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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도강 Aug 28. 2024

한반도 실행계획

3회

삼 일간의 5월 연휴가 시작되는 어린이날이다.

예년 같았으면 어린이들을 청와대로 초청하는 의례적인 행사라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작금의 위기상황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그 정도의 여유조차 사라지게 했다.

청와대 신청사의 3층에 위치한 대통령집무실에서 안보실장이 보고한 에이포용지 석장분량의 보고서를 읽고 있던 대통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피트차교수의 분석은 백악관을 현미경처럼 정교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피터차교수는 제 친구입니다만 그의 관찰력은 두렵기까지 합니다!” 


피터차교수는 최 실장의 미국 유학시절부터 막연하게 지내던 절친으로서 평창올림픽 직전에는 주한미대사로 내정되어 우리 정부의 아그레망까지 받았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평양 선제공격으로 알려진 코피작전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최종단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피터차교수의 몸속에도 우리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음을 의심하는 이가 없었다.

최 실장과 피터차교수는 최근까지도 북핵문제를 바라보는 미국조야의 분위기와 한국정부의 대응방안에 대한 허심탄회한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 정부는 피터차교수를 신뢰할 수 있는 친한파인사로 인식하면서 그의 조언을 아낌없이 받아들였는데 그의 전망은 한마디로 비관적이었다.   

독도전쟁의 대미를 장식했던 북한의 수소폭탄 발사는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강대국이 패배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는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호의 퇴각으로 백악관은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났다고 판단하고 있어 이번 사건을 없었던 일처럼 지나칠 수는 없다고 했다.

북한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이고도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을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보일 수 없는 행동이라 했다.


이것은 호시탐탐 미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몇몇 불량국가들이 향후 미국의 뒷덜미를 잡는 자신감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어 반드시 그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초강대국의 위용으로서 불량국가를 굴복시키는 방식은 언제나처럼 치킨게임 방식이라 한다.

곧 가속페달에 잔뜩 힘을 주겠지만 미국이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미국의 차는 대형트럭 나비스타이고 불량국가의 차는 미니승용차인 서브콤팩트라는 인식이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선제공격에 대응하여 설령 북한이 반격을 결정한다 하더라도 그 전쟁터는 한반도가 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의 근거라고 했다.


단 한 발이라도 미 본토를 향해서 핵탄두를 발사하는 순간 미국으로부터 어떤 형태의 보복을 받게 될지 잘 아는 북한으로서는 차라리 한국과 일본으로 분풀이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폭을 각오하지 않는 이상 서브콤팩트가 나비스타를 향해서 정면으로 돌진할 수 없듯이 북한정권이 생존을 바라면서 미 본토에 선제적인 핵 공격을 단행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대통령이 최 실장을 또렷이 응시하면서 말했다.

“결론은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재래식에 의해서든, 핵무기에 의해서든, 처참한 지옥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군요!

이 시점에서 우리의 대응전략은…

최 실장의 견해를 듣고 싶군요?”


대통령이 안보실장에게 의견을 구하는 지극히 당연한 절차였지만 최 실장은 난감하다는 듯 잠시 뜸을 들이면서 대답했다.

“현재까지도 미국이 대북선제공격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을 자제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애기하기도 그렇고 참 난감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비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중한 최 실장조차 선제공격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에 대통령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그럼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요?”

“최근 백악관에서는 북한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이미 결정은 내려졌고 은밀하게 실행준비를 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최 실장의 비관적인 전망을 듣고 있던 대통령이 안경을 벗어 벌겋게 충혈된 양 눈가를 손수건으로 닦은 후 다시 안경을 썼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다는 의미였다.

“그렇지요! 폭풍전야에는 조용한 법이니까,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했다는 가정 하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다해야겠지요,

이 지구상에서 한반도의 전쟁을 막기 위해서 가장 치열하게 몸부림쳐야 할 국가는 대한민국밖에 더 있겠습니까?

북한도 우리가 나서 주기를 바랄 뿐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을 것 같고요,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사태가 일본의 독도침략으로부터 발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일본은 결단코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독도전쟁의 명분이 되었던 독도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 삼월 일일 이후 대통령은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잠잘 수 없었다.

뒤척이며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충혈된 눈가를 비벼가면서 홀로 숙고를 거듭했다.


이번 독도전쟁으로 북한은 많은 것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평창올림픽 직전 트럼프 대통령 때 촉발된 북핵위기 국면은 이후 북미정상회담을 거치면서 안정기를 구가했다.

특히 2년 전, 북미 간의 스몰딜이 성사된 이후로는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까지 인정받으며 국제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일으킨 독도전쟁으로 북미 간의 스몰딜은 공식적으로 파기되었고, 또다시 십이 년 전 평창올림픽 직전의 한반도 위기상황으로 되돌아가버렸다.

이미 워싱턴과 평양의 연락사무소는 폐쇄되었다.

