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산산이 부셔가며 용감한 천리마는 거침없이 내달렸다.
오후 한 시에 울릉도를 출발한 독도페리호는 오직 동남방향 한 곳만을 향하여 한 시간 이십 분을 달려왔다.
이제 삼십 분 남짓이면 목적지에 닿을 것이다.
저 멀리서 광활한 빈 바다를 여백 삼아 아름다운 동양화 한 폭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우뚝 솟아오른 좌측의 서도와 상대적으로 아담한 그 옆의 동도, 사백오십만 년 동안 이 황망한 바다를 외로이 지켜온 섬의 자태는 황홀하기가 그지없다.
“오! 아름다운 섬, 우리들의 꿈 다케시마!”
갑판 위에서 검정색 코트 차림의 중절모를 쓴 중년의 일본인 사내가 서서히 다가오는 독도를 바라보며 혼자 말처럼 읊조렸다.
좌우로 가죽 잠바를 입은 두 청년이 중절모 사내와 같은 방향을 응시하면서 자못 비장한 표정으로 서있다.
“자살특공대라는 아랍의 젊은이들이 몸속에 폭탄을 두른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가?”
두 청년은 굳은 표정으로 독도만 응시할 뿐 중절모 사내의 물음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비록 몸은 죽지만 영혼은 천국으로 직행한다고 믿고 있지, 그 믿음은 백 퍼센트야!”
이 말과 함께 중절모 사내가 피식 웃자 그제야 두 청년도 공감의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런데 말이야, 사실은 그 애들이 속은 거야,
육체가 죽으면 그 영혼마저도 사라진다는 사실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거든!
완전히 사라진 열반의 세계야말로 영원한 평화임을 그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나?”
중년의 사내가 자신의 두 팔을 청년들의 어깨에 올려놓으며 말한다.
“사또! 노무라! 두려운가?”
풍기는 외모에서 도시청년의 세련된 분위기가 자아나는 왼편에 선 노무라가 중년의 사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닙니다! 차라리 평안합니다,
죽은 육체와 따로 살아가는 영혼의 행복을 말씀하셨다면 위선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죽음이 차라리 평안합니다!”
오른편에 서있던 사또는 두려움에 입을 뗄 수가 없었지만 노무라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편안하게 말했다.
“작전명이 왜 ‘다케시마의 눈물’인지 아는가?”
“… …”
“어린 섬이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수백만 년을 저 홀로 지냈으니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겠나!
1905년이 되어서야 따듯한 우리 일본의 품으로 입양되었지,
그때부터 다케시마의 꿈은 우리 일본인의 꿈이 되었고, 그 꿈은 아시아 태평양으로 끝없이 펼쳐나갔던 것이야,
그런데 종전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그 어수선했던 시기에 악랄한 한국인들이 어린 다케시마를 강탈해 갔던 것이야,
우리 일본인의 꿈을 말이야!”
이사무 회장이 들려주는 다케시마의 사연은 사또의 두려움을 녹여내고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짧게 깎아 한눈에도 시골에서 갓 상경한 듯 촌티가 풀풀 나는 사또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일본과 강제로 헤어진 어린 다케시마가 본토를 그리워하면서 흘리는 눈물이군요!”
사또의 이 말은 다케시마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다짐의 말이었고, 자신의 검정색 가죽잠바 속에 숨겨진 무엇인가를 어루만지면서 결의를 다지는 말이었다.
목에 걸친 비디오카메라로 또다시 독도를 살펴본 이사무 회장이 자폭직전 아랍전사가 했을법한 마지막 눈빛으로 돌변했다.
“이제 잃어버린 우리의 꿈을 되찾을 때가 되었어! 온 열도에 사쿠라의 꽃잎이 휘날리기 전에 말이야!”
이들은 일명 '흑군파전사'라고 불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단체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에 소속된 회원들이다.
오늘 특별한 방식으로 그들의 의식을 치르기 위해서 이사무 회장이 직접 두 청년단원과 함께 독도페리호를 타고 있었다.
이때 페리호의 맨 뒤쪽에 자리 잡은 십여 명 남짓한 한 무리의 남녀대학생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이들은 ‘우리 땅 독도연구회’라는 연합동아리에 소속된 대학생들이다.
오늘 삼일운동 110주년을 맞아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이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독도 탐방에 나섰다.
연합 동아리가 운영하는 ‘우리 땅 독도’ 유튜브 방송은 고정 구독자만 십만이 넘을 정도로 대단히 인기가 높았다.
순전히 담당 피디인 정덕의 탁월한 기획과 편성능력 덕분이었다.
오늘의 삼일절 특집행사도 전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독도가 우리의 영토임을 홍보하기 위한 정덕의 기획물이다.
지금도 정덕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동영상을 찍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연합동아리 회장인 규태가 일어나서 후배들을 상대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사학을 전공하고 있어 평소에도 꽤나 역사 관련 전문가 티를 내고 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바람이 났다.
“독도가 공식적으로 울릉군으로 편입된 시기는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의해서야,
시마네 현이 불법적으로 편입시킨 1905년보다 5년이나 빨랐지!”
규태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경은이 불쑥 뛰어들었다.
“일본은 주인 없이 버려진 섬을 자신들이 먼저 주웠다는 독도무주지 선점론을 펴고 있는데요,
그 주장의 근거가 되는 것이 조선시대의 공도정책이란 말입니다,
이것이 저들 주장의 빌미가 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좋은 질문을 해줘서 고맙다는 듯 경은을 바라보는 규태의 표정이 익살스럽다.
“그 당시의 공도정책은 명나라에서도 시행되고 있었는데 걸핏하면 쳐들어오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봐야 돼!
조정에서 매번 군사를 보내서 작은 섬을 지키는 게 어려웠으니 차라리 약탈거리를 없애는 방법, 즉 섬을 비워버린 것이지”
최근에 해병대를 전역하고 복학한 준현이 아직 군대물이 덜 빠진 말투로 평소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안용복 장군이 에도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실하게 인정받아 왔음에도 당시 조정의 태도가 도통 이해가 안 된단 말입니다!
안용복 장군에게 포상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공무원사칭죄와 무단월경죄로 귀향을 보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그렇지! 말이 안 되지,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당시 일본의 막부나 조선의 조정에서 독도의 중요성에 대해서 얼마나 알았을까?
