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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7. 2024

독도전쟁

2회

새벽 여섯 시경, 대통령은 경찰청장으로부터 일본어를 구사하는 소대급 이상의 미확인 집단으로부터 독도가 공격받고 있다는 긴급보고를 받았다.

이미 삼분의 이가 넘는 독도경비대원들이 전사했고 생존대원들의 안위도 장담할 수 없다는 급보였다.


새벽 여섯 시 오십 분경, 새롭게 신축된 청와대 신청사의 지하에 위치하여 지하벙크라 불리는 국가위기관리센터 상황실,

일곱 시에 예정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앞두고 미리 와서 대응책을 고심하던 대통령에게 안보실장과 비서실장이 허급지급 달려왔다.

안보실장이 다가와 예상치 못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절묘한 것이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의 항로인데 뭔가 석연치가 않습니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하여 서해상을 휘젓고 다니던 레이건호가 어제 오후부터는 동해상에 진입하여 지금 이 시각 독도 인근 해상에 머물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어쩌면 일본정부에 의해서 치밀하게 계획된 작전일 수 있습니다”

정면을 주시한 채 입술을 깨어 물면서도 표정을 흩트리지 않던 대통령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그 부분은 좀 더 살펴본 후에 대응하도록 합시다!”


오전 일곱 시 정각, 일체의 통신이 두절된 독도경비대로부터는 현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NSC위원들은 대형 모니터를 통하여 독도의 지금 상황을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일본의 한 극우 유튜브방송이 실시간으로 생방송을 진행하고 있어 이 시각 독도의 상황을 한 치의 가감 없이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상황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차마 눈을 뜨고서는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어 일부 참석자들은 의도적으로 모니터를 외면하는 지경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표정은 달랐다.

가늘게 뜬 눈을 파르르 떨면서도 표정하나 흐트러짐 없이 정중앙만을 바라봤다.

돌아가는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분명했다.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회의에 참석한 경찰청장의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다.

“지금 방송되고 있는 저 유튜브는 다케시마 수복결사대라는 일본의 극우단체가 운영하는 방송입니다,

다케시마 수복결사대는 한 달 전에 있었던 삼일절 독도 칼부림 만행을 일으켰던 바로 그 단체로서 지금 이 시각 독도를 침범한 단체와 동일 단체로 추정됩니다!

영상을 통해서 확인된 아군의 피해는 독도경비대원 전원이 전사한 것으로…”

이 대목에서는 차마 경찰청장도 말을 잇지 못했고 참석자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영상을 통해서 경비대 숙소 앞에 나란히 누워있는 죽음들을 목격하였기에 달리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경찰청장의 브리핑으로 재차 삼십삼 명 전원의 전사로 확인되자 지하벙크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가라앉았다.


잠시 머뭇거리던 경찰청장이 메인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보고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현재 공무원 2명과 거주자 2명, 도합 4명의 민간인이 생포된 상태입니다,

일명 흑군파로 불리는 저들의 사상자는 사망 삼십칠 명으로 추정되고 생존자는 영상을 통하여 확인된 십삼 명입니다!”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 주변을 닦고 있던 대통령의 표정도 벌겋게 상기되었다.

안경을 다시 쓰면서 손에 쥔 손수건을 꽉 움켜쥐었다.

“경찰청장! 지금의 상황은 우리의 경찰력으로 대응할 수준을 넘어선 것 같은데”

아직 대통령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경찰청장의 눈에서 불쑥 핏대가 솟아올랐다.

부동자세로 선채 절체절명의 심정으로 절규하듯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즉시 경찰특공대를 출동시켜서 극악무도한 살인자들을 제압하고 경찰의 명예를 걸고 독도를 다시 탈환하겠습니다!

저희들에게 맡겨주십시오!”


이때 국가안보실장이 대통령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재로서는 일본의 다음 행보를 고려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금 즉시 군을 투입하여 신속하게 평정해야 합니다!

우리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서 일본의 오판을 막아야 합니다!”


대통령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이미 결심은 섰다는 듯 국방부장관을 바라보며 단호한 어투로 명령했다.

“장관! 지금 즉시 독도까지 군 병력을 보낼 수 있는 가장 신속한 방안을 찾아보세요!”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국방부장관은 일체의 망설임 없이 비상 상황에 대비한 매뉴얼대로 대답했다.  

“대통령님! 포항 해병대 제1사단에 배치된 공격용 헬기 마리온으로 병력을 급파하면 한 시간 반이면 독도에서의 작전이 가능합니다,

독도의 지형사정상 우리 해병대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병력의 규모는 5개 분 대 사십 명 가량입니다,

병력을 수송할 마리온 다섯 대는 지금 현재 출동 대기 중에 있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지체할 것 없습니다,

지금 즉시 마리온의 출동을 명령해서 흑군파 무리들을 완전히 소탕하세요!”


대통령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지자 국방부장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민첩하게 바로 옆방의 지하벙크 통신실로 이동하여 대기하고 있던 해병대 사령관에게 추상같은 대통령의 명령을 하달했다.

“사령관! 지금 이 시각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마리온을 출동시키시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중으로는 독도를 탈환해야 합니다!”

전화기를 잡은 장관의 오른손이 가볍게 떨렸다.

전화기를 얼마나 꽉 쥐었으면 수화기를 내려놓던 오른손이 제대로 펴지지 않을 정도로 경직되었다.


오전 일곱 시 삼십 분,

드디어 대기하던 마리온 다섯 대가 포항에서 출격을 개시했다.

아직 옅은 안개로 인하여 시야가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편대장인 유 소령은 이 정도의 안개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제일 먼저 치고 나갔다.

앞으로 한 시간 반을 이런 식으로 날아가야 하는데 유 소령 같은 베테랑 조종사가 길잡이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한 비행이었다.

눈을 감고서도 독도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

이것은 끝임 없이 반복된 훈련이 있었기에 가능한 마리온 조종사들만의 특화된 배짱이었다.


국방부장관이 다시 자리에 착석하자 벙크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숨쉬기조차 불편한 지경이 되었다.

이때 대통령은 예정에 없이 걸려온 뉴프레지 미국대통령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한국대통령은 내 말을 잘 들으세요!

미국은 독도문제로 한일 간의 무력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독도문제는 우리가 중재를 잘해서 원상으로 되돌려 놓을 테니까 미국을 믿고서 기다려주세요,

한국군의 무력동원은 절대로 안 됩니다!”


미 대통령은 마치 청와대의 지금 상황을 세세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과거에는 CIA가 청와대를 도청하는 일도 있었다지만 현재의 국내 보안 수준으로 볼 때 청와대가 뚫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통령의 머릿속은 빠르게 정리됐다.

‘이것은 일본정부의 농간이 분명하다,

뉴프레지를 내세워서 우리의 대응을 지연시키려는 비열한 술수가 분명해!’

잔뜩 굳은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던 대통령을 지켜보던 국가안보실의 최 실장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대통령님! 우리나라의 영토가 유린되었고 국토를 수호하던 독도경비대원 전원이 희생된 국가적인 비상사태입니다!