그리고 미 재무부가 주도하는 대북 봉쇄정책은 바짝 독이 올라있어 웬만한 나라들은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남북경협사업들은 미국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뚝심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그렇지만 초강대국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서 얼마나 더 압박을 버텨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북한은 한반도의 막둥이 영토 독도를 지켜주기 위하여 단 한 치의 좌고우면도 없이 엄청난 손실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작 우린 이 정도의 대미 압박도 이겨내지 못하고 굴복한다면 북한이 받게 될 배신감은 말로써는 표현하기 힘들 것이다.

‘암 그럴 수는 없지, 단연코 그럴 수는 없음이야!’


어느덧 대통령은 생각을 단순화시켜 정리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이 레이건호를 퇴각시키지 않았다면 십중팔구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었을 것이다.

처음은 미국과 북한이 싸웠을 것이고 곧바로 일본이 가세하여 미국과 한편으로 싸웠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린 동맹이라는 이유로 독도를 침략한 일본과 편을 먹은 미일연합국 편에 섰을까?

아니면 우리 땅 독도를 지키기 위하여 미국과 싸움을 벌이는 북한과 한편이 되었을까?

미국에게는 그 어떤 이익도 명분도 없는 이상한 전쟁이 분명했겠지만 그렇잖아도 독도문제로 어러렁거리던 한반도와 일본의 상황은 달랐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자칫 미국이 선제공격을 감행한다면 남북한의 어느 누구도 원하지는 않겠지만 모두가 전쟁에 이끌려 들어가는 엄청난 비극을 맞이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미국의 평양 선제공격을 막을 수 있는 해법은?     


독도에서 점심을 먹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은 독도전쟁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난 6월 초가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독도전쟁은 종결되었지만 여전히 해병대가 독도경비대의 빈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북경찰청에서 관할했던 독도수호의 임무를 해병대 제1사단으로 변경된 것이다.


‘독도수호 철통 해병부대’의 초대 부대장은 흑군파로부터 독도를 탈환해 내고 자위대의 엄청난 공격을 끝까지 막아낸 독도전쟁의 영웅 유 소령이었다.

유 대장은 독도전쟁의 실전경험을 바탕으로 독도를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그의 꿈은 해병대와 국방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점차 현실이 되어갔다.

치열한 교전의 현장답게 탄흔자국으로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던 경비대숙소를 완전히 헐어냈다.

대신 그 자리에는 철옹성 같은 웅장한 모습의 해병대 캠프를 신축하는 중이다.

독도의 요소요소에는 K‑9 자주포를 비롯한 해병대의 최신 대공포들을 빼곡하게 배치하는 작업들도 함께 진행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거제조선소에서는 막바지 건조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한국해군의 십 년 프로젝트가 있었다.

머지않아서 동해와 서해상에 세 척씩 모두 여섯 척의 경 항공모함 전단이 우리의 바다를 누비게 될 것이다.

동해바다를 지키는 최전선 군사기지로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경 항공모함과의 유기적인 협조체제가 필수적이었다.

경 항공모함에는 국산 수직 이착륙 스텔스 전투기가 탑재될 예정이었고 그때를 대비하여 기존의 협소한 헬기장도 대폭 확장하는 중이다.

이러한 조치들이 의미하는 바는 두 번 다시는 일본이 우리 땅 독도를 넘보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대통령의 전용헬기가 헬기장에 내리자 사십여 명의 해병대원들이 일렬로 도열하여 거수경례를 했다.

유 소령에게 다가간 대통령이 답례로 거수경례를 한 후 감정이 복받쳤던지 와락 끌어안았다.  

“당신들이 있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우리의 영토를 지킬 수 있었어요!

앞으로도 철통같이 우리 땅 독도를 지켜 주리라 믿습니다,

우리 정부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유 대장의 생각대로 철통 요새를 한번 만들어 보세요!

동해바다를 사수하는 철통 요새를 말입니다”


대통령이 유 대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도열한 해병대원들을 돌아보자 감격한 해병들이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질렀다.

일본 흑군파의 수중에 떨어졌던 독도를 다시 수복한 해병대원들의 자부심이 함성으로 터져 나왔다.

대통령은 모든 대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위기에서 독도를 구해낸 해병대원들의 노고를 뜨겁게 치하했다.


대통령과 함께 동행한 일행들은 유 대장의 안내로 독도전쟁의 격전지였던 부채꼴 모양의 절벽으로 이동했다.

손동작까지 가미하면서 이곳에서의 치열했던 교전상황을 직접 설명하던 경찰청장이 갑자기 목이 메었다.

감정에 복받쳐 가늘게 떨리던 경찰청장의 목소리 탓이었을까?

우리 민족의 막둥이 국토를 수호하기 위해서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졌던 독도경비대원들의 외침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새하얀 무명천에 둘러싸인 5미터 크기의 대형 비석 앞에서 대통령은 경찰청장과 국방부장관 해병대사령관과 함께 나란히 섰고 구령에 맞추어서 동시에 줄을 당겼다.

그러자 힘찬 필체로 새겨진 ‘독도대첩 승전기념탑’이라는 글씨가 드러났다.