작은 돌섬일지라도 우리의 영토니까 꼭 지켜야지 하는 그런 의지들이 있었을까?
1900년이 다 되어서야 그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으니까 지금 한일 간에 벌어지고 있는 말의 성찬들은 그냥 하는 소리라고 봐야 돼,
핵심은 지금 현재 누가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느냐는 거지!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분쟁도 그렇고, 러시아와 일본의 쿠릴분쟁도 그렇고, 과거에는 우리 땅이었으니 되돌려달라고 하면 점잖게 내어줄 나라가 있을까?
가령 독도영유권에 대한 한일 간의 주장이 서로 바뀌었다고 생각해 보잔 말이야,
그런다고 해서 딱히 달라질 게 있을까?”
큰 덩치를 빗대서 준현이가 붙여준 별명이 마음에 안 든다며 늘 투덜대던 떡대가 이 재미난 논쟁에 뛰어들었다.
“그렇지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너거들 주장이 타당한 것 같네,
그냥 신사적으로 돌려줄 꾸마! 뭐 그런 나라는 한 나라도 없겠지요!
행님 말대로 현재 누가 실효적인 지배를 하고 있고 또 그것을 지킬 힘이 있느냐가 중요한 거겠지요,
그렇게 봤을 때 독도의용수비대가 정말로 결정적인 신의 한 수를 둣뿠다 아입니까? 내 말이 안 맞습니까?”
“그래 바로 그거야! 이들이 없었으면 실제로 우리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행운을 얻지는 못했을 거야!
오늘날 일본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은데!
딱히 방법이 없으면서도 일본이 끈질기게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의미를 잘 알아야 돼!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는 빼앗고 말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든! 물론 그 방법은 무력을 통한 방법뿐이겠지만!”
때마침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페리호 선장의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오늘처럼 파도가 온순하여 입도가 허락되는 날은 흔치 않다는 선장의 기분 좋은 멘트가 사백여명 승객들을 들뜨게 했다.
선장의 익숙한 손놀림으로 페리호는 서도와 동도를 부드럽게 순회한 후 동도 선착장에서 닻을 내렸다.
선장이 허용한 관광시간은 딱 삼십 분이었다.
사백여명의 입도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자 조용하던 섬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이 소란 속에서도 입도객들을 환영하는 특별한 행사는 규태일행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일렬로 도열한 독도경비대원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준현이 떡대를 불러 세웠다.
자신이 들고 가던 앰프까지 하나 더 얹어주며 난감해하는 떡대의 엉덩이를 철썩 때리며 웃었다.
“떡대야! 요만한 일로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쓰면 나중에 군대는 우째 갔다 올락꼬 그러냐?”
준현이 제대군인 특유의 군기 빠진 폼새로 독도경비대원들의 거수경례를 일일이 받아주면서 건들건들 걸어갔다.
하지만 현재 이 섬의 점유권자를 굳이 시각적으로 보여주려는 이 같은 퍼포먼스가 불쾌한 자들도 있었다.
저만치서 규태 일행을 뒤따르던 이사무 회장 일행의 적대감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동도에 입도하자마자 자율적인 관광구역인 부두 주변을 서성이면서 그들이 준비한 특별한 의식을 치를만한 적당한 무대를 찾았다.
사실 이들의 당초 디데이는 오늘이 아닌 다케시마의 날이었던 지난 2월 22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땅 독도’ 유튜브 방송이 대대적으로 삼일절 110주년 특집방송을 예고하자 일정을 급히 변경했다.
어차피 그들이 원했던 것은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스스로를 다케시마 수복의 재단에 바치는 것이다.
오직 그 장면의 연출을 위하여 오늘이 선택되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이사무 회장이 드디어 마땅한 장소를 찾았다는 표정으로 사또와 노무라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인다.
이사무 회장이 지목한 장소는 ‘대한민국 동쪽 땅 끝’이라고 새겨진 기념비 앞이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규태 일행이 먼저 선점한 채 진을 치고 있었다.
규태의 진두지휘로 준비한 의상을 갈아입을 가림막이 설치되었다.
오늘 연합동아리가 준비한 행사를 주어진 삼십 분 안에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전속결이 중요했다.
‘3·1 운동 110주년 기념 독도와 함께하는 특별공연’이라고 새겨진 현수막이 펼쳐졌다.
음향담당인 준현이 섬전체가 잘 들릴 수 있는 위치에 대형앰프를 설치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후배 떡대를 상대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며 세밀하게 음량의 조율을 마친 준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손에 쥐고 있던 리모컨의 버튼을 힘껏 누르자 입도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크기의 음악소리가 섬전체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음악소리에 고요하던 동도와 서도가 화들짝 놀랐다.
구슬픈 곡조의 정선아리랑이 앰프를 타고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을 때 근방에 흩어져있던 백여 명의 입도객들이 삽시간에 몰려들었다.
무대가 만들어지고 관객들이 모여들자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준비를 마친 정덕이 큐 싸인을 보냈다.
유관순으로 분장한 여대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달려 나오자 일본헌병으로 분장한 남학생들이 목총으로 사격자세를 취했다.
잠시 뒤 앰프에서는 요란한 총소리가 나면서 만세를 부르던 여학생들이 애처로운 동작으로 쓰러졌다.
이 장면은 정선아리랑의 곡조와도 잘 어울려 더욱 애틋하게 연출되었다.
쓰러지면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절규하는 장면에선 모여든 입도객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곡조는 다시 진도아리랑으로 바뀌었다.
농민으로 분장한 세 명의 남학생들이 막대에 매달린 대형 태극기를 흔들면서 등장하여 일본헌병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이 통쾌한 장면에서는 모여 있던 입도객들이 함성을 질러대면서 분위기가 크게 고조되었다.
이때 쓰러졌던 여학생들이 천천히 일어나자 곡조는 다시 신나는 밀양 아리랑으로 바뀌었고 무대는 남녀대학생들이 흔들어대는 대형 태극기의 펄럭임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이것으로 우리 땅 독도연구회의 연출 의도는 목적을 달성하는 듯했다.
하지만 저만치서 입술을 깨어 물면서 이 못마땅한 상황을 쏘아보던 이사무 회장과 두 청년의 생각은 달랐다.
쓴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이사무 회장이 두 청년에게 눈짓으로 신호하자 사또와 노무라가 무대의 반대방향으로 달려가 기습적으로 현수막을 펼쳤다.