미국이 개입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 사태에 대하여 일본정부가 책임질 일이 있다면 대한민국 정부는 응당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오처럼 미국의 압박이 착착 들어왔다는 것은 처음부터 미일 간에는 사전 조율이 된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는 흑군파라는 우익단체를 내세워서 일본정부가 기획한 독도침략 전쟁행위로 규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 실장의 방금 이 말이 아니었더라도 대통령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확한 타이밍에 한국대통령을 압박하는 미국대통령의 전화가 걸려왔다는 것은 일본정부의 치밀한 계산이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면 이번 독도 사태는 처음부터 일본정부가 깊숙이 개입된 사건으로서 저들은 애당초 독도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뜻일 게다.

미국을 방패막이 삼아서 이참에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로 고착화시키겠다는 의도가 분명하다면 문제는 미국을 어떻게 물리친단 말인가!

중간에 미 항공모함이 가로막고 나선다면 정녕 무슨 수로 독도까지 진격할 수 있단 말인가!


잠시 후 다시 걸려온 뉴프레지 대통령의 목소리는 여유가 넘쳤다.

마치 다 큰 어른이 어린아이를 어르고 달래듯이 편안하게 말했다.    

“조금 전 일본 수상과도 통화를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여서 다시 전화했어요,

한국대통령의 지금 심정은 이해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판단하기 바랍니다,

사실 난 양국 간의 고리타분한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지만 또 관심도 없어요,

나의 관심사는 걸핏하면 우리의 신경을 건드리는 북한과 중국이에요!

두 적성국을 견제하는 것도 벅찬 일인데 미국의 오랜 우방인 한국과 일본이 무력분쟁을 시도한다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어요!

이미 우리의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가 독도 인근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한국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만약 나의 경고를 무시하고 한국군대가 이동을 강행하겠다면 나도 한국을 우리의 우방으로만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 두겠어요!”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늘어놓은 뒤 전화를 끊어버린 미국 대통령의 태도는 분명 무례하고 편파적이었지만 사실 이런 일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만도 아니었다.

약소국이 감내해야 했던 비애를 지금 대통령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대통령도 아니었다.

우리의 국토가 적에게 점령당한 이 치욕적인 현실 앞에서 꽉 쥐어진 대통령의 두 주먹에서는 울퉁불퉁 솟구친 실핏줄들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한편 일본은 지난밤부터 수상을 위시하여 정부의 주요 관리들이 퇴근도 하지 않고 정부청사에 대기하고 있었다.

새벽 다섯 시 반경 자위대를 통하여 다케시마의 탈환이 임박했다는 보고를 받은 일본 수상이 회심의 미소를 짓자 정부청사에서는 갑자기 환호성이 터졌다.

수상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각료들이 일제히 만세를 부르며 승리를 자축했다.


사실 수상은 연초 일본회의의 최고 의결기구인 중앙이사회에 참석했을 때 상임이사 자격으로 자리를 함께했던 다카이 고문으로부터 다케시마 탈환에 대한 언질을 받았었다.

이후 육상 자위대를 통해서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의 실행능력을 점검한 수상은 은밀하게 정부차원의 지원을 마다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번 거사는 실제적으로 일본을 좌지우지하는 일본회의가 주도한 프로젝트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대의 최고 통솔부는 정부가 아닌 천황 직속의 대본영이었고 이후 최고 지도회의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다가 지금의 일본회의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케시마 문제로 한국과 국지전이 발생할 경우 미국의 행보가 제1차 관건이라고 판단한 수상은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뉴프레지 대통령에게 온갖 감언이설로 자국 편을 들어달라고 설득했다.

이번에 미국이 도와준다면 일본은 국방비를 더욱 증액하여 동북아시아에서 미군이 떠안고 있는 부담을 크게 덜어주겠다면서 백악관을 집중 설득했다.


뉴프레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또 한 가지의 논리가 더 있었다.

강력한 미일군사동맹으로 중국 러시아를 견제하고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에서 균형외교를 자처하며 자주노선을 고집하는 한국의 기를 꺾어 놓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125년 전, 러일전쟁을 앞두고 자신들이 취한 가장 우선적인 조치가 바로 군사적 요충지인 독도를 자국영토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같은 맥락에서 다케시마를 탈환함으로써 군사강국으로 나아가는 상징적인 조치로 삼으려 했다.


이에 대한 백악관의 계산은 대단히 빨랐다.

귀여운 동생마냥 온갖 아양을 다 떨면서 딸랑딸랑거리던 일본수상의 요청도 있었지만 이참에 한국을 길들여보겠다는 미국대통령의 심산도 작용했다.

말 잘 듣는 일본과 달리 북핵문제는 사사건건 엇박자를 내고 있었고 MD의 일환인 사드배치는 중국눈치 본답시고 겨우 한 개 포대만 배치된 상태다.

주한미군의 주둔비 증액문제 등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던 한국정부였다.

강력한 한미일군사 동맹으로 북핵문제와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을 견제해야 하는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었지만 일본과는 군사동맹을 맺을 수 없다며 끝까지 참여를 거부하는 한국의 반대로 큰 차질을 빚고 있었다.

이번 기회에 미국의 강력한 힘을 보여주어서 한국을 그들의 영향권하에 단단히 묶어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바로 이것이 일본이 요청한 디데이에 맞추어서 레이건호를 동해로 급파하면서도 한국정부에는 일언반구도 없었던 그간의 사정이었다.


한국과 일본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던 바로 그 시각,

고노 간사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촬영하여 SNS로 전송한 다케시마 점령 소식은 한일 양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한일 양국의 모든 방송사들은 정규방송을 전면 중단한 채 독도에 대형 욱일기가 펼쳐진 동영상을 반복적으로 내어 보냈다.


도저히 마음이 안 놓였던지 뉴프레지 대통령이 한 시간 남짓 사이에 벌써 세 번째 전화를 걸어왔다.

독도문제로 한일 간에 전쟁이라도 발생할까 봐 꽤나 초조했던 모양이다.

“한국대통령이 내 말을 듣지 않고 섣불리 군대를 출동시킬까 봐 다시 전화했어요,

일본수상이 나한테 중제를 요청해 왔는데 독도문제를 한국하고 평화회담으로 풀고 싶다는 거예요,

한국대통령의 생각은 어때요?

우리가 북핵문제를 좀 강한 톤으로 풀려고 했을 때 한국대통령이 우리를 설득해서 미북정상회담으로 풀게 했잖아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스몰딜 합의안이었어요,

평화회담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은 한국이 선호하는 방식이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나의 중재를 거부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이쯤 되자 대통령도 약이 올라서 더 이상은 정중한 톤으로만 대꾸할 수가 없었다.

“대통령님! 대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

이 시각 대한민국의 영토가 침략당했습니다,

만일 하와이나 괌이 다른 나라의 침공을 받았다면 대통령님께서는 느긋하게 평화회담으로 해결하시겠습니까?

우선 우리나라의 국토를 침략한 적을 물리치는 것이 급선무지 않겠습니까?

그 이후 적의 침략으로 발생한 손실 배상금을 청구할 때나 평화회담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한일 간의 문제로서 죄송하지만 미국의 간섭을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바빠서 이만 끊겠습니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먼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찬물 한잔을 들이켬으로써 겨우 진정시키고 있었을 때 국방부장관이 대통령 곁으로 다가왔다.