비의 뒷면에는 삼십삼 명 독도경비대원과 여섯 해병대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경찰청장이 전사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부르고 있었을 때 대통령은 하염없는 표정으로 동해바다를 바라봤다.

독도를 지키다가 전사한 삼십구 명 젊은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감히 한 자락의 국토라도 넘보지 못하도록 우리나라가 더욱 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북미 간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서 독도는 지켜내었지만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위기의 독도를 구해주려다가 더 큰 전쟁에 휘말리게 된 북한을 이제는 우리가 지켜주어야 할 차례인데 어떻게 지켜준단 말인가.

어떻게 해야 저 기념탑에 써진 글씨처럼 명실상부한 독도대첩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머릿속은 앞으로 한반도를 중심으로 펼쳐지게 될 독도전쟁 이후의 큰 그림으로 꽉 차 있었다.

경찰청장에 이어서 해병대사령관이 장열 하게 산화해 간 여섯 해병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고 있었다.  


독도방문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대통령은 독도에서의 구상을 구체화하는 장고를 거듭했다.

대통령의 호출을 받은 윤 비서관이 대통령집무실을 들어섰다.

대통령은 눈가에 잔뜩 힘을 준채 대뜸 윤 비서관에게 물었다.

“윤 비서관은 독일통일의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뭐가 떠오르죠?”


뜬금없는 대통령의 질문에 윤 비서관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반적으로는 베를린장벽의 붕괴를 떠올립니다만…”

대통령이 팔짱을 낀 채 창가 쪽으로 다가갔을 때 창밖으로 펼쳐진 청와대의 드넓은 잔디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연초에 비좁던 여민 3관에서 새로 신축한 청와대 신청사로 입주하면서 경호상의 필요에 의한 최소한의 범위 외에는 대부분의 잔디정원을 개방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청와대 정원을 국민들과 공유하게 되면서 이렇게 직접 국민들과 눈을 맞추는 일이 잦아졌다.

그럴 때마다 대통령은 새로운 에너지원을 충전받을 수 있었고 심신이 지칠 때마다 일부러 창문을 열어놓고 잔디정원을 내려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아름다운 잔디정원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대통령의 다음 말은 다소 경직돼 있었다.

“또 다른 장면은? 나는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그 장면을 묻고 있는 것인데요?”

대통령은 지금 윤 비서관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꼬여버린 난국을 풀 수 있는 대담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었다.


윤 비서관은 최근에 동북아역사재단에서 국가안보실 제2차장 산하 통일정책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동북아역사재단의 창립멤버로 시작하여 지금까지 재단에서만 잔뼈가 굵은 윤 비서관을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은 다름 아닌 최 실장이었다.

중국의 동북공정문제와 북한문제에 정통하여 정부의 통일정책을 대통령의 철학과 공유하면서 입안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판단했던 것이다.

국가안보실의 제2차장은 과거 외교안보수석의 업무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교정책비서관과의 통일된 정책공유가 윤 비서관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중국문제만큼은 항상 미세한 차이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사드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를 사실상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로 편입되는 것으로 의심했다.

강력한 사드 레이더로 중국 동북부지방에 집중 배치된 탄도미사일 둥펑의 위치가 노출될 수 있어 큰 위협으로 인식했다.

미중 간의 전면전에 대비하여 미국은 모든 영역에서 항모전단을 중국본토로 접근시킨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대응하는 중국의 방어 전략이 무력화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드로 탄도미사일이 무력화된다면 그래서 미 항모전단이 거침없이 중국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사드는 미중 양국의 군사적 균형을 깨는 심각한 공격용 무기로 간주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윤 비서관의 생각은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있었다.

중국은 동북공정의 연장선상에서 사드문제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마치 중화제국이 변방의 속국 길들이기 하듯이 한국 길들이기의 전략도 포함돼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에게 있어 북한이란 존재는 미국이라는 현실의 적과 직접적인 대치를 막아주는 완충지대로 인식되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의 관계로 말이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온갖 망나니짓을 다하더라도 결코 버릴 수 없는 카드라는 뜻이다.


윤 비서관은 이 대목에서도 일반적인 생각 이상을 했다.

동북공정의 최종단계는 고구려 발해의 역사나 유물현장을 중국의 것으로 왜곡하는 단계에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섬뜩하게도 옛 고구려영토의 완전한 중국병합이 그들의 최종 목표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윤 비서관은 대통령이 자신에게 부여한 특별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별도의 TF팀을 만들지는 않았다.

대신 최근까지도 자신이 이끌었던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 2실 제3팀을 그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이 문제로 서 교수님을 찾아뵀을 때 교수님께서 제안하신 방안이었다.