‘일본령 다케시마’라고 쓰인 현수막이었다.
화난 표정의 두 일본청년들이 반복해서 큰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
“한국의 불법점유를 규탄한다!”
이 긴장된 상황 속에서도 이사무 회장은 천연덕스럽게 막대사탕을 입에 문채 비디오카메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기습적으로 벌어진 이 별난 상황은 동도 선착장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다른 입도객들까지 몰려들게 만들었다.
아직 공연을 마무리 짓지 못한 규태 일행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정반대의 퍼포먼스에 경악했고, 이것을 그대로 방치한 채 하던 행사를 진행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삼일운동 110주년을 기념하던 날이다.
우리 땅 독도에서 벌어진 이 경악스러운 퍼포먼스를 저지하기 위해서 동아리 회원들이 일제히 달려갔다.
여전히 앰프에서는 밀양아리랑의 경쾌한 곡조가 독도전역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동아리 학생들이 앞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뒤에서부터 인파를 헤집고 삐죽삐죽 앞으로 끼어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대형 태극기가 매달린 국내산 왕대나무로 만든 막대가 쥐어져 있었다.
한 손으로는 현수막을 또 다른 손으로는 구호를 외치던 사또와 노무라의 표정은 마치 출격을 앞둔 가미가제 특공대의 모습을 닮아 있었다.
대형태극기를 펄럭이면서 맨 앞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국토를 기습적으로 침공당한 백성들이 느꼈을 법한 심한 모멸감과 분노의 감정이 뒤범벅이 되어 온몸을 떨게 했다.
낯선 일본청년들에 의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외치는 이 황당한 상황을 지켜보던 사백여명의 입도객들도 다 함께 흥분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정제되지 않은 고함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이 미친 쪽발이 새끼들아! 미친 짓 할라 거든 너거들 나라에나 가서 해라!”
“여기가 어디라고 지랄발광들이야! 저 쪽발이새끼들 현수막을 뺏어라!”
흥분한 입도객들의 외침 속에서 준현이 먼저 앞으로 나섰고 곧바로 규태가 합세하여 앞으로 나섰다.
떡대를 비롯한 나머지 학생들도 그 뒤를 따랐지만 선발대와는 한 발짝 가량의 간격을 유지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선발대로 나선 두 청년은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 막대를 부여잡은 채 조심스럽게 적진을 향해서 전진해 나아갔다.
준현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떡대까지 이들의 복장은 태극문양의 머리띠를 맨 농민의 분장을 하고 있었다.
좀 전의 상황극에서 실제로 일본헌병을 무찌른 세 명의 농민이 바로 이들이었다.
대범하게도 아군의 진영 깊숙이 침범하여 적군의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던 적들을 쳐부수기 위하여 한발 또 한발 조심스럽게 나아갔다.
한국대학생들이 눈알을 부라리며 다가오자 두 일본청년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현수막을 반듯하게 내려놓았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는가 싶더니 그들의 검정색 가죽잠바 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며 위협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것은 팔십 센티미터 가량의 시퍼렇게 날이 선 일본도였다.
순간적으로 주변에 몰려있던 여자관광객들이 단체로 비명소리를 내어질렀다.
아래 선착장에서부터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즉각 사고가 발생했음을 알아차린 독도경비대원들이 긴급하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서도 이사무 회장은 마치 두 일본청년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태연하게 비디오카메라를 촬영하고 있다.
두 일본청년들이 자신들 쪽으로 다가오던 준현과 규태를 겁주려던지 칼끝을 앞으로 내어찌르는 동작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위협적인 동작이 시작됐다.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제법 절도가 있고 날렵한 것으로 봐서는 분명 아마추어 수준은 아닌 듯했다.
이제부터는 실전에 돌입하겠다는 듯 두 일본청년이 사무라이처럼 양손으로 다시 한번 더 일본도를 부여잡는다.
이때 사또가 두려움을 떨쳐내려는 듯 무슨 주문을 외듯이 자신들의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쳤다.
그런데 일본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떡대가 볼 때는 꼭 너희들 누구냐고 묻는 것처럼 보였다.
“행님! 촌놈처럼 생긴 점마가 우리 보고 뭐라 뭐라 하는데요?
너거들 뭐 하는 놈이냐고 하는 것 같은데요?”
정면에서 사또의 두 눈과 마주하고 있던 준현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누구냐고? 우리가 바로 삼일특공대 아이가!”
떡대가 준현의 말을 받아서 사또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인마 우리는 삼일특공대다!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너 거 같은 쪽빠리 새끼들을 혼내주는 삼일특공대다!”
실제로 오늘 상황극의 대본에서 이 세 사람은 삼일특공대로 나오기 때문에 이들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나무 막대를 손에 쥐고 맞은편에서 다가오던 세 녀석 가운데 한 녀석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자 사또의 신경이 무척 날카로워졌다.
바짝 신경이 곤두선 사또가 다가오는 준현을 향해서 한차례 칼을 휘둘러서 위협하는 살벌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때였다. 잠시 어수선한 틈을 이용하여 준현이 기습적으로 달려들었다.
태극기가 매달린 국내산 왕 대나무로 사또의 칼을 강력하게 내리쳤을 때 당황한 사또가 그만 칼을 놓치고 말았다.
뒤이어서 규태도 노무라의 칼을 내리치려 하자 노무라가 사선으로 휘두른 단 한 번의 칼질에 규태의 태극기 막대가 두 동강이 났다.
당황한 규태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뒤로 물러서고 있었을 때 두 다리가 심하게 후들거렸다.
이 중요한 상황에서 칼을 떨어뜨려 자존심이 상해버린 사또가 떨어뜨린 칼을 다시 부여잡으면서 진땀을 흘렸다.
평소 노무라에 비해서 자존감이 떨어져 있던 사또였기에 이 순간마저도 부족한 사람으로서의 낙인이 찍히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울분이 되어서 사또의 온몸에서는 광기의 에너지가 솟구쳤다.
순간적으로 그를 짓누르던 두려움들이 사라지면서 신기하게도 잔뜩 힘이 들어갔던 손목이 편안해졌다.
바로 그 순간, 태극기 막대로 다시 공격해 오던 준현을 향해서 사또가 부여잡은 일본도가 태극기막대를 힘껏 내리쳤다.