“대통령님! 안개로 인한 악조건 속에서도 해병대 1사단의 마리온이 독도를 향해서 출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레인건호가 독도진입을 방해하고 나선다면 뚫고서 진격해 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국방부장관의 이 말에 대통령이 잠시 눈을 감으며 고민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즉시 가용가능한 우리의 해공군 전력이 얼마나 된다고요?”

“예! 이지스함 세 척과 잠수함이 열두 척이고, 해상초계기가 열여섯 대, 대잠헬기가 스물세 대입니다,

그리고 지금 즉시 출격 가능한 전투기가 모두 예순 대 가량입니다!”


대통령이 또다시 눈매를 가늘게 떠는 가 싶더니 비장한 어투로 명령했다.

“장관! 오늘 점심은 독도에서 먹어야겠습니다!

해병대사령관에게 지금 바로 명령하세요!

설사 미 항공모함이 가로막고 나서더라도 마리온은 개의치 말고 뚫고 지나가라고 하세요!

그리고 지금 즉시 우리의 모든 해공군 가용전력을 총출동시켜서 마리온의 진격을 엄호하도록 합시다!”


대통령의 추상같은 명령에 국방부장관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초강대국 대통령이 무려 세 번씩이나 전화하여 우리 군의 독도진격을 저지하겠다고 공언하였음에도 우리나라 대통령은 지금 용단을 내렸다.

우리나라의 국토를 수호하는 것은 군통수권자의 당연한 책무겠지만 미국대통령의 강력한 경고를 거절하고 군대를 출동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다.

대통령의 단호한 명령에 대해서 국방부장관은 순간적으로 의외의 답변을 하고 말았다.

“고맙습니다. 대통령님!”

“예엣?”

“아 아닙니다! 대통령님의 명령을 즉각 이행하겠습니다!”


육군 사성장군 출신으로서 삼십 년 이상을 야전군에서만 잔뼈가 굵은 국방부장관,

이 중요한 순간에 그가 보인 이런 행동은 국토를 빼앗긴 노장의 분노를 십분 헤아리는 대통령에 대한 경의의 표시였다.

대통령은 자신을 향해서 거수경례를 하던 노장의 오른손 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거수경례로 답례했다.

지금 대통령이 하고 있는 짧지만 대단히 절도 있는 자세의 거수경례는 군통수권자로서의 단호한 의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행위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참석자들 가운데 이런 상황에서 감히 어느 누가 대통령의 추상같은 명령에 딴지를 걸 수 있었겠는가?

우리나라의 국토가 일본에 점령당한 국가적인 위기사항 앞에서는 그 어떤 다른 선택지도 있을 수 없었다.


이 시각 일본의 언론들은 그동안 한국에 불법적으로 점령당한 다케시마를 수복했다며 일본 열도를 축제분위기 속으로 달구어 나갔다.

반면 국내의 여론은 독도 수복을 위한 즉각적인 군사작전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을 개탄하는 비판 여론으로 들끓었다.

우리 군의 출동사실을 정부가 비밀에 부친 탓이다.

미 항공모함마저 독도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자 이제는 정말로 독도를 빼앗기게 되었다는 절망감이 팽배해졌다.

절망감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고 국민들의 분노는 청와대의 홈페이지를 다운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부청사를 향해서 돌멩이가 날아드는 사태에 까지 이르렀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승리를 예감한 일본은 의기양양한 태도로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정부의 대변인격인 관방장관의 짧은 논평으로 이러한 사실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일본정부는 일한양국이 고도의 평정심을 발휘하여 작금의 사태가 해결되기를 바라며 한국 정부에 조속한 회담을 제의한다.

만일 한국정부가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무력 동원을 감행한다면 일본도 자국민 보호차원에서 즉각 대응할 것이며 이것은 양국 모두에게 불행한 사태로 비화될 수 있음을 엄중 경고한다!”

한마디로 선전포고였다.

일본이 이렇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든든하게 뒷배를 받쳐주고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었다.

항공모함 레이건호가 독도 근방에 배치되어 있는 이상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초강대국 미국대통령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의 가용전력이 총출동하여 지금 독도를 향해서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오른 뉴프레지 대통령은 그의 발언이 단순한 엄포가 아님을 백악관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하여 노골적으로 밝혔다.

“미국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가 무력분쟁을 야기한다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불가피하게 양국의 분쟁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일본해협에 진출해 있는 로널드 레이건호는 어떤 경우에도 한국군의 독도진입을 저지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무력의 사용도 불사할 것임을 경고한다"   

이것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미국의 노골적인 일본 편들기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한국정부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오늘 점심을 독도에서 먹고 싶다는 대통령의 단호한 의지는 국방부장관에 의해서 해병대사령관에게 그대로 하달되었다.

사령관이 정면의 벽시계를 바라본 순간 시곗바늘은 오전 여덟 시 오십 분을 가리켰다.

이제 독도까지는 앞으로 십분, 겨우 십 분이 남았을 뿐이다.

독도를 지나가는 길목에 정박 중인 레이건호에서는 빠르게 다가오는 한국군의 헬기편대가 레이더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 척의 이지스함과 수십 대의 전투기까지 한국군의 가용 전력이 새까맣게 몰려오는 것을 발견하고 승무원들은 경악했다.


드디어 항공모함에서 전투기편대가 출격했다.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마리온 편대를 향해서 되돌아가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경고를 반복적으로 되풀이하면서 대단히 위협적인 비행을 시작했다.

“동맹군을 상대로 공격하고 싶지 않으니 즉각 돌아가라! 저지선을 넘으면 발사하겠다!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협조하기 바란다!

기수를 돌리지 않으면 발사하겠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기수를 돌려라!”


이것은 경고라기보다는 돌직구처럼 달려드는 마리온을 향한 읍소에 가까운 하소연이었다.

당황한 미전투기 편대장에게 가장 앞장서 날아가던 마리온의 편대장 유 소령이 비장한 목소리로 응대했다.

“적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의 영토를 지키기 위하여 출격하는 대한민국의 해병대다,

공격을 하고 말고는 귀관의 선택이겠으나 우린 죽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것이다! 이상!”


이 시각 일본자위대는 독도를 향해서 출격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엔진을 가열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자랑하는 제로센의 현대판 버전 F2전투기 편대가 가장 먼저 선두 비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그 뒤를 공대공 전투기인 F15J 열 개 편대가 뒤따를 작정인데 조종사들은 모두 출격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동시에 2개 소대병력의 자위대 특공대원을 태운 잠수함 두 척도 독도를 향해서 발진할 준비를 마쳤고 그 뒤를 두 척의 이지스함이 따르게 될 것이다.


이 작전은 자위대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한일 간의 독도전쟁 매뉴얼 그대로였다.

지대공 전투기인 F2 편대가 마리온을 공격하여 한국군을 무력화시킨 다음 잠수함으로 특공대 2개 소대를 상륙시켜서 독도를 완전히 점령하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F15J 열개 편대가 한국 공군과의 전면적인 공중전을 벌이는 사이 일만 톤 규모의 아타고급 이지스함 두 척이 한국해군과의 전면전에 대비한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마리온이 출격한 사실을 확인한 이후에도 자위대의 출격을 미루고 있었다.