“재단의 제3팀이 본래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정책수립을 주 임무로 하는 팀이지 않은가,

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은 반드시 동북공정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인데 이것을 간파하는 학자들이 많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일세,

대통령께서 자네에게 부여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얼마 전까지 자네가 이끌었던 제3팀을 활용하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하네만,

우리 간이니 하는 말이지만 사실 제3팀만 한 역량을 갖춘 팀을 그것도 짧은 시일 안에 새롭게 구축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보네,

적어도 통일문제만큼은 이십 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함축된 우리나라 최고의 능력집단이 아닌가 말일세,

자네가 만든 자네의 팀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저의 현재 처지가 조직을 떠난 입장인지라…”

잘 우러난 녹차 잔을 오른손으로 만지작거리던 서 교수가 얼굴에 잔뜩 미소를 머금고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오히려 이사장님께서도 기뻐하실 거야,

자네가 하는 일이라면 뭐든 지원하실 분이시지,

암! 국가와 민족을 위한 일인데 다 같이 협조해야지,

자네 후임이 된 장 팀장 그 친구가 아마도 자네가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하는 연구원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나?”

“예, 제 눈빛만 봐도 저의 생각을 훤히 읽는 친구죠,

우리 3팀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최상의 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내 그럴 줄 알았어, 내가 자네들을 재단에 추천한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네,

오천 년 우리 민족사가 질곡의 연속이었지만 끝내 중국에 복속되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우리 민족의 DNA가 우수하다는 증거가 아니겠나?

독도전쟁 이후 우리 민족은 그야말로 거센 바람 앞의 등잔불같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지만, 어쩌면 이것이 기적처럼 찾아온 민족통일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시기 자네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 엄청 무거워이, 잘해 주리라 믿겠네!”


서 교수의 말처럼 절체절명의 이 위기를 통일의 기회로 되살려내기 위해서는 그 밑그림을 탄탄하게 잘 그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원로 민족 사학자인 서 교수와 양 이사장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어 윤 비서관은 동북아역사재단의 연구 2실 제3팀에서 그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다.

사안의 성격상 정책팀의 존재여부는 우리 정부 내에서도 A급 대외비에 해당되었고, 팀의 책임자인 윤 비서관이 대통령에게 직보 하는 형태로 운영되었다.  


거리에는 6월 중순의 산들바람이 불어와 낭만의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업되었다.

윤 비서관은 종종 팀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 후 이 길을 걸으며 대화하는 것을 좋아했다.

딱딱한 사무실보다는 넓은 공간에서의 대화가 사고의 폭을 넓힌다는 선입견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서관님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돌파구라고나 할까요?”

이 말에 윤 비서관의 표정이 밝아지며 장 팀장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면서 말했다.  

“해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말이지?”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독도전쟁 직후부터 팀 내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정책팀이 구성되기 이전부터 논의를 하고 있었단 말이지?”

“네!”


지금부터의 대화는 거리에서 자유롭게 나눌만한 그런 무심한 주제가 아니다.

윤 비서관이 앞장서서 익숙한 발걸음으로 거리의 풍경과 잘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찻집으로 들어섰다.

오늘도 어김없이 간판에 매달린 작은 종에서 울려 퍼지는 청아한 종소리가 오랜 단골손님을 먼저 알아보고 반겼다.

‘커피가 있는 찻집 풍경’이란 나무간판이 미풍에 흔들리면서 종소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 아래 육중하게 생긴 목문을 열고 들어가자 갓 볶아낸 구수한 커피 향이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 찻집의 매력은 전통찻집이면서도 커피 향이 진동하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취향들이 자유롭게 공존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와 근방을 지날 때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을 정도로 자주 찾는 곳이 되었다.


윤 비서관은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는 언제나처럼 가볍지 않은 대화나누기에 적당한 구석자리를 찾아 앉았다.  

“장 팀장이 찾은 돌파구가 뭔지 어디 보따리 구경을 한번 해볼까?”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그 속에 해답이 보일 것 같습니다”

해답이 보인다는 장 팀장의 말에 윤 비서관은 하려던 말조차 아끼며 더욱 귀를 쫑긋거렸다.


“그전에 우리 팀의 이름을 생각해  봤는데요, 팀원들 간에 좀 의외의 이름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삼일특공대라고…”

“삼일특공대? 뜬금없이 웬 특공대?”

“지난 삼일절에 독도에서 우리나라 대학생들과 흑군파가 맞붙었던 사고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 현장에 있었던 친구들이 자신들을 삼일특공대라고 불렀다 합니다,

따지고 보면 독도전쟁도 거기서부터 시작되었고 110년 전 삼일독립운동의 맥을 이어나가면서 그 속에서 해답을 찾아보자는 취지입니다,

외세의 방해를 물리치고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한 정책개발이 목적이라면 특공대와 같이 민첩하게 치고 나가자는 뜻에서 의견을 모았습니다"


“삼일특공대라, 진취적인 기상이 느껴져서 내 맘에도 쏙 드는구먼!

자 이제 해답이 보인다는 그 보따리부터 풀어헤쳐봐?”

“비서관님! 고립된 북한은 미국의 선제공격을 회피할 능력이 없습니다,

일단 선제공격을 받게 되면 양단간의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고요”

“도 아니면 모다, 뭐 그런 말인가?”

