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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Jun 15. 2024

맺힌 한은 풀어야 하는데

시골초등학교 이야기 2

지역의 행정단위가 동이나 면 단위에서 개최하는 체육대회는 흔한 편이지만 그 아랫단계인 리 단위의 체육대회는 대부분 명맥이 끊긴 상태다.

요즘도 '리'라는 행정단위가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우리 지역의 명칭은 경남 김해군 대저면 맥도리 ◯◯마을이었다.


다섯 개의 이웃마을이 '맥도리'라는 한 울타리 속에서 살아가면서 지역주민으로서의 정체성과 결속력 강화를 위해 해마다 축제를 개최하기로 했다.

십여 년 전, 특별한 사정으로 딱 한번 건너뛰었을 뿐 60년을 한결같이 이어온 마을체육대회는 맥도주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1등 공신이었다.


어느덧 내년이면 대망의 60주년을 맞이하는 맥도리체육대회는 행사의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동 주체의 체육대회를 능가할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하다.

얼핏 전해 듣기로는 '리'단위에서 개최하는 자연마을 체육대회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데 지역주민들의 자긍심을 짐작할 수 있겠다.   


지난가을 추수를 끝내자마자 시작한 힘겨웠던 시설채소 농사를 마무리하고 서둘러서 모네기까지 마치면 모처럼만의 휴식기가 찾아온다.

그래서 지정된 날짜가 매년 6월의 첫째 주 일요일이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마을주민들이 시골초등학교의 운동장에 모여서 마음껏 먹고 떠들면서 시끌벅적한 축제를 즐긴다.


다양한 종목의 경기를 모두 소화하려면 선수들은 새벽잠을 설치고 학교로 달려가야 하는데 아침 일곱 시부터 축구와 족구의 예선전 경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속속 마을별로 지정된 천막으로 주민들이 모여들고 청년회와 부녀회가 준비한 음식을 들면서 축제의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는다.

개회식이 시작되는 오전 열 시가 다가오면 다섯 개 마을의 천막을 돌면서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던 유력인사들이 본부석을 향해서 종종걸음으로 다가온다.

국회의원을 위시한 여야의 정치인들 구청장 동장 농협조합장 등등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유력인사들의 입장에서는 빠뜨릴 수 없는 우리 지역의 중요행사다.

지금은 축사를 구청장 딱 한 명으로 단순화시켰지만 과거에는 누구를 포함시키고 누구를 뺄 것인지, 순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를 두고 신경전도 대단했다.


어지간한 동단위의 체육대회에서도 진즉에 사라진 종목이 사실은 축구다.

현실적으로 운동장을 뛸 수 있는 열한 명의 연령별 선수 자원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지만 맥도리체육대회만큼은 아직까지도 그 어려운 것을 해내고 있다.

축구를 비롯하여 족구, 줄 당기기, 줄넘기, 계주 달리기, 윷놀이 등 예전부터 유지돼 오던 종목 그대로 마치 올림픽에라도 출전한냥 다섯 개 마을 주민들 간 우승경쟁이 장난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회에 임하는 자세가 사뭇 진지하다는 뜻이다.




본부석에 앉아서 우두커니 운동장의 서쪽 편을 차지하고 있는 목련관을 바라보자니 약 십 년 전, 지역주민들에게 큰 울림을 남기고 떠나신 한 분의 교장선생님이 아른거린다.

마치 '교장은 이런 것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7년이라는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그야말로 매일매일이 감동의 연속이었다.

건물 지붕판의 색깔이 바래질 정도로 시간은 흘렀지만 여전히 목련관은 우리 아이들과 지역주민들의 소중한 강당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거진 십 년 만인 것 같은데 교장선생님으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휴일날 개최하는 체육행사에 참석하셨다.

금년에 새로 부임한 교장선생님은 인자한 성품의 남편과 함께 방문하여 본부석에서 지역주민들과 함께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역사회에 자연스레 녹아들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과거 이 교장의 모습과 참으로 많이 겹쳐 보였다.


"목련관은 우리 학교의 소중한 강당입니다만 건물이 오래되어 비가 새는 곳도 있고 캐노피와 방충망 시설도 추가해야 되고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 실정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목련관이 불법건물인 탓에 교육청이나 구청의 예산을 사용할 수도 없어 부득이 총동문회에 지원을 요청해 둔 상태입니다만"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0년 연말, 쓰디쓴 쓴맛을 다시며 다목적강당의 건립을 포기해야 했던 쓰라린 기억들이 떠올랐다.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공항공사와 구청의 예산 12억을 힘겹게 마련하여 학교에 다목적 강당을 지어주려고 했지만 당시 폐교를 추진하던 교육청의 반대로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지역에 거주 중인 동문 건축업자들의 도움으로 건축한 것이 바로 목련관이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교육청의 재산목록에는 포함되지 않은 유령건물이었던 탓에 교육청의 예산으로는 유지보수비를 지출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때 누군가 큰 소리로 말했다.

당시 다목적강당의 예산 마련에 앞장섰던 김 의장이었다.

"교장선생님! 우리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폐교정책은 인제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내년부터는 주소지의 이전 없이도 다른 과밀지역에서 우리 학교로 입학할 수 있는 '작은 학교 확장형 통학구역'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여기에 대비하여 통학버스 두 대를 지원해 달라고 교육청에 요청해 둔 상태고요"  


"그렇다면 잘됐습니다, 이참에 다목적강당 건립을 다시 추진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폐교정책이 사라졌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

김 의장의 바로 맞은편 자리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공 회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학교 실내체육관 때문에 한 맺힌 사람들이 많다 아이가!

우짜든지 가슴속에 맺힌 한은 푸는기 맞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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