강력하게 내리치는 일본도의 위력 앞에서 태극기 막대를 떨어뜨린 준현이 주섬주섬 뒷걸음질을 치고 있을 때였다.
또다시 사또가 달려들면서 무차별적으로 일본도를 휘둘렀다.
이것은 분명 광기에 사로잡힌 미친 짓이었다.
결국 준현은 사또가 휘두른 일본도에 가슴이 심하게 베었고 피를 흘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어처구니없는 참사로 주변은 삽시간에 비명소리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쓰러진 준현선배를 부둥켜안고 광분하던 떡대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사또를 노려보면서 막대태극기를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노려보던 사또가 또다시 일본도를 높이 쳐들고 곧장 덤벼들던 바로 그때였다.
총을 겨누면서 한발 한발 다가오던 독도경비대원중 한 명이 공중을 향해서 실탄 한 발을 발사했다.
총소리에 떡대는 멈칫하며 멈추어 섰지만 사태를 직감한 사또와 노무라는 그들이 준비한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기 위하여 서로를 다시 바라봤다.
노무라가 먼저 미소를 지어 보이자 사또 또한 모든 걸 체념한 사람처럼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은 여전히 동영상 촬영에 여념이 없던 이사무 회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노무라가 먼저 큰 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다!”
노무라의 외침이 끝나자 사또가 떨리는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일본도를 바라보며 고함을 질렀다.
“비열한 한국인들은 다케시마에서 물러나라!”
두려움을 물리치려는 사또와 노무라와 마지막 의식도 끝이 났다.
둘은 동시에 ‘얍!’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일본도를 높이 쳐들고 대담하게도 독도경비대원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탕! 탕!”
단 두발의 총소리와 함께 두 일본청년은 외마디 비명 소리도 없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 순간까지도 이사무 회장은 마치 영화를 찍는 듯 동영상촬영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장면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의 한 극우 유튜브방송을 통해서 전 세계로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었다.
이사무 회장이 찍고 있던 이 비디오카메라는 스마트폰 기능을 겸비한 고성능 비디오카메라였다.
이제 모든 사람들이 이사무 회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두 일본청년이 독도경비대원들에게 달려드는 사실상의 자해행위를 하기 전 이 자에게 목례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독도경비대원들도 이 자를 두 일본청년과 같은 편이라 의심하고 총을 겨누면서 두 손을 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이사무 회장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채 오히려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유까지 부렸다.
그리고 동영상이 촬영되고 있던 비디오카메라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카메라가 자기를 향하도록 돌려놓았다.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방금 총에 맞아서 즉사한 사또와 노무라를 향해서 경건한 표정으로 목례를 하는가 싶었다.
순간적으로 사또의 손에 쥐어진 일본도를 집어 들고 일어선 이사무 회장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회원들이다,
오늘 우리는 불법적으로 빼앗긴 다케시마를 수복하러 왔다,
이제 우리 전사들의 값진 죽음으로 다케시마 수복의 재단이 만들어질 것이다,
사나이 한 목숨 사쿠라처럼 휘날리게 되었으니 무슨 아쉬움이 남겠는가!”
마치 마음속으로 준비한 듯한 유언의 말을 끝낸 이사무 회장이 일본도를 위아래로 한 바퀴 돌리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칼을 다루는 폼새가 방금 즉사한 두 일본청년들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동도선착장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경비대의 보고를 받자마자 쉼 없이 뛰어내려온 장 대장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소리쳤다.
“경고한다 칼을 내려놓아라!
칼을 내려놓지 않으면 발사하겠다!”
단호한 어조로 외치는 장 대장을 이사무 회장은 오히려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응시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이사무 회장이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뜨고는 자신에게 총을 겨누던 경비대원들을 향해서 날렵한 동작으로 달려들었다.
“탕! 탕!”
가슴과 배에 총탄을 맞은 이사무 회장이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지만 그냥 쓰러지지는 않았다.
안간힘을 다해서 동영상이 촬영되고 있던 비디오카메라를 힘든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제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세상을 떠난다는 표정으로 마지막 미소를 띠는가 싶더니 이내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는 지금 유튜브 방송으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일본인들에게 반드시 다케시마를 수복해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한 편의 감동적인 실황극으로 인해서 일본열도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충격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편 사또의 칼에 맞아 중상을 입은 준현은 헬기로 긴급 호송되어 경북대학병원에서 응급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열 시간의 대수술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하필 칼끝의 방향이 준현의 심장을 관통했던 것인데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에 의해서 희생된 첫 한국인이 되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인 한 명과 세 명의 일본인이 사망한 이 날의 독도 대참사가 몰고 올 이후의 파장을 예견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일 간은 물론이고 북한과 미국 중국까지 개입하는 동북아시아의 판도를 뒤흔들게 될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오게 될 것을 누구라서 알 수 있었겠는가.
일본열도는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익세력들과 정계 언론계가 합심하여 선량한 일본 관광객을 살해한 한국을 타도하자는 극단적인 혐한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부추겨나갔다.
한국을 성토하는 거리집회는 점차 전국으로 확산되어 갔다.
심지어는 신변에 위협을 느낀 재일교포들은 거리를 나다닐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독도참사 이후 일본이 보여준 대응은 남북한의 팔천만 국민들에게는 일제강점기의 악몽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독도참사의 원인은 전 세계인들이 유튜브를 통하여 지켜봤기 때문에 달리 왜곡하여 주장할 근거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은 독도참사가 어떻게 발생했는지의 원인 따윈 불문곡직하고 억지주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선량한 일본인 관광객에게 총을 발사한 책임을 물어 독도경비대장과 네 명의 대원들을 국제사법재판소에 넘기고 즉각적인 독도경비대의 철수를 주장했다.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은 이런저런 말의 성찬대신 단호한 행동으로 대신했다.
전격적으로 해병대의 독도 상륙훈련을 실시함으로써 독도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강력한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2029년 3월 1일, 이 날은 일제에 의해서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조선의 민중들이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을 일으킨 지 꼭 1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날을 특별한 방식으로 기념하고자 했던 한 무리의 한국 대학생들이 있었고, 하필이면 이 날을 콕 집어서 자신들의 이벤트를 연출하고자 했던 일본의 극우단체가 있었다.
이 두 단체가 극적으로 충돌한 이 날의 사건으로 독도는 그야말로 국제분쟁의 중심무대로 빠르게 빠져들었다.