“그렇습니다! 미국과 함께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던지 그렇지 않으면 두 손을 들던지!

그래서 선제공격을 회피하려면 북한을 고립에서 벗어나게 해야 합니다,

고립된 북한은 선제타격의 과녁이 명확해지기 때문에 남북한을 한데 섞어서 과녁을 흐릿하게 만들자는 뜻입니다”

“섞는다! 통일도 되기 전에, 어떻게?”


“미국의 선제공격은 핵으로 세계를 위협하는 북한이라는 악당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 과녁을 흐트러뜨려서 타격이 불가능하도록 만들자는 것입니다”

장 팀장의 다음 말을 기다리면서 윤 비서관이 탁자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을 때 그의 눈동자는 삽시간에 두 배로 커졌다.

“저희들이 내린 결론은 자유로운 이동입니다!”

“자유로운 이동? 어떻게? 누가? 뜬금없는 말 아닌가?

갑자기 통일이라도 하자는 건가?”


“대통령께서 생각하시는 독일통일의 가장 극적인 장면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요,

1989년 11월 9일 밤, 베를린장벽을 무너지게 했던 바로 그 사건…”

“그 사건?”

“그날 동독공산당이 결의했던 여행 간소화 행정조치를 염두엔 둔 말씀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이 조치의 효력은 다음날인 1989년 11월 10일 새벽 네 시부터 발효될 예정이었거든요”

“그랬지!”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모든 동독인들에게 비자발급의 절차를 간소화해서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파격적인 조치였단 말입니다.

서독뿐만 아니라 이웃한 유럽 국가들과의 국경을 사실상 개방하여 동독인들도 다른 서유럽 국가들처럼 자유롭게 국가 간 여행을 허용하는 조치였는데…”

이제야 윤 비서관은 장 팀장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개량한복을 입은 오십 대의 여주인이 다소곳한 자태로 다가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나무탁상 위에 투박하게 생긴 머그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수줍게 눈인사를 하면서 돌아서는 여주인의 뒤태는 언제나 기분을 업시키는 어떤 마력 같은 것이 있었다.

굳이 말이 필요 없는 단골손님에 대한 특별한 립 서비스라고나 할까.

이내 두 사람은 코끝을 자극하는 신선한 커피 향의 유혹을 못 이기겠다는 듯 동시에 커피 잔에 손이 갔다.

역시 심각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밋밋한 녹차보다는 자극적인 커피가 제격이었다.


이제야 윤 비서관은 허허벌판에서 뭔가의 실마리를 찾았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랬지, 맞아! 어쩌면 그 속에 해답이 있을 수도 있겠어”

자신의 사수인 윤 비서관이 장단을 맞추어주자 장 팀장의 목소리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그 당시 뒤늦게나마 동독공산당이 여행자유화 행정조치를 결정했던 것은 동독인들의 거센 요구를 들어주는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체제유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다면 그와 같은 결정은 내릴 수 없었을 겁니다”

“당연하겠지! 베를린장벽이 무너질 줄 알았다면 당연히 그런 결정을 하지는 않았겠지!”

“물론 결과는 엉뚱하게 나타났고 우린 그 결과만을 생각할 뿐이죠,

그날의 장벽붕괴는 그 대변인의 말실수가 기폭제로 작용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서 분석을 해봤으면 합니다,

만일 그때 공산당대변인의 말실수가 없었고 그래서 동독공산당의 여행 간소화 행정조치가 다음날인 11월 10일부터 아무런 혼란 없이 시행되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동독과 서독인들이 평화롭게 국경검문소를 통과하여 자유왕래가 이루어졌다면 이후 독일의 통일과정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가정을 전제로 이미 지나간 역사를 다시 복귀해 보자는 장 팀장의 말에 윤 비서관의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였다.


당시 동독공산당의 행정조치는 출국지점을 전체 국경검문소로 확대하고 경찰당국에 여행 동기를 제시하지 않아도 서독을 비롯한 외국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대단히 혁신적인 조치였다.

동독주민들의 강력한 해외여행 자유화 요구로 나온 이 조치는 다음날 새벽부터 질서를 유지하면서 시행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당시 동독 공산당대변인 샤보프스키는 이 행정조치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여행자유화 조치를 언제부터 시행하느냐는 어느 외신기자의 질문에 우물쭈물 거리는 말투로 지금 즉시 시행한다고 말해버렸다.


공산당 대변인의 어처구니없는 말실수로 인하여 그날 밤 동독인들은 베를린장벽으로 몰려갔고 극심한 혼란 속에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주변 국가들의 반대가 극심해서 한반도보다도 십 년은 늦게 통일될 것이라고 전망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밤중에 도둑이 들 듯이 통일은 그렇게 불시에 찾아왔다는 어느 노정치인의 회고처럼 독일통일은 예정에 없이 불쑥 다가왔다.