레이건호가 진입로를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온 따위가 독도상공으로 날아들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뉴프레지 미국 대통령의 특별한 요청도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한국군의 독도진격을 막아 줄 테니 자위대의 출격으로 더 이상 미국을 난처하게 만들지 말라는 경고에 가까운 당부였다.

일본의 목적은 독도를 실지 회복하는 것이므로 굳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필요성이 없었다.

그래서 초강대국 미국을 믿고서 느긋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리온은 막무가내였다.

최종 명령권자인 대통령으로부터 뚫고 지나가라는 추상같은 명령을 받았던 터라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돌직구처럼 쳐들어갔다.


마리온 다섯 대가 막무가내 식으로 레이건호의 저지선을 뚫기 위하여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전투기편대장은 차마 공격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한국이라는 동맹군을 상대로 그것도 자국의 영토를 지키기 위하여 출격하는 아군을 상대로 공격한다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다행히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마리온을 뒤따르던 한국 해, 공군의 모든 전력들이 더 이상의 진격을 멈추었다.

다만 주변을 맴돌면서 엄호대열을 갖추는 것으로 모종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것은 미 항공모함의 함장으로 하여금 전략적인 선택을 유도하는 고도의 군사행위였다.

무리하게 한국군의 헬기를 격추시킨다면 출동한 한국 해, 공군과의 전면전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동맹 간의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원하지 않았던 레이건호의 함장은 고민 끝에 참모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마리온의 통과는 묵인하되 그 외 한국 해, 공군의 진격을 저지하는 차선책을 선택하게 된다.


규슈의 자위대 해군기지에서도 레이더를 통해서 이러한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이 먼저 약속을 어겼기 때문에 일본수상은 뉴프레지 대통령의 당부를 더 이상은 따를 이유가 없어졌다.

수상은 즉각적인 출격을 명령했고 대기하고 있던 자위대의 가용전력들이 총출동을 개시했다.


시각은 정확히 아침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드디어 독도 상공에는 한국 해병대의 상륙기동헬기 마리온이 나타났다.

다섯 대의 마리온은 그동안 무수히 반복된 훈련을 통해서 헬기조종사들의 몸이 움직이는 대로 자유자재로 함께 움직였다.

주변의 지형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던 마리온만의 특화된 자신감은 적어도 독도상공에서만큼은 적수를 허용하지 않는 무적의 공격용 헬기였다.


독도상공을 한 바퀴 선회한 유 소령의 머릿속은 빠르게 전개되었다.

‘지금 이 전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삼십 분!

십 분 전 규슈 기지에서 발진한 F2 편대의 공격이 시작되기 전에 모든 작전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문제는 경비대숙소 앞에 인간방패막이로 잡혀있는 네 명의 민간인을 안전하게 구출하는 것이다.

동도와 서도 상공을 마치 곡예 비행하듯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지상의 흑군파를 위협하던 유 소령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것은 상황 정리가 끝났다는 표시로서 작전개시 명령이었다.


마리온이 나타나기 전부터 고노 간사는 흑군파 세 명을 요소요소에 배치시켜서 유튜브에 전송할 실시간 동영상을 촬영하도록 명령했다.

모자에 소형카메라를 부착한 띠를 묶어서 촬영하는 방식은 긴박한 현장의 상황을 훨씬 생동감 있게 유튜브에 전송할 수 있었다.

‘다케시마 수복 결사대’라는 유튜브 방송의 현재 시각 실시간 시청률은 경쟁자를 허락하지 않는 부동의 세계 1위였다.

유튜브 역사상 유례가 없던 동시접속자 일억 명이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이 말해주듯이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지금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각 초소에서는 2인 1조의 흑군파 잔당들이 공중을 향해서 무차별적인 사격을 시작했지만 신기에 가까운 마리온의 조종술에 비하면 아까운 총알만 허비하는 격이었다.

고노 간사를 포함한 나머지 다섯 명은 경비대 숙소 앞에 묶여있던 네 명의 민간인을 방패막이 삼아서 제각기 숙소 창문 하나씩을 의지한 채 다가올 적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전투의 결과를 미리 예감했던 고노 간사는 흑군파의 생존 잔당들에게 마지막 인사라도 남기려는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면서 마음을 정리했다.


이윽고 대원들의 귀에 부착된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고노 간사의 차분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제군들! 이제 우리들의 꿈은 이루어졌고 찬란했던 사쿠라는 흩날릴 때가 되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은 한 치의 아쉬움도 없이 무심한 허공에 흩어지겠지만 다케시마의 미소를 보았으니 무슨 미련이 남았겠는가!

그동안 제군들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이때 누군가 선창 하기 시작한 기미가요가 구슬프게 합창되었고 이 또한 유튜브로 생중계되었다.

이 시각 일본열도는 일왕부터 어린아이까지 모두가 눈시울을 훔치면서 기미가요를 열창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드디어 상공에서는 마리온의 프로펠러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기미가요의 노랫소리가 더욱 애잔하게 울려 퍼졌다.


포항에서 출동하여 한 시간 삼십 분을 날아온 마리온은 기관총 2정과 완전무장한 해병대원 여덟 명씩 타고 있었다.

두 대의 마리온은 사격명령을 기다리며 지상의 여기저기를 탐문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세 대는 갑자기 절벽아래 어디론 가 사라졌다.


다음순간 흑군파의 시야를 완전히 벗어난 마리온 세 대가 선착장 상공에 나타났다.

공중 8미터 상공에서 마리온이 호버링 자세를 유지하자 순식간에 해병대원들의 헬기레펠이 시작됐다.

마리온의 공격에 대비하여 지상에서 사격자세를 취하고 있던 흑군파들은 고노 간사의 총소리를 시작으로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선회비행 중이던 두 대의 마리온을 겨냥한 집중 사격은 그다지 효과적인 공격은 못되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공격방식이었다.

“타 타 타 타…”


바닷가 선착장으로 하강했던 해병대원들이 어느새 정상으로 올라왔다.

초소와 지장물의 요소요소에 매복해 있던 흑군파를 빠른 속도로 격파하면서 경비대숙소 건물을 둘러쌌다.

상공을 배회하던 마리온 두 대가 경비대숙소 옥상에서 호버링을 하는가 싶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해병대원들의 헬기레펠이 끝나 버렸다.

건물 옥상의 해병대원들이 아래로 던진 연막탄들이 쉴 새 없이 창문으로 날아드는 순간 지상의 해병대원들은 네 명의 민간인들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인질이라는 장애물이 사라지자 경비대 창문을 향해서 무차별적인 사격이 가해졌다.

흑군파의 총소리가 다소간 무뎌지는가 싶더니 또다시 우후죽순으로 연막탄이 터지기 시작했다.

뿌연 연기 때문에 건물내부의 시야가 완전히 사라지자 극심한 적막감이 흘렀다.

찰나의 적막감은 옥상의 해병대원들이 일제히 줄에 미끄러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단 한번 만에 창문을 박차고 뛰어들면서 집중사격을 가했다.

연막탄의 연기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을 때 다시금 고요가 찾아왔지만 흑군파 잔당들의 처참한 죽음도 함께 목격되었다.


유 소령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아직도 숨을 쉬고 있던 흑군파는 고노 간사 한 명뿐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오륙 미터쯤 떨어진 지점에서 고노 간사를 바라보던 또 다른 흑군파의 숨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으니 생존자는 두 명이었다.

