4 ×7 튜브호스가 극단적으로 길어진 원인의 하나가 아닐까 짐작해 보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겸업농부의 엉뚱한 상상력으로 생각을 단순화시키자 처음부터 농수관을 무릎높이로 설치하는 기상천외한 혁신?을 자행하고 말았다.

그러자 튜브호스의 용도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려 곧바로 농수관 위에다 미니스프링클러를 설치하는 모험을 감행할 수 있었다.


점적관수와 마찬가지로 스프링클러 역시도 모래와 같은 이물질의 막힘 현상이 고질적인 병폐다.

원인이라면 무거운 물질이 아래로 가라앉는 중력의 법칙인데 엉뚱혁신의 결과치고는 한마디로 good!이었다.

농수관에 부착하는 미니스프링클러의 위치가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하게 되자 중력의 법칙에 의해서 막힘 현상이 말끔하게 해결 돼버렸다.


과일농사에서는 햇빛 못지않게 수분의 공급도 필수적이지만 과하면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던가!

점차 우리나라 기후가 아열대로 변해가면서 장마도 길어지고 시도 때도 없이 너무 자주 비가 오는 것이  문제로 등장했다.


일조량의 부족으로 낙과현상도 심각하지만 수확기 열매가 갈라지는 열과 현상도 문제다.

과일이 익어갈 즈음 무방비상태로 고스란히 빗물을  맞을 수밖에 없는 노지재배의 경우  목마른 뿌리가 빗물을 흡입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을 테다.

그나마의 해결책이라면 비닐하우스나 비가림시설이 겠지만 모든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겸업농부의 입장으로서는 부득이 다른 방안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몇 날 며칠의 고민 끝에 겸업농부가 내린 결론 이번에도 엉뚱하기는 했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장고의 결과물로 제시된 회심의 카드는 이른바 과일나무 길들이기였다.

'토요일은 물 마시는 ' 아니 정확하게는 '물은 토요일에만 마시는 날'이라는 규칙을 정하고  사과대추나무를 훈련시켜 보기로 했다.

비가 올 때마다 허급지급 빗물을 마시지 않도록 규칙적인 수분습취를 유도하려는 취지인데 성공여부는 두고 볼일이다.

  

몇 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우리 농장의 까다로운 관수원칙이 하나 있다.

지하수를 저장한 일만 리터 용량의 대형저수조통에 천연액비와 미생물을 혼합하여 하루동안 안정화시킨 후 관수하는 원칙이다.

오래된 액비통은 햇수로 만 3년째 농축된 것도 있는데 액비의 주재료는 우리 농장에서 생산되는 각종 과실류의 낙과물이다.

농업기술센터에서 매주 무상으로 공급받아 오는 미생물과 혼합한 천연액비의 효능은 작년에 블루베리의 풍작을 통해서 이미 경험한 터였다.



아침 동이 트기 전의 이른 시각, 이제 양수기실의 버튼을 누를 차례다.

새벽의 정적을 깨우는 요란한 모타소리와 함께 상쾌한 퇴비향이 뽀송뽀송한 새벽공기 사이로 퍼져나간다.

정확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자연농축된 천연액비물을 미생물과 혼합하여 하루정도 안정화시키면 짙은 먹물색으로 변색되면서 은은하게 다가오는 특유의 향내가 있다.


기분 좋은 천연각성제랄까?

'아∼ 이 향긋한 자연의 냄새!' 

마치 늦가을 높은 산에 올랐을 때나 가끔씩 맡을 수 있는 상쾌한 향내가 뇌리를 자극한다.

오늘천연액비물로 맛나아침식사를 즐기고 있는 우리 농장의 식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어떤 뿌듯한 감정이 밀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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