“비서관님! 어쩌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그것도 절호의 기회?”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미국의 강력한 대북 적대시 정책에도 북한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만약 그때 북한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독도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범민족적인 공감대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죠,

외세의 압박을 우리 민족 간에 잘 협력해서 풀어보자는 정서가 형성되어 있을 때, 바로 이럴 때 과감하게! 신속하게! 밀어붙여야 합니다!”

“과감하게! 신속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40년 전 동독공산당이 내렸던 결정을 북한 당국이 시행할 수 있도록 그들을 한번 설득해 보자는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삼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개성공단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통행과 통신 통관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충분한 정도의 시너지효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이참에 24시간 전면적인 삼통의 자유가 보장되는 완전한 여행자유화를 밀어붙여야 합니다!”


장 팀장의 이 말은 대단히 공격적이었고 순식간에 윤 비서관의 동공이 또다시 두 배로 커졌다.

“과감하게? 신속하게?”

“네! 북한사람들도 남으로 내려오고 또 많은 남쪽사람들과 외국인들도 물밀 듯 북으로 쏟아져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단기적으로는 선제공격의 과녁을 흩트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진정한 통일의 기반이 조성될 수 있을 겁니다”


아직도 절반의 아메리카노가 담긴 투박한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윤 비서관이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북한이 동의할까?

흡수통일의 두려움을 과연 북한지도부가 극복할 수 있을까?”

장 팀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확신에 찬 목소리 그대로였다.

“도 아니면 모를 선택해야 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어쨌든 둘 중 하나는 선택을 해야 되겠죠,

초강대국과의 전면전으로 엄청난 결과를 각오하던지!

아니면 흡수통일의 우려는 있지만 국경을 전면적으로 개방하여 일단 선제공격을 회피하고 보던지!”


“선택지는 딱 두 가지뿐! 그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시점에서 통일을 말하는 건 좀 뜬금없는 말인 것 같은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장 팀장도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윤 팀장과 시선을 맞추었다.

두 사람의 긴장도는 머리에서 진땀이 흘러내릴 지경이다.

“그래서 말인데요, 북한과 대화할 땐 가급적이면 통일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단지 미국의 선제공격을 회피할 수단으로써 하나의 방편으로서만 여행자유화를 말해보자는 겁니다”  

실제로 장 팀장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자 윤 비서관이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장 팀장의 얼굴을 닦아주면서 말했다.

“흡수통일에 대한 북쪽의 경계심을 자극하지 않도록 하자는 뜻이겠지”


장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했다.   

“그렇습니다! 단 우리 내부적으로는 통일의 대장정을 조용히 시작하면서 말입니다”

“내부적으로는 통일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네, 북에는 우리의 심중을 드러내지 않되 내부적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한 부드러운 통일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굳이 단계를 나눈다면 제3단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1단계는 전면적인 여행자유화 단계이고 이 과정을 통해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실기하지 말고 지체 없이 제2단계로 넘어가야겠지만 말입니다,

이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통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될 텐데 내외부적으로 통일을 선포하는 형식적인 프레임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제3단계는 통일의 완전체를 달성하는 단계로서…”


이제부터는 장 팀장도 잠시 여유가 생겼다는 듯 머그잔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제3단계로 넘어가려면 최소 십 년 이상의 숙성기간을 거치야 되겠지만 말입니다,

글쎄요 또 누가 알겠어요? 더 앞당겨지게 될지도…”

이 말에 윤 비서관도 작은 소리로 웃으며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삼통은 아직 개성공단에서도 해결되지 못한 민감한 문제인데,

하긴 선제공격이 임박한 시점에서는 못할 것도 없겠지만 말이야,

과녁을 흩트리기 위해서는 서둘러야겠지만 북한의 동의 여부가 관건이 되겠군,

그리고 그다음의 제2단계라, 그것도 실기하지 않고 지체 없이,

한반도의 통일 프레임으로 선제공격의 표적인 북한의 악마 프레임을 흩트려놓자는 전략인데 지금으로선 꿈같은 이야기군,

그다음 제3단계는 그건 뭐 나중문제니까 급할 건 없겠고”


윤 비서관은 이미 식어버린 머그잔을 감싸면서 미세하게나마 남아있던 잔의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장 팀장의 이 제안 외에는 달리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서 교수님의 말씀처럼 어쩌면 한반도의 위기상황이 우리 민족의 통일을 앞당길 기회가 될 수도 있단 말인가.

정말 기적처럼 이 위기상황을 잘 이겨내었을 때는 그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윤 비서관은 대통령이 자신에게 던졌던 화두가 떠올랐다.

그래서 대통령께서도 이 같은 결론을 미리 예상하시고 내게 숙제를 주셨던 것인가.

윤 비서관의 시선은 창밖을 향했고 무심한 표정으로 덕수궁 돌담길을 걸어가던 선남선녀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6월의 마지막 늦은 밤 시간, 대통령이 윤 비서관을 호출했다.

그렇잖아도 정책과제의 초안이 완성되어 보고드릴 참이었는데 잘된 일이다.