온몸에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서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그의 이마에 부착된 카메라는 고노 간사의 마지막 죽음을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중이다.

희미하게 뜬 눈으로 힘겹게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 자신에게 부여된 마지막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자부심의 흔적인 듯했다.  


고노 간사는 다리와 복부에 여러 발의 총탄을 맞고서도 자동소총을 집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며 유 소령을 응시했다.

해병대원들이 사격자세로 다가가는 그 순간에도 고노 간사는 기어이 발사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발사된 단 한 발의 총탄이 그의 가슴 정면을 향했다.

이 한 발의 총탄으로 독도를 침범한 흑군파는 완전히 소탕되었다.

하지만 고노 간사의 마지막 숨통을 끊은 이 장면은 일본열도를 한국에 대한 집단 증오심으로 들끓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남은 시각은 단 십분 남짓,

유 소령은 신속하게 방어 작전에 들어갔지만 현실적으로 F2지대공 전투기들을 마리온으로 대항한다는 것은 타당한 작전이 아니었다.

그리고 독도의 지형구조상 지상의 해병대원으로는 지대공 전투기들의 지상폭격 시 사실상 방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좌고우면은 무의미한 시간낭비일 뿐 오직 해병정신으로 장렬히 싸우는 방법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독도를 점령했던 일본 흑군파 잔당을 전원 사살하고 민간인 네 명도 무사히 구조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청와대 신청사의 지하벙크에 설치된 대형 모니터로 현재의 독도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NSC위원들의 짧은 환호성이 터졌다.

하지만 곧 이어질 다음 상황 앞에서는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국가안보실의 최 실장과 국방부장관이 대통령을 에워싼 채 긴장된 눈빛으로 서 있었고, 다른 위원들은 초조한 기색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일 간의 독도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의 전력은 미 항공모함에 가로막힌 채 꿈쩍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거대한 거인이 심판을 본답시고 우리 측의 손발만 묶어둔 채 상대 선수의 자유로운 공격 앞에 무방비로 노출시킨 꼴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청와대 신청사 지하벙크의 벽시계는 아홉 시 이십 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곧 규슈 기지에서 발진한 F2 편대가 독도상공으로 날아 들것이다.

그러나 이에 맞서는 우리의 전투기와 군함은 미항공모함에 가로막혀서 꼼작도 하지 못하는 피를 말리는 상황이었다.

적막감이 감도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을 새롭게 정의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해답도 나올 수 없었다.


이제 대통령의 마지막 선택만이 남았다.

지하벙크에 모여 있던 NSC위원들로부터 모종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의 결단은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

충혈된 눈으로 벽시계를 바라보던 대통령이 부릅뜬 입술을 깨어 물었다.


미항공모함이 한국군의 독도이동을 철통같이 가로막고 있던 사이,

일본은 전투기와 자위대특공대를 태운 잠수함에 이지스함까지 총동원하여 이제 오 분 남짓이면 독도의 공해상에 나타날 것이다.

사십 명의 해병대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폭탄 속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어떤 경우에도 변할 수 없는 대명제는 있었지만 이 둘은 지금 상충되고 있었다.

추오도 일본에는 굴복할 수 없다는 것과 우리 땅 독도를 지키려는 사십 명의 해병대원을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어떻게 나오던지 간에 이판사판으로 우리의 해, 공군 전력이 전속력으로 진격해 들어가야 했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미 항공모함을 뚫고 지나갈 수도 없는 일이다.

자칫하면 일본과 맞붙기도 전에 미국과 먼저 일전을 치러야 하는 상상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해 있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그 어떤 결단도 유보한 채 머뭇거리던 대통령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개통된 지 십 년이 넘도록 제대로 사용한 적이 없어 구석자리에 형식적으로만 놓여있던 검정색 구식모양의 서울 평양 정상 간 직통전화기가 울렸다.

“띠리렁 띠리링”

정 위원장과 민 대통령은 형식적인 인사말도 없이 짧은 대화를 나누었고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비장감이 묻어났다.

“예 그렇게 하시지요!”


대통령이 전화기를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도 지하벙크 안에서 숨죽이던 NSC위원들은 두 정상 간에 교감된 통화 내용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팽팽한 정적감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오직 한 사람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지만 대통령은 이때까지도 아무 말 없이 벽시계를 바라봤다.

대통령이 팔짱을 낀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을 때 얼마 후 국방부와 국정원에서 동시에 보고가 올라왔다.

북한에서 발사된 북극성 3호가 일본 동북지역 상공을 지나서 홋카이도 동쪽으로부터 2000Km 떨어진 태평양 어느 지점의 작은 돌섬 하나를 정확히 명중시켰다는 보고였다.


일본을 타격하겠다는 북한의 경고가 분명했지만 이 정도에서 일본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한 쪽은 백악관이었고 예상치 못한 사태에 즉각적인 대응수단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자칫 남북한이 공동으로 일본과 전면전을 치를 수도 있는 이 급작스런 상황에 미국의 대응 매뉴얼이 없었던 것이다.

미국이 일본과 한편을 먹고서 남북한을 상대로 싸운다면 그 자체로도 상상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 여부에 따라서는 자칫 세계대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었다.

동북아시아의 진흙탕싸움이 미국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끌고 들어갈 수도 있어 백악관은 크게 당황했다.


이 시각 F2 편대는 독도 상공에 나타났고 마리온과의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분명 무기체계로 보아서는 마리온이 상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마리온은 이미 수십 차례의 반복된 독도방어 훈련으로 지형지물을 활용한 신속한 공수 전환이 가능했고, 그 능력은 독도방어에 최적화된 상태였다.

금방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공격하는 마리온은 F2 편대 조종사들에겐 마치 귀신과 싸우는 것처럼 두려움의 존재가 되었다.

공중전이 시작된 지 삼십 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마리온 두 대가 격추되지 않고 장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독도를 지척에 두고서도 미 항공모함에 발목이 잡힌 우리의 전력은 여전히 공해상을 빙빙 돌면서 하염없이 울분을 토로하고 있었다.

이때 우리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자위대의 전력은 마치 독도가 자신들의 영역인 냥 자유롭게 활기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F2 편대가 마리온을 상대로 힘겨운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을 때 F15J 열개 편대는 한국 공군과의 전면전에 대비하여 맘껏 기선을 제압했다.

마치 유유자적 하늘높이 나는 독수리들처럼 우렁찬 굉음소리를 내면서 독도상공을 위협비행하고 있었다.


드디어 2개 소대 병력의 자위대 특공대를 태운 잠수함 두 척이 동도선착장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작전 목표는 이미 방어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한국 해병대를 격퇴하고 다케시마를 탈환하는 것이다.

그들의 배후는 아타고급 이지스함 두 척이 독도근방까지 접근하여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었다.

이제 일본의 의도는 분명해졌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번 기회에 독도문제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결기가 느껴지는 총력전의 태세였다.


마리온 세 대가 격추되었다는 유 소령의 보고는 즉각 지하벙크로 전달되었고, 대통령의 두 주먹은 책상 위에서 꽉 쥐어진 채 시뻘겋게 변색되었다.