교토의 기온거리가 이제 막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삼월의 마지막 주에 이르자 절정에 이른 사쿠라의 물결로 눈이 부셔서 똑바로 쳐다보기가 부담스러운 지경이다.
거리의 불빛들과 어우러지면서 기온거리 특유의 황홀한 운치를 자아내고 있었다.
초저녁부터 야사키 회관은 눈빛들이 예사롭지 않은 건장한 청장년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전통복장인 검정색 기모노를 입었고 왼쪽가슴에는 통일된 마크인 흰색 사쿠라문양이 박혀있다.
여러 개의 방을 연결한 2층 특실에는 수십 명의 손님들이 한꺼번에 찻잔을 마주한 채 정면 중앙을 향해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들의 자세는 정중하게 무릎 꿇은 대단히 경직된 자세였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정면 중앙에는 거구의 체격에 눈썹이 짙은 칠십 대의 노인이 유일한 평자세로 앉아있다.
양팔을 가슴에 낀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만으로도 카리스마가 예사롭지 않은 그가 바로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최고 어른인 다카이 고문이다.
육상자위대의 대좌출신답게 풍모에서 자아내는 분위기가 주변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우리는 다케시마의 눈물을 최종 정산하고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해 왔던 마지막 작전을 결의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다!
지금 일본열도는 이사무 회장과 사또 노무라 군의 장렬한 희생이 있어 다케시마 수복에 대한 열기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제 교토의 사쿠라가 다케시마를 건너 진해 부산 대구 광양 서울을 화려하게 뒤덮게 될 것이다,
이것은 내선일체의 붉은 피가 아직도 끈끈히 흐르고 있다는 뜻!
때가 이르러 사쿠라가 꽃을 피우듯 때가 되었으니 우리의 계획도 실행할 때가 되었다,
이사무 회장의 마지막 미소가 다케시마의 미소가 될 수 있도록 우린 사쿠라처럼 기쁜 마음으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
모두들 각오는 되었나?”
“옛!”
사백 삼십여 년 전의 오사카성,
조선으로 출병하는 왜군의 장수들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했을법한 임진왜란 전야제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결의에 찬 다카이 고문의 발언이 끝나자 정중히 무릎 꿇은 자세로 나란히 마주 앉은 수십 명의 결사대 간부들이 정중앙을 주시하면서 다음 행동을 준비했다.
다카이 고문을 기준으로 맨 앞자리 좌측의 아베 총무와 마주 앉은 고노 간사가 찻잔을 높이 들었다.
동시에 다른 참석자들도 찻잔을 높이 들며 고노 간사의 입을 주시했다.
“사나이 한 목숨 사쿠라처럼 흩날리는 뜻은 오직 하나!”
“다케시마의 미소를 위하여!”
큰 소리로 합창할 때의 이들 표정은 흡사 전쟁터에 나아가는 전사들의 모습처럼 비장한 결기가 느껴진다.
고노 간사는 아베 총무와 함께 이 단체의 실무를 관장하는 자로서 이사무 회장의 죽음으로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명실상부한 제2인자로 부상했다.
그의 표정에선 이사무 회장과 두 대원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다케시마 수복의 결의가 이글거렸다.
지난 5년 동안 이들은 오직 이 날만을 기다리며 생업마저 등한시 한 채 반복적인 합숙 훈련으로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이제 그때가 되었다는 다카이 고문의 선언은 한 달 전의 독도참사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실에 불과했을 뿐 결전의 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다.
자정 무렵 시마네 현 에토모항에서 120톤급 대형어선 두 척이 은밀히 출항했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정체불명의 배 두 척이 어둠을 뚫고 벌써 세 시간째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선실에는 모자부터 군화까지 온통 검정색 복장으로 통일한 오십 명의 청년들이 89식 자동소총으로 완전 무장한 채 타고 있었다.
이들이 쓰고 있는 모자와 왼쪽가슴에는 그들 조직을 상징하는 흰색의 사쿠라문양이 보란 듯이 새겨져 있다.
이들은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정예대원들로서 이 새벽에 독도를 기습 점령하기 위하여 대담한 작전을 전개하고 있었다.
약 이십 년 전 육상자위대의 대좌로 예편한 다카이 고문이 전국의 자위대 예비역들을 하나둘 포섭하여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를 조직했다.
이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다케시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미소 짓게 하는 것,
그것은 불법적으로 한국이 점유하고 있는 다케시마를 무력으로 탈환하는 것이다.
다카이 고문은 전국적으로 오백여명에 이르는 대원들 중 몸놀림이 가장 날렵한 정예대원 오십 명을 선발하여 육상자위대의 예비군훈련을 빙자한 다케시마 탈환을 준비해 왔다.
지난 오 년 동안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고 매년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육상자위대의 은밀한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육상자위대에서는 이들을 ‘흑군파 전사’로 불렀는데 일체의 훈련복장이 검정색으로 치장한 덕분에 붙여진 별칭이었다.
일면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오늘의 이 대담한 거사는 고노 간사가 직접 지휘하고 있었고 한 팀당 십이삼 명씩 모두 네 개의 팀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독도가 가까워지자 얼굴에 검정색 위장 크림을 바르며 결전을 준비했다.
이들이 세 시간 삼십 분을 달려서 독도 근방까지 은밀히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순시선의 암묵적 방조도 있었지만 불빛 하나 없이 조심스럽게 접근해 온 치밀한 전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방 삼천 미터 가까이에서 엔진은 모두 꺼졌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선택된 기일답게 목표지점에 다가갈수록 바다는 잔잔한 풍랑에 자욱한 안개천지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기상청의 예보를 토대로 추천된 날짜 가운데 다카이 고문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점지 받은 날자가 바로 오늘이었다.
삼십여 명의 소대병력이 주둔하는 독도경비대를 신속하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경계근무병에게 들키지 않고 목표지점에 입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 어선에서 두 대씩 모두 네 대의 고무보트가 조심스럽게 내려졌다.
세 대의 고무보트는 경비대의 초소와 막사가 있는 동도를 점령하기 위하여 각기 지정된 목표지점으로 조용히 노를 저어갔다.