윤 비서관은 보고서를 지참하고 재단사무실에서 서둘러 청와대로 향했다.

딱히 정해둔 일정이 없어도 무시로 대통령의 호출이 있었기 때문에 윤 비서관은 가능하면 청와대와 재단사무실이 있는 서대문구를 벗어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삼일정책팀과 관련된 지시나 보고가 있을 경우는 간혹 최 실장이 동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오늘처럼 대부분 두 사람만의 독대가 이루어졌다.


집무실의 소파에 대통령과 마주 앉은 윤 비서관은 준비해 간 서류봉투에서 삼일팀이 작성한 보고서를 꺼냈다.

십오 쪽 분량의 ‘한반도 실행계획 초안’을 건네받은 대통령의 표정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붉은 사인펜을 손에 쥐더니 즉석에서 정독 모드로 돌입하여 한 장 한 장을 읽어나갔다.

중요대목은 붉은 사인펜으로 밑줄을 치기고 하고 별표를 그리기도 하면서 삼십여 분을 그렇게 보고서 읽기에만 집중한 끝에 드디어 마지막장을 넘겼다.


보고서를 내려놓은 대통령이 깍지 낀 손으로 턱을 받치며 말했다.

“제1단계는 남북한의 전면적인 여행자유화가 핵심이군요,

그것도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시급하게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선제공격의 과녁을 흩트려서 전쟁을 막아보자는 말인데 그렇죠?”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그다음의 제2단계부터가 본격적인 통일로 나아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징적인 의미의 코리아연방정부를 구성하여 최소 십 년 이상의 충분한 숙성기간을 가진 이후 제3단계의 완전한 통일체로 나아가는 전개과정입니다”

“코리아연방정부라 대단히 흥미롭군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흥분됩니다,

그런데 제1단계의 남북 간 자유왕래는 독일의 통일과정을 참고한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대통령님께서 제게 독일의 통일과정을 살펴보라는 말씀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화두가 되었다는 윤 비서관의 말에 대통령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우리 정책팀이 포인트는 잘 잡았습니다만 과연 북한 당국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것이 문제겠군요,

남북 간의 자유왕래가 시작된다는 것은 북의 입장에서는 체제의 유지와 직결된 문제라서 정 위원장으로서도 결단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특히 군부의 반대가 만만치 않을 테니까 말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심상찮은 분위기로 볼 때 정 위원장으로서도 달리 선택의 여지가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오히려 중요한 변수는 중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국요? 오히려 중국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네 대통령님, 최근 정 위원장의 고민은 중국에 대한 딜레마가 아닌지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의도를 알아차린 정 위원장이 중국을 멀리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진 것 같습니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동공이 부릅떠지고 있었다.

“중국의 의도?”

“네 동북공정입니다! 정확하게는 동북공정의 제3단계 영토문제입니다”

“계속해 보세요?”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고구려족은 중국변방 소수민족의 하나였고 고구려는 중국역사의 일부분이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역사교과서에는 고조선부터 부여 발해까지 현재의 중국영토 안에서 존재했던 우리 민족사를 통째로 중국사로 왜곡하고 있고요,

이것이 동북공정의 제1단계입니다,

제2단계부터는 실천단계로서 우리 고대사 유적지의 여러 현장들을 중국식으로 복원하는 유적지조작 단계인데 제2단계의 작업도 이미 오래전에 끝이난 상태입니다,

현재 중국에서는 우리 민족사의 흔적들이 몽땅 거리 지워진 상황으로 보시면 됩니다”


대통령이 안경을 벗어 눈자위 주변을 손수건으로 압박했다.

그만큼 스트레스가 몰려오고 있음을 암시하는 행위다.

“동북공정의 제3단계가 영토문제라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이죠?”

“고조선이? 부여가? 고구려가? 발해가? 역사적으로 중국의 소수민족이었다면, 이들이 지배했던 동북 3성 일대는 물론이고 한강 이북의 한반도마저도 역사적으로는 중국의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대단히 기분 나쁜 비약이군요!”

윤 비서관도 이 정도에서 멈추고 싶었지만 비약이라는 대통령의 말속에 담긴 안일한 인식을 흔들어주고 싶었다.

“실제로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한 1950년 이후 일정기간 괴뢰정권을 내세웠다가 서장자치구란 이름으로 편입시킨 것은 1965년이었습니다,

1986년부터 10년간 진행된 서남공정으로 티베트는 이제 중국의 역사 속으로 온전히 녹아들고 말았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의 논리는 티베트는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티베트의 현실이 앞으로 우리 민족이 겪게 될 동북공정의 제3단계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은 동북공정을 과거의 역사문제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이제 윤 비서관의 도움으로 동북공정의 실체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지나간 과거의 문제가 아닌 미래의 영토가 걸린 현실의 문제임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윤 비서관이 생각하는 대응책을 말해보세요?”