대통령 앞에 선 국방부장관은 상기된 표정으로 보고를 이어 나갔다.

“대통령님! 마리온 두 대가 F2 편대를 상대로 아직까지도 버티고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기적 같은 일입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른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더 이상의 독도수호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북극성 3호가 일본 동북지역의 상공을 위협한 상황에서도 저들을 중단시킬 수 없었다면 대체 더 이상 무슨 특단의 대책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청와대 지하 벙커의 분위기는 비관적인 전망으로 압도되고 있었다.


이때였다,

또다시 상황실의 검정색 직통전화기가 울렸다.

북한의 통일전선부장이 같은 대화파트너인 국정원장에게 지금 이 시각의 독도 상황을 물었다.

“우리 측의 상륙기동 헬기 두 대가 아직까지 자위대의 F2 편대를 상대로 힘겹게 버티고 있습니다만 더는 버티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나머지 전력은 미항공모함에 가로막혀서 일보도 전진을 못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미국 놈하고 일본 놈이 한패를 먹고서 우리 민족의 국토를 약탈하고 있는데 남조선 당국에서는 방안이 없었어 손을 놓고 있다는 말이지요!”

“아니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말이 그 말이지 않습니까?

민족의 국토가 유린되는 마당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까부수고 들어가야지 대체 남조선당국의 대응이 왜 그 모양입니까?

미국 놈들이 겁이 나서 오줌이라도 지린단 말입니까!

남조선 대통령 바꾸시라요! 우리 위원장 동지께서 하실 말씀이 계시답니다!”


국정원장이 건네는 수화기를 대통령이 받아 들자 통일전선부장을 질책하는 정 위원장의 목소리부터 들여왔다.

“이 와중에 웬 쓸데없는 소리를!”

잠시 후 착 가라앉은 정 위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통령님! 일본 놈들에게 우리의 국토를 빼앗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부득이 이제는 비상무력을 동원해야 갔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공화국이 그동안 무수히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핵무력을 지켜왔던 것은 바로 이런 날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외세로부터 우리 민족의 영토를 사수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를 취할 때가 되었다 이 말입니다!”

정 위원장의 목소리에는 이미 결심이 섰다는 듯 돌이킬 수 없는 비장감이 묻어났고, 민 대통령은 정 위원장이 결행하려는 중대 사건을 충분히 예감하면서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

“그럼 대통령님께서도 동의하신 것으로 알고 상황이 종결된 이후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정 위원장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 지 십분 남짓 지났을 때 북한발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다.

북극성 3호가 발사된 지 정확히 사십오 분 후였다.

이번에는 제1단계 북미핵합의 이후 꼭꼭 숨겨져 왔던 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 21형이 같은 방향으로 발사됐다.

일본의 상공을 지나 홋카이도 동쪽 태평양상공의 어느 지점을 지나자 갑자기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나면서 무시무시한 위력의 수소폭탄이 폭발했다.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던 원자폭탄의 3500배 위력인 티엔티 5500만 톤을 훌쩍 뛰어넘는 위력이었다.

인류역사상 가장 큰 파괴력을 보여준 구소련의 수소폭탄 ‘차르봄바’를 능가했으니 가히 지상최대의 핵무기가 폭발했던 것이다.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기사에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NK차르봄바’라는 이름으로 이후에도 계속 불리어지게 되었다.

만일 NK차르봄바가 일본 동북지방에 투하됐더라면 일본의 삼분의 일이 잿더미가 되었을 것이고, 중부와 서부지방을 향해서 한 발씩만 더 발사되었다면 일본 전체가 생지옥의 아비규환이 되고도 남을 그런 위력이었다.

수소폭탄의 위력도 위력이었지만 미 본토의 대부분이 사정권에 들어가는 화성 21형의 등장은 미국을 전략적으로 고민하게 만들었고, 전 세계는 지금 경악과 두려움을 넘어서는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드디어 독도 근해에서 한국군대의 이동을 가로막고 있던 로널드 레이건호가 일본 쪽 해상으로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 항공모함이 물러나자 일본의 모든 자위대 전력도 덩달아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미 독도에 상륙해 있던 자위대 특공대의 철수가 문제였다.

미 항공모함에 가로막혀 있던 한국 해, 공군의 모든 전력들이 일시에 몰려들자 특공대를 상륙시킨 후 대기 중이던 자위대의 잠수함도 깊은 물속으로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갑자기 잠수함이 사라져 버리자 육상자위대 특공대원들의 퇴로가 막혀버렸다.

동도와 서도 해변가 절벽아래에 삼삼오오 방어 진지를 구축한 채 필사적으로 잠수함과의 교신을 시도했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머나먼 동해바다 한가운데서 아군이 떠나버린 적진의 섬에서 저들이 느꼈을 공포와 위압감은 곧바로 전의의 상실로 나타났다.

사방에서부터 해병대원들의 포위망이 좁혀 들어오자 전투의 결과를 예감한 투항병들이 바위사이의 은신처 여기저기서 두 손을 든 채 걸어 나왔다.


이럴 때 우리 해군의 이지스함에서 발진한 국방홍보원 소속의 헬기가 제일 먼저 독도헬기장에 내렸다.

하사계급장을 단 여기자의 지휘 하에 카메라맨 병사가 맞닥뜨린 첫 장면은 독도전쟁의 최종 결과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방송카메라가 촬영을 개시하자 총탄을 맞은 채 흉물스럽게 찢긴 대형 욱일기 옆으로 정확하게 오십구의 흑군파 시신들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헬기장 아래로 뛰어 내려가자 치열했던 교전의 상흔인 듯 온 사방이 총탄으로 장식된 경비대 숙소 건물이 처참한 몰골로 서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장열하게 전사한 삼십삼 명 독도경비대원의 죽음이 드러났다.

그 순간 박 하사는 쿵쾅거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현기증이 몰려왔고 잠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은 후 다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박 하사와 함께 국방 TV라고 써진 방송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멘 김 일병도 아래의 동도선착장에 당도했다.

이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유 소령에게 다가가고 있었을 때 유 소령은 마리온의 추락과 함께 전사한 여섯 해병대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이들을 급히 독도현장으로 급파한 사람은 바로 국방부장관이었다.

꼭두새벽부터 들려온 독도침략 소식으로 큰 실의에 빠져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독도전쟁의 결과를 신속하게 알려주고자 했던 국방부차원의 조치였다.

국방 TV가 전송한 화면들은 지금부터 전 세계로 전송되어서 지구촌 사람들에게 독도전쟁의 최종 결과를 생생히 알려줄 것이다.


방송 카메라에 잡힌 다음 장면은 동도선착장 한편에 우뚝 서있던 ‘대한민국 동쪽 땅 끝’ 기념비 앞에서 펼쳐진 통쾌한 광경이었다.

케이블 타이로 손발이 묶인 채 무릎 꿇어진 오십여 명 자위대 특공대원들의 모습들이 가감 없이 전파를 탔다.

이들에게 총을 겨누면서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던 해병대 병사들의 늠름한 모습과도 절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상반된 이 두 장면은 독도전쟁의 승자와 패자가 누구인지를 단박에 알 수 있게 하는 상징적인 장면이 되었다.