마지막 한대는 서도로 향했는데 독도관리사무소와 민간인이 거주하는 주민숙소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새벽 네 시가 가까워지고 있을 무렵, 동도 정상에 설치된 세 개의 초소에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경계병들이 2인 1조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모든 방면의 바다를 둘러싼 짙은 안개로 인하여 긴장감보다는 차라리 오랜만에 느껴보는 낭만적인 분위기가 몰려왔다.
이 꼭두새벽에 동해를 건너온 흑군파가 은밀히 다가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언제나처럼 여섯 명의 경계병들은 별다른 경계심도 없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한가로운 상념에 빠져들었다.
동도로 향한 세 대의 보트가 각기 지정된 목표지점에 다다르자 신속히 보트를 뭍으로 끌어올린 뒤 은신처에 위장하여 숨겼다.
각 팀의 본대가 은신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던 사이 2인 1조의 3개 팀 선발대가 먼저 출발했다.
오늘 작전의 성공여부는 대부분의 독도경비대원들이 잠들어있던 이 새벽시간대에 신속하게 초소를 장악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K2소총으로 무장한 두 개의 초소와 K6중기관총으로 무장한 한 개의 초소를 제압하는 임무가 이들 선발대에 주어졌다.
애초부터 선발대의 중요성을 간파한 고노간사는 흑군파중에서도 체격조건은 물론이고 정신무장이 가장 잘되어있는 최고의 전사들로 선발대를 편성했다.
이들은 지난 5년 동안 반복된 지옥 훈련으로 오늘의 임무에 최적화된 상태였다.
흑군파선발대는 날렵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이동하여 각기 목표했던 초소를 향해서 사격거리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선발대가 각기 한 명씩의 경계병을 겨냥하고 있는 89식 자동소총에는 자외선 망원경에 소음기까지 부착되어 있어 처음부터 저격 용도로 준비한 무기였다.
자신들을 향하여 알지 못하는 적의 총구가 겨냥되고 있음을 알턱이 없던 경계병들은 무료한 두 시간의 초소 교대 근무시간만을 기다리며 각자 나름의 상념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드디어 흑군파 선발대장의 작전개시 명령이 선발대의 귓속에 부착된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전달되었다.
“슝 슝 슝 슝”
초소의 경계병들이 동시에 쓰러졌다.
정확히 이마와 가슴으로 총탄이 날아든 다섯 명의 경계병들은 총탄에 맞았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복부에 총탄을 맞은 중기관총 사수 박 경장만이 흥건하게 흘러내리는 오른쪽 복부를 움켜쥐고 힘겹게 일어서려고 했다.
박 경장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황당한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적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지하게 되었다.
이 위급한 사실을 이 시각 경비대숙소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동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하나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보류시키며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쓰러진 경계병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흑군파선발대가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겨우 무릎 꿇은 자세를 취한 박 경장이 육중한 중기관총의 개머리판을 떨리는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허공을 향하여 중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타 타 타 타 타 타 타 타”
마지막 죽음의 순간, 사력을 다해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박 경장은 짙은 안갯속에 잠들어 있던 고요한 바다를 일시에 깨운 후 쓰러졌다.
중기관총 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당직을 서고 있던 송 경사였다.
야심한 꼭두새벽에 난데없이 들려온 중기관총 소리에 깜짝 놀란 송 경사가 급한 대로 비상벨부터 누른 뒤 경비대의 숙소 당직실에서 뛰쳐나왔다.
필시 사고가 났다고 생각한 송 경사는 짙은 안개 때문에 바로 앞의 시야조차 확보되지 않았지만 중기관총 초소를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초소의 사수인 박 경장을 큰 소리로 불러봤지만 온 천지가 묵묵부답이다.
“박 경장! 박 경장! 대체 무슨 일이야?”
예상치 못한 중기관총 소리에 흑군파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예정보다도 빠르게 고노 간사가 본대를 이끌고 경비대숙소 방면으로 올라왔다.
두 개의 소총 초소를 점령한 흑군파선발대가 경비대숙소를 향해서 매복 자세에 들어감과 동시에 흑군파 선발대장이 허급지급 중기관총 초소를 들이닥쳤다.
엎드린 채 쓰러져있던 박 경장을 발견한 선발대장이 직접 박 경장의 머리를 향해서 소음 총을 겨누었다.
“슝”
다급한 목소리로 박 경장을 부르며 중기관총 초소 쪽으로 다가가던 송 경사를 향해서도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던 송 경사의 가슴을 향해서 정확히 한 발의 총알이 발사되었다.
“슝”
알지 못하는 적이 발사한 총탄을 가슴에 맞고 속절없이 앞으로 꼬꾸라진 송 경사는 도무지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 가닥의 마지막 기운마저 빠져나가고 있었을 때 지난주에 갓 돌이 지난 막내아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아기를 품에 안은 아이엄마의 절규하는 모습이 그의 상념이 되어 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숨을 멈추었다.
한편 경비대숙소에서 곤히 잠자던 이 새벽녘에 중기관총 발사 소리와 비상벨까지 울려대자 경비대원들이 비몽사몽간에 화들짝 놀라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의식적으로 공동숙소로 달려온 경비대장이 매뉴얼대로 반응했다.
“김 경위! 김 경위 어디 있어!”
슬리퍼조차 신을 겨를도 없이 맨발로 김 경위가 달려왔다.
“네 여기 있습니다!”
“대원들 전원 무장시키고 지금 즉시 밖으로 집합시켜!”
이 말에 대원들이 정복으로 갈아입으려 하자 장 대장의 입이 거칠어졌다.
“야 인마! 무장만 하고 곧장 튀어나가란 말이야!”
장 대장의 닦달에 대원들은 체육복 차림의 잠자던 모습 그대로 K2소총만 휴대한 채 현관문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경비대숙소 건물 앞마당으로 몰려나온 경비대원들이 영문을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이 모습을 흑군파는 모두 세 방향에서 매복하여 지켜보면서 총부리를 겨냥했다.
고노간사의 입가에 미소가 퍼지면서 짜릿한 전율이 머리까지 전해지는 순간이다.
그가 가장 원했던 그림이 완성된 것이다.
드디어 고노 간사의 사격신호가 떨어지자 무지막지한 자동소총들이 숙소의 현관문을 향해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사되었다.
이 자리에서만 경비대원의 절반 이상이 저항다운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흑군파의 총탄에 속절없이 쓰러졌다.
“후퇴! 후퇴! 모두 숙소 안으로 후퇴하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상대를 알지 못하는 적의 기습으로 경비대원들이 맥없이 쓰러지자 장 대장이 후퇴 명령을 내렸다.