“중국이 시작한 역사전쟁에서 우리 민족은 한 치도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시작해야 합니다,

북한 또한 동북공정이 지향하는 최종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내심으로는 극도로 중국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폼페이오 회고록에도 나와있듯이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을 만큼 중국의 야욕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음,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인데 맞아요!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당장은 선제공격부터 막아내야 하는데… 임박한 북미전쟁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 민족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크기가 너무나도 큽니다!”


대통령은 지금 미국의 선제공격이 현실화되었을 때 한반도에 불어 닥칠 참담한 현실을 꿰뚫고 있었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몸서리치듯 말했다.

“어떻게든 미국이 일으키고자 하는 지금 이 전쟁을 막아내야 합니다!”

“어쩌면 대통령님! 북중접경지에 배치된 중국군의 동태를 살펴보면 베이징의 현재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군의 선제공격이 임박한 상황에서도 백악관의 결정을 저지하기 위한 그 어떤 메시지를 내지 않는 것도 유의 깊게 살펴볼 대목입니다”

“음, 중국이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이번 참에 동북공정을 완성하겠다는 것이 베이징의 의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자칫 북한 단독으로 미국과 중국 일본까지 합세하는 3개국의 협공을 감당해 내야 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어 몰릴 수도 있습니다, 대비해야 합니다!”

“… …”


윤 비서관은 지금 앞으로 한반도에 불어 닥쳐올 수 있는 위기상황들을 점검해 보았다.

그가 이끄는 삼일팀은 동북공정이 역사교과서 왜곡이나 하는 중국의 한가로운 국가정책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선제공격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중국이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으리라 확신했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이 전쟁은 북한 단독으로 감당할 수 있는 규모의 전쟁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 결말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편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북경에서는 이번 기회에 그들의 오랜 숙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겉으로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닌 척 위장하고 있었지만 물밑에서는 전략회의를 거듭하면서 숨 가쁘게 움직였다.


청나라 시대의 전통복장이 잘 어울리는 사회과학원의 허 원장이 원장집무실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회과학원은 동북공정의 총본산인 변강사지연구중심을 직접 지휘하는 입장이라 허 원장이 동북공정의 사실상 책임자라 할 수 있다.

어젯밤 중앙군사위원회의 부주석이 극비리에 회합을 소집했고 이 자리에서 북한군부 관리 사업에 대한 중요한 논의가 있었다.

독도전쟁 이후 미국의 선제공격이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자 북한군부의 일부 세력이 은밀히 군부에 접근해 왔다고 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현실화된 마당에 북한군부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의탁하여 그들의 권력과 안전을 도모하려는 뜻이다.

이제야말로 그 질긴 고구려 민족세력을 제거하고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준비해 온 동북공정의 대미를 장식할 때가 되었다는 말인데.

그러나 방심은 금물, 21년 전의 악몽이 지금도 선연하지 않은가,

정 위원장의 아버지가 쓰러졌을 때에도 북한 군부를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하여 중국으로 복속시키려던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무산된 적이 있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허 원장은 장백산천지회의 왕 회장을 떠올리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당시 왕 회장의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하여 다된 일이 뒤틀어졌다고 생각해 온 터라 그 자만 생각하면 심기가 불편해졌다.  


북경의 시 주석 집무실은 밤늦은 시각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독도전쟁이라는 매우 특수한 상황 속에서 시 주석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중대한 결단을 단행했지만 이후 번민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작은 돌섬 하나를 지켜주기 위해 국가의 명운을 건 도박을 감행했다.

북미 간의 스몰딜 이후 북한경제는 남북경협의 활성화로 모처럼만에 활력이 넘쳐나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북핵의 잠정적인 동결 조치로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까지 얻었다.

이렇듯 아쉬울 것 하나 없던 북한이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미국과의 전면전을 자초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남과 북은 본시 같은 민족이란 사실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어차피 우린 저들의 이 민족일 테니 수틀리면 전쟁도 불사하는 사이겠지만 말이다.

남과 북이 진짜로 통일이라도 된다면? 그래서 우리에게 대응하기라도 한다면?

세계 8위의 경제규모에다 NK차르봄바와 같은 가공할 핵무기를 일백 여기나 보유한 통일 한반도의 위상을 떠올리자 끔찍한 악몽을 떨쳐내겠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댔다.

이것은 한낱 새끼호랑이가 곧바로 성체 호랑이로 변신하는 문제로써 중국으로서도 용인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게 된다.


그래서 북한을 병합해 버리자는 군부의 오랜 요구사항을 독도전쟁을 겪으면서는 더 이상 묵살할 수 없게 되었다.

자신들의 바로 코앞에 전혀 관리가 안 되는 백두산호랑이를 마주할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선제공격을 목전에 둔 미국이 은밀히 중국의 협조를 구해왔을 때 시 주석은 북한영토의 병합을 묵인해 주는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순망치한의 관계가 될 수 없다면 중국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 질긴 고구려의 뿌리를 뽑아내야만 했다.

그럼에도 이런 식의 번민을 거듭하고 있었던 것은 팔십 년의 혈맹을 그것도 적성국 미국과의 합동작전으로 굴복시킨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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