이로써 또다시 충격의 격랑 속으로 빠져든 일본열도와 달리 남과 북의 팔천만 국민들은 맘껏 승전의 기쁨을 만끽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독도를 지켜낸 유 소령을 비롯한 해병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이크를 잡은 박 하사의 멘트가 작금의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없는 일본의 항복 선언이고 그 뒤를 봐주던 세계최강 미국의 패배였습니다!

일본 쪽 해상으로 줄행랑을 치고 있는 일본 자위대와 로널드 레이건호의 뒷모습이 한없이 처량하게만 보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독도전쟁의 승리는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대첩으로 불리어야 마땅하겠습니다,

여기는 남과 북이 하나 되어서 우리 땅 독도를 지켜낸 위대한 독도대첩의 현장입니다”


이것으로 제1기 뉴프레지 행정부시절 북미 간에 떠들썩하게 체결되었던 제1단계 북미핵협상의 성과물들이 보기 좋게 산통 깨지고 말았다.

미래의 핵과 ICBM급 장거리 탄도 미사일의 폐기를 선언했던 제1단계의 합의사항은 NK차르봄바라는 세기의 수소폭탄으로 말미암아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된 미국의 굴욕적인 퇴각은 분명히 치욕이었지만 그렇다고 퇴각을 결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일본과 달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하던 한국을 단지 길들이고 싶었을 뿐 이 지역에서 핵전쟁을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더군다나 전통적인 우방국인 한국까지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이런 구도의 전쟁은 그 어떤 선택지에도 없었다.

물론 오늘의 수모를 몇 배로 되갚아 주지 않는다면 초강대국임을 자부하는 미국의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만 말이다.


십일 년 전, 북한과 미국은 싱가포르에서 세기의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핵전쟁의 위기에서 지구를 구했다.

다시 한번 강산이 바뀌어 2029년 3월 말의 어느 봄날 사십 대 중반의 원숙미 넘치는 북한 지도자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건 하나를 태평양 상공으로 쏘아 올렸다.

그것은 어느 누구로부터도 의심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았던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고 위력의 수소폭탄이었다.

무려 1000Km 밖에서도 폭발로 인한 버섯구름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고 그 지진파는 지구를 세 바퀴나 돌았지만 다행히 수소폭탄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운 좋게도 지나가는 선박과 항공기가 없었던 것인데 다만 낙진피해와 방사능 오염의 우려로 한동안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물고기를 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도전쟁으로 한국인들의 북한 핵에 대한 거부반응이 사라지면서 오히려 일본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는 불사신과 같은 존재로 바뀌었다.

반면 일본에게 있어 북한 핵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84년 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핵폭탄의 위력을 직접 경험한 집단 트라우마는 보란 듯이 일본 상공을 날아간 NK차르봄바로 인하여 더욱 커졌다.


한편 이번 사건의 당사자격인 미국은 백악관 대변인의 발표를 통하여 그들 내부의 격앙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2년 전 미북 간에 체결된 한반도비핵화를 위한 제1단계의 합의안은 과거 현재 미래의 ICBM급 장거리 미사일을 완전히 폐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을 정밀 추적한 결과 그들이 제출한 신고목록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ICBM급 탄도미사일 화성 21형으로 밝혀졌다.

저들은 처음부터 기만적이고 비신사적인 방식으로 우리와 대화하였음이 자명해졌다,

우리는 저들이 보여준 수소폭탄의 파괴력만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세계를 속인 저들의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였는지 크게 후회하도록 정당한 청구서를 내어 밀 것이다”


뉴프레지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서 가지는 분노는 일반인들의 상상 이상이었는데 그 밑바탕에는 일종의 배신감이 짙게 깔려있었다.

미북 간의 스몰딜로 자신들의 숨통을 틔워준 은인에 대한 배은망덕으로 이해했다.

2년 전 여름, 서너 차 레의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핵합의에 따른 진전이 없자 뉴프레지는 큰 도박을 감행했다.

재선을 앞둔 초조함이 결단의 원인이 되었지만 사실 대북 봉쇄정책의 효과가 미미하던 당시의 상황에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미국으로서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바랐지만 현실적으로는 전략적인 인내로서 북한 경제의 숨통을 조으는 정책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런데 북한은 자력갱생형 정면 돌파전으로 북미협상의 장기화에 생각이상으로 잘 버텨냈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 정책은 사실상 북핵의 숫자만 늘려주었을 뿐 그다지 실효적이지 않은 지루한 정책이었다.

바로 이것이 뉴프레지로 하여금 정책을 수정하게 만든 직접적인 이유였다.

당시 뉴프레지 대통령은 기존 핵무기의 신고나 핵폐기의 일정표 제시 같은 북한이 강하게 거부하는 협상의제들을 다음 단계로 이월시키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이것이 2027년 7월에 있었던 21세기 지구촌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으로 평가받는 하노이 선언이다.

물론 당시의 스몰딜 합의안 어디에서도 미국과 UN차원의 제재완화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었다.

제재를 풀기 위해서는 미국의회와 UN대북제재위원회의 결의가 있어야 했는데 북핵 동결만으로는 해제가 가능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몰딜 이후 북미 간에는 상호 연락사무소가 설치되어 외교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같은 남북경협사업들이 재개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북한경제는 충분히 훈풍이 불었던 터라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북핵의 동결조치로 비공식적으로는 일백여 기에 이르는 핵무기를 비축해두고 있어 무시 못 할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았다.


처음부터 핵을 포기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북한으로서는 단지 미국이 우려하는 장거리운반 수단과 미래의 핵을 양보하는 선에서 협상을 일괄 타결 지을 생각이었다.

이것은 과거 싱가포르에서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하던 당시부터 일관되게 유지해 오던 전략이었다.

현 상태의 북핵동결이라는 스몰딜은 사실 따지고 보면 북한입장에서는 현상유지의 공고화와 같은 것이다.

다만 겉으로는 표정관리를 하면서 여전히 볼멘소리를 했다.

영변 핵시설과 평양외곽의 강성 우라늄농축시설까지 폐기함으로써 미래의 핵을 포기하였음에도 아직도 미국과 UN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다고 말이다.


물론 제1차 핵합의로 북한이 보유 중이거나 개발 중인 일체의 ICBM급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신고하고 폐기하는 절차를 거치기는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북한이 자진하여 제출한 리스트에 한정된 것이어서 형식적인 폐기절차에 불과했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로 인하여 제출된 리스트 이외의 장소에서는 실질적인 검증작업을 진행하지도 못했다.

당시 미국조야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재선에 목말랐던 뉴프레지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중간이행 단계로서의 스몰딜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그런데 재선에 성공한 뉴프레지의 생각은 조금씩 달라졌다.

비핵화를 위한 다음 단계의 협상진행에 진척이 없자 내심으로는 조급하게 성과를 내고자 했던 자신의 성급함이 자초한 실수라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무너져버린 뉴프레지는 다수의 ICBM급 장거리미사일을 산악지역 어딘가에 은닉하고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던 차였다.

예정에 없던 독도전쟁으로 그의 의심이 여실히 증명되고 말았다.


뉴프레지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스몰딜을 밀어붙였던 자신의 과오까지도 한꺼번에 씻어버리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작년 11월의 대선에서도 어렵지 않게 연임에 성공한 뉴프레지는 이제 다시 4년의 임기를 시작하는 입장이라 저돌적인 그의 스타일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파워는 이미 충분히 충전된 상태였다.