숙소 현관의 안쪽 벽에 바짝 붙어 있던 김 경위가 소리쳤다.
“대장님! 적들이 모두 세 방향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적의 총탄이 날아드는 세 곳의 진지를 파악한 장 대장의 판단은 빨랐다.
“김 경위! 창문마다 대원들을 배치시켜서 엄호사격을 하게 하고,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예 대장님!”
네 명의 대원들만 남기고 모두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새벽 다섯 시를 십여분 남긴 시각, 다행히 아직도 지독한 안개로 인하여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적의 위치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공격을 받을 때의 짙은 안개는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제 적의 위치를 파악한 상황에서 공격을 하고자 할 때는 지독한 안개가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적으로부터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총소리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아군의 총소리는 점차 잦아들었다.
네 개의 창문을 방어막 삼아 엄호사격을 잘해주던 대원들 가운데 어느새 한 개의 창문에서만 총소리가 나고 있었다.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자동소총의 위력 앞에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최후의 순간들을 맞이하고 말았다.
장 대장은 김 경위에게 네 명의 대원들을 인솔케 하여 반대편 부채꼴 모양의 좌측 절벽뒤 암석위에 매복할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은 나머지 네 명의 대원들과 함께 삼십여 미터 떨어진 절벽의 우측 끝지점 쌍바위뒤에서 진을 쳤다.
평소 바다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곤 했던 쌍바위뒤에서 알지 못하는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적은 분명 경비대숙소 뒤를 포위하면서 달려들 것이다.
그들은 수가 많고 숙소건물이라는 방어 진지까지 구축했으니 절벽에 둘러싸인 우리를 독 안에든 쥐 신세라 판단할 것이다.
자만한 자들은 틀림없이 서둘게 될 것이고 그렇다면 분명 달려들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장 대장은 적들의 정체에 대하여 일말의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해적들인지 조폭집단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들이 보유한 총기와 사격솜씨,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로 보아서는 제대로 훈련받은 집단임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들이 설마 일본 육상자위대의 정규예비군들로 구성된 흑군파라는 사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공방전을 펼치던 쌍방이 서로 상대방의 동태를 살피기 위한 합의되지 않은 잠깐의 고요가 찾아왔다.
이 틈을 기회삼아 장 대장은 주머니에서 꺼낸 휴대폰의 단축번호 5번을 꾹 눌렀다.
이 엄중한 사태를 아직 직속청인 경북경찰청에 보고도 하지 못했다.
경찰청상황실에 연결을 시도하던 바로 그때였다.
“타 타 타 타”
한 무리의 흑군파들이 숙소를 향하여 자동소총을 난사하면서 달려들었다.
동시에 좌우로 나뉜 두 무리의 흑군파가 김 경위와 장 대장이 매복하고 있던 방향으로 거침없이 달려왔다.
저들은 지금 숙소를 벗어난 잔당들을 일거에 소탕할 요량이었던지 자동소총 소리가 잠시도 멈추질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옅어지지 않은 안개의 천지는 적의 동태를 파악하면서 다가오는 적을 기다리는 진영에게는 언제나 유리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부채꼴 모양의 절벽방향으로 달려오는 두 무리의 적들을 향해서 처음으로 반격다운 반격을 시작했다.
장 대장의 발사명령이 떨어지자 절벽의 양끝지점에서부터 빗발치듯 총알세례를 퍼부었다.
“타 타 타 타”
“여기 상황실입니다, 경비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이 소리는 총소리가 아닙니까? 대장님! 대장님!”
장 대장의 휴대폰에서 다급하게 들려오는 소리였지만 이미 휴대폰은 땅바닥에 떨어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엎드려! 엎드려!”
고노 간사의 당황한 고함소리가 짙은 안갯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엄폐물 뒤에 숨어서 일방적으로 노출된 적을 대적하는 상황은 고노 간사가 가장 원했던 상황이다.
그런데 작은 승리에 도취된 잠깐의 방심으로 적에게 노출되는 정반대의 상황이 만들어졌다.
다소 싱거울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흑군파의 진격이 한순간의 방심으로 독도 경비대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고 말았다.
제2팀과 제3팀의 절반이상이 허무하게 쓰러졌지만 그렇다고 전세가 뒤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또다시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을 때 장 대장은 액정이 깨진 채 땅바닥에 패대기 쳐진 휴대폰을 수습하여 절규에 가까운 상황실 당직자의 외침에 답하기 시작했다.
“적의 기습을 받았다! 적의 실체를 알 수는 없으나 일본말을 쓰고 있다,
적의 규모는 소대급이상으로 추정되지만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 대원의 피해는 아니 생존대원이 고작 열 명도 안 된다,
얼마를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상!”
이미 아군의 위치는 노출되었고 적은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조여 오고 있다.
장 대장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았다.
숫적인 중과부적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투항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렇다면 용감한 람보처럼 화끈하게 싸우다가 최후를 맞이하되 적에게도 최대한의 타격을 주는 방법, 그 방법 외에는 달리 묘책이 없었다.
죽기로 싸우다 보면 혹시 악몽에서 깨어나는 기적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지만 지금으로선 차선책 따윈 생각할 겨를도 없다.
마음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돌격!”
이 한마디에 좌우 방어막 뒤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한 개 분대 급의 잔여 독도경비대원들이 모두 따라나섰다.
이 지구상에 생존해 있는 모든 독도경비대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람보처럼 총질을 하면서 앞으로 치고 나갔다.
마치 교활한 뱀처럼 땅바닥을 기어 오다시피 다가오던 흑군파를 향해서 발사되는 총알은 신기하게도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독도경비대원들의 엄청난 에너지에 압도된 탓이었을까,
후방에 있던 고노 간사를 비롯한 서너 명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전멸상태에 이르렀다.
아직도 온전한 전력을 유지하던 흑군파 제1팀이 경비대 숙소 창문을 방어막삼아 끈질기게 저항하던 경비대원을 후문으로 치고 들어가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경비대의 잔여 병력이 후방에서 진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끈질기게 엄호사격을 잘 해준 최 순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몇 곱절로 다해낸 최 순경은 온몸에 수십 발의 총탄이 박힌 채 두 눈을 부릅뜬 모습으로 누워있었다.