그런 탓에 한반도의 상황은 더욱 위험한 상황으로 내어 몰렸다.

트럼프시대 이후 강산이 바뀌는 동안 미국과 북한은 수도 없이 많은 회담을 전개하면서 위장된 평화의 시간을 이어오고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파탄의 시간이 도래하고야 말았다.


현재의 북미관계는 미국의 북한 코피 터주기 작전, 일명 코피작전으로 잘 알려진 평창올림픽 이전의 초긴장상태로 되돌아가버렸다.

오늘 저녁이라도 당장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평양상공을 날아들 수도 있는 전쟁 일보직전의 상황으로 전환된 것이다.

무력시위를 주도하고 있던 미국의 전략폭격기는 죽음의 백조라 불리는 B­1B였다.

핵탄두를 장착한 죽음의 백조 편대가 북한 인근의 동해상을 날아다니며 무시무시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곧 터질 것만 같은 북미전쟁의 상황을 맘껏 즐겨주고 싶었지만 당장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 일본의 현재 처지였다.

한국에 포로로 잡혀있던 자위대 특공대원들의 송환협상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던 것이다.

독도전쟁을 일본 자위대에 의한 국가 간의 침략행위로 간주한 한국 측이 전쟁포로의 송환조건으로 무리한 전쟁배상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자위대 특공대원을 송환하기 위해서는 한국정부의 요구사항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어 일본정부의 고민이 깊었다.


이럴 때 일본정부의 외무대신이 청와대를 방문하여 대통령과 마주 앉았고, 이 자리에는 주무장관인 외교부장관과 최 실장 그리고 국방부장관이 배석했다.

“한국 측이 전쟁 배상금으로 요구한 금액은 과거의 전례에 비추어 보더라도 터무니가 없습니다,

현실 타당한 금액으로 삭감하여 줄 것을 요구합니다!”

외무대신의 얼굴에 짙게 남아있던 곰보딱지의 흔적 탓에 그렇잖아도 정감 어린 인상이 아니었지만 화난 사람처럼 퉁퉁거리듯이 말하는 말투에서 더욱 차가움이 느껴졌다.

외무대신의 투박한 말투에 배석했던 우리 측 인사들이 혀를 내두르고 있었지만 대통령은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겨우 백억 달러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이 짧은 한마디가 일본정부의 대표자격인 외무대신의 말문을 가로막고 말았다.       

“… …”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귀국에 청구해 보는 전쟁배상금입니다,

귀국이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에 가한 고통의 크기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지금도 일본에는 우리 선조들의 귀를 쌓아서 만든 귀 무덤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만 당시 귀국의 선조들은 무슨 생각으로 조선인들의 귀를 잘랐을까요?

구한말 동학혁명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귀국이 자행한 살육만 해도 수만이 넘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삼십육 년간 우리나라를 식민지배할 때는 앳된 소녀들을 마구잡이로 잡아가서는 또 무슨 짓을 했습니까?

일본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삼지 않았습니까?

이 모두가 가능했던 것은 국가 간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하는 승전국의 특권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피해국의 입장에서 달리 생각해 보면 비인간적인 야만성의 폭거였습니다,

우리 인류가 진화된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진화이전의 야만성이 남아있다는 사실에 일본은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에 반해서 우린 독도전쟁의 당당한 승전국으로서 패전국 일본에게 정당한 배상금을 요구하는 것이에요,

당신들이 일으킨 독도전쟁으로 우리나라가 입은 유무형의 피해 금액이 최소 백억 달러 이상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이 금액에 대해서는 단 일 달러도 감액해 줄 의사가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입니다,   

이것은 우리 팔천만 남북한 국민들의 일치된 마음이니까 우리의 요구조건을 귀국이 수용하던지, 말던지 그것은 귀국이 알아서 판단할 일!

더 이상 이 문제로 왈가불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답이 되었습니까? 외무대신!”


이때 금테안경 속에서 눈자위를 파르르 떨고 있던 외무대신의 실핏줄이 터져버렸다.

이 때문에 눈자위가 심하게 붉어졌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기어이 하고 싶은 말 한마디를 내어 뱉고 말았다.

“그 말씀은 양국의 필요에 따라서는 차후에도 전쟁의 가능성을 열어두신 말씀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이번에도 대통령의 표정은 온화했지만 말투에는 비장감이 묻어있었다.

“귀국이 언제는 그러지 않았습니까? 물론 우리도 대비는 잘하고 있겠습니다만…”


이 날의 청와대 회동이 있고서 딱 삼일 째 되던 날, 일본 외무대신은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전쟁배상금을 일시불로 한꺼번에 지불하는 만용을 부리고는 포로로 잡혀있던 자위대특공대원들을 인솔하여 돌아갔다.

인천공항을 떠나기에 앞서 그가 남긴 말은 일본정부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비록 지금은 우리가 패전국의 입장이지만 다음번에도 같은 입장이 되풀이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전쟁포로 문제가 종결되자 작금의 북미 상황을 본격적으로 즐겨보겠다는 듯 일본은 연일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부추겼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대피 훈련을 한답시고 일주일에 한 번은 기본이고 어떨 때는 두세 번씩 사이렌을 울려대는 통에 일본열도가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이것은 일본회의와 자민당 보수우파 정권이 주도하는 저질 정치 쇼가 분명했다.

독도전쟁의 치욕을 되갚아 줄날을 기다리면서 뽀득뽀득 이를 갈았다.


일본이 전쟁배상금으로 지급한 백억 달러의 사용처가 국무회의에서 결정되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절반을 뚝 잘라서 북한으로 송금하기로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독도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것은 북한의 지원사격이었고 그 공을 따져서 정확하게 절반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독도전쟁의 희생자들에게 지급하기로 한 일정 금액의 위로금 외의 사용처가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서 국무위원 전원의 찬성으로 확정되었다.

두 번 다시는 일본이 우리 땅 독도를 넘볼 수 없도록 독도를 군기지 화하는 국방사업에 전액 투입하기로 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서 남북의 두 정상이 직통전화로 나눈 대화는 화기애애한 승자들의 축하연과도 같았다.  

“대통령님께서 챙겨주신다고 하니 받기는 하겠습니다만 우리가 받아도 되는 돈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오십억 달러라? 하하하하!

이 돈은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 우리 공화국이 받아낸 최초의 전리품인 만큼 인민들을 위해서 귀하게 집행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대통령님!”

“오늘의 이 경사는 위원장님의 결단으로 가능했습니다,

일본과는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이 늘 피해자의 입장이었습니다만 이제야 그 한을 조금이나마 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여서 북미 간에 형성된 이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잘 이겨내었으면 합니다!”

“기렇치요! 대통령님의 말씀만 들어도 절로 힘이 납니다!

이래서 기왕이면 같은 민족이 좋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암요! 같은 민족 간에는 서로 돕고 뭉쳐야지요!”


이날의 통화가 시발점이 되어서 우리 민족 앞으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시련을 헤쳐나가기 위한 두 정상 간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한편 북한으로 송금된 오십억 달러는 노동당 39호실에서 지정한 조선중앙은행 계좌로 이체된 이후 그 사용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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