최 순경의 장렬한 죽음은 비록 적일지라도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흑군파 제1팀장이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오른발을 꿇은 상태에서 최 순경의 두 눈을 감겨 주었다.
경비대의 숙소건물을 완전히 장악한 제1팀이 현관 앞에서 진을 치게 되자 겨우 죽음을 모면한 고노 간사 일행이 합류했다.
고노 간사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치가 떨린다, 고작 열 명도 안돼 보이는 경비대 놈들한테 당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게 되면 우리가 불리해진다,
해가 뜨기 전까지 잔당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중단 없는 진격뿐이다!”
한편 장 대장은 일방적으로 불리하던 그동안의 전세를 되돌릴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시작됐다고 판단했다.
김 경위 팀에게 중기관총 초소를 장악하라고 명령한 후 자신을 따르는 네 명의 대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우리가 운이 좋아서 살아남던, 운이 나빠서 죽게 되던 우린 모두 함께 할 것이다!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끝까지 우리의 영토를 사수하자!”
장 대장이 먼저 오른손을 내밀자 나머지 대원들도 그 위에 자신들의 오른손을 포개었다.
모두의 눈가에는 기쁨과 슬픔을 초월한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멋진 정복차림은 아니었지만 장열 하게 독도를 지키다 산화해갈 독도경비대원으로서의 자부심이 서려있었다.
장 대장이 앞장섰다.
잠옷으로 입고 있던 흙이 잔뜩 묻은 체육복차림 그대로 머리를 낮게 숙인 채 무작정 헬기장 방향으로 뛰었다.
경비대 숙소건물을 방패막이 삼아서 진을 치고 있던 흑군파를 유인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이때 중기관총 초소를 이미 장악하고 있던 흑군파 선발대가 헬기장으로 뛰어가는 경비대를 향해서 사격자세를 취했다.
바로 그때였다.
“탕 탕 탕 탕”
그야말로 간발의 차이로 생과 사가 뒤바뀌었다.
김 경위가 인솔해 온 경비대원들이 중기관총 초소를 향해서 집중사격을 가하자 중기관총을 발사하려던 두 명의 흑군파선발대가 그 자리에서 사살되었다.
고노 간사는 십오 명 남짓한 흑군파 잔당을 인솔하고 헬기장 쪽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동해바다의 지평선 근처에서 태양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자 안개에 갇혔던 시야도 조금씩 회복되었다.
중기관총의 방아쇠를 잡고 있던 김 경위의 오른손에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지금이다!”
김 경위의 짧은 한마디를 신호로 손마디만 한 총알들이 가지런히 잘 들어가도록 부사수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서도에서도 들릴만한 지축을 가르는 중기관총소리가 쉴 새 없이 난사되었다.
“타 타 타 타 타 …”
다가오던 대여섯 명의 흑군파가 동시에 쓰러졌지만 아쉽게도 김 경위 팀의 전과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양쪽의 초소에서 저격자세의 흑군파선발대가 쏜 소음 총에 김 경위 팀의 대원들이 차례대로 쓰러졌다.
마지막 숨을 헐떡이던 김 경위의 왼손을 잡기 위해서 이 순경이 안간힘을 다했다.
끝내 이 순경의 오른손가락이 김 경위의 손끝에 간신히 닿았을 때 김 경위가 미소 지으며 눈을 감았다.
곧 이 순경마저도 자신들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회한을 남긴 채 독도의 품속으로 녹아들고 말았다.
최소한의 방어막도 없는 탁 트인 헬기장에서 아군과 적군은 그렇게 십여분 동안을 모두가 람보처럼 싸웠다.
희미하게 퍼져있던 안개마저 사라졌을 때 참혹한 전쟁터에는 오직 한 명만이 생존해 있었다.
고노 간사가 주변을 돌아봤을 때는 잡풀을 제외한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 있었다.
잠시 후 서도를 점령한 흑군파 4팀이 민간인 부부와 관리사무소 공무원 두 명을 결박한 채 동도로 건너왔다.
건너오기 전 이들은 주민숙소 옥상에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라는 검정색 글귀가 써진 대형 욱일기를 설치했다.
헬기장의 중앙에도 대형 욱일기가 설치되었고 무릎 꿇은 고노 간사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흐느꼈다.
“이사무 회장님! 사또 노무라 군! 우리가 해냈습니다!
드디어 다케시마가 일본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일억 신민이 그토록 소원하던 다케시마의 미소작전이 성공했습니다!
두 번 다시는 다케시마가 눈물 흘리지 않도록 끝까지 지켜내겠습니다! 으흐흐흑”
이 장면을 시작으로 실시간 동영상이 본격적으로 촬영되었다.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가 직접 운영하는 유튜브방송이 생중계되기 시작했지만 일본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워낙 극비에 진행된 작전이라 소수의 관계자들 외에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몇몇 흑군파들은 경비대숙소 앞 암벽을 타고 내려가 한자로 새겨진 ‘한국령’ 글씨를 시멘트를 발라서 지워버렸다.
그 위를 흰색페인트로 바탕칠을 한 후 다시 붉은색 페인트로 ‘일본령’이라고 새겼다.
독도의용수비대가 1954년 암벽에 새긴 ‘한국령’ 대신 ‘일본령’으로 다시 씌어졌다.
이것은 독도의 주인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뒤바뀌었다는 상징적인 조치가 되기에 충분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일본 어민들은 여전히 독도를 자유롭게 들락거렸다.
심지어는 동도 선착장에 태연히 ‘시마네현 오키군 다케시마’라고 새겨진 나무 표시판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이에 격분한 참전군인 출신 울릉도 청년 삼십삼 명이 독도의용수비대를 조직하여 자비를 들여가며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독도를 지켜냈다.
그 당시 그들은 바다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암벽에 ‘한국령’이라는 글씨를 크게 새겼던 것인데 지금은 흑군파에 의해서 일본령으로 다시 새겨지는 치욕을 당했다.
헬기장위에 설치된 대형 욱일기 옆에는 약 사십구에 이르는 흑군파대원의 죽음이 나란히 누워있었고 경비대 숙소 앞에는 삼십삼 명 독도경비대 전원의 죽음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생포한 두 명의 독도관리사무소 공무원과 거주민 가족 두 명이 포승줄에 묶인 채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혹시 있을지 모를 한국공군의 공중폭격에 대비한 방패막이 인질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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