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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단우 Apr 27. 2020

이겨낼 수 없는 펫로스 증후군 (2)

두 번째 죽음이 찾아왔다.

  그 날은 마침 디디가 우리집 식구로 들어오는 날이었다. 우리집에 온 건, 디디 하나만이 아니었다. 사실 디디에게는 정해진 짝이 있었다. 디디와 비슷한 크기의 점박이. 아이는 검정색과 흰색이 믹스된 시고르자브종이었다. 아빠는 장마철이라 장사도 공쳤고 해서, 단돈 5만원에 주겠다는 말에 얼른 업어왔다고 했다. 시장바닥에서 10만원에 업혀온 디디와 그 아이.



  아이의 이름은 '윤원형'이었다. 눈치챘겠지만 그 땐, 드라마 <여인천하>가 한창 유행했을 때였다. 재밌게도 우리 가족은 두 마리의 이름을 각각 '정난정'과 '윤원형'으로 지었다. 디디의 원래 이름은 '난정'이다. 그래서 동물등록증에도 '난정'이라고 써 있다.



  이름을 그렇게 지은 건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개 시장에 판매되는 개들은 사실 태어난지 1개월이 좀 안되거나 그 즈음 되는 녀석들이 많다. 어린 아이들이 젖을 물지도 못한 채, 낯설고 무서운 시장으로 끌려나와서 팔리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우리같이 개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팔려가는 '불행'에 당첨되면, 그야말로 평생을 '개고생'하는 거다. 일단, 그 시작은 이상한 작명부터였고. 엄마는 강아지들이 자라면서 이갈이를 해야 하는 사실에 무지했다. 자꾸 깡깡거리며 사람의 손을 물어재끼는 것이 표독스럽다고 했다. 엄마는 강아지를 귀여워 했지만 한 편으로는 표독스럽기 짝이 없다고 했는데, 이 모습이 <여인천하> 속 '정난정' 같다고 했다. 디디는 여자니까 '난정'이가 되었고, 점박이는 남자니까 '원형'이가 되었다.



  난정이와 원형이는 이상한 똥을 누었다. 혈변을 지리던 밍밍이와는 다른 똥이었다. 똥에서는 하얀 실이 나왔는데 실은 움직였다.




  "이놈의 개새끼가 회충 걸려 왔구나!"




 엄마는 질겁하며 새끼들의 몸에 바퀴벌레약을 뿌렸다. 동네에 개 구충제를 파는 동물병원은 없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약을 파는 약국도 없는 동네였다. 원형이와 난정이가 똥을 눌 때마다 개들에게, 똥에다가 바퀴벌레약을 뿌려댔다. 한 번은 아예 날을 잡고 시내로 나가서 구충약을 사오셨다. 우리 인간이 먹을 구충약은 사오셨지만 개가 먹을 수 있는 약은 사오지 않으셨다. 자꾸만 털에 묻어나는 바퀴약 때문에, 난정이는 뒷발로 옆구리를 벅벅 긁어재꼈다. 원형이는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어느 날부터 난정이는 회충이 박혀있는 변을 보지 않았다. 원형이는 난정이와 달랐다. 원형이는 "꾸욱- 꾹" 하는 소리를 내면서 종종걸음을 걷곤 했는데, 간혹 자리에 멈춰서서 회충이 있는 변을 누었다. 그러기를 한 달이 지나자, 원형이도 난정이처럼 멀쩡한 똥을 누는 개가 되었다.




  "사람 새끼도 힘들어 죽겠는데 개새끼를 어떻게 길러!"




  아빠와 엄마가 크게 다투면서 불똥이 난정이와 원형이에게 튀었다. 부모님의 화풀이 대상으로 가만히 맞기만 하는 아이었기에, 난정이와 원형이 대신 두들겨 맞았다. 흠씬 얻어맞은 뒤에, 집구석이 잠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곧장 마당에서 놀고 있던 원형이에게 갔다. 아무 이유 없이 원형이를 꼭 끌어안았다. 튼튼한 난정이보다 상대적으로 허약한 원형이를 더 좋아했으니까. 원형이를 안고 있으면 부모님한테 맞은 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원형이는 내 볼을 핥짝였다. 기분이 좋아졌다. 원형이와 오래 있기를 기도했다.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원형이가 보이지 않았다. 동생에게 물어보니 아빠가 아는 거래처 사장님한테 보냈다고 했다. 그 집 아들이 외동이라서 동생처럼 잘 돌봐줄거란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내 개를 뺏겼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서 아양을 떨고 있는 난정이가 짜증났다. 원형이를 좋아했고, 원형이는 동생을 좋아했고, 동생은 난정이를 좋아했고, 난정이는 나를 좋아했다. 얽힌 사각관계가 완전히 산산조각 나버렸다.



  자꾸 다가오려는 난정이를 피했다. 너는 원형이가 아니라고. 내가 좋아하던 원형이, 나처럼 매일 아픈 원형이가 아니라고. 원형이의 흔적이 남아있는 마당에서 오랜 시간 머물러 있었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환상처럼 뛰노는 내 점박이 개를 상상했다.



  개, 죽었다.


  아빠가 퇴근하자마자 말했다.




  "뭐? 누가 죽어?"


  "개 죽었다고. 원형인가 뭐신가 점배기 똥개."


  "왜?"


  "몰라~ 그냥 죽었어."




  원형이가 집을 떠난 지, 이틀만에 죽었다. 사인은 불명이었다. 아빠는 더이상 귀찮으니 묻지 말라고 했다. 회충병도 다 나았는데. 밥도 잘 먹었는데. 나랑 같이 마당에서 술래잡기도 했는데.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억지로 죽음을 캐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원형이가 죽었다.' 는 사실, 그의 부고, 그에 대한 소식들이 절망의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조용히 밖으로 나가 마당 옆 철장에 꾸려놓은 난정이의 집으로 갔다. 난정이는 나를 보면서 활짝 웃으며 꼬리쳤다.




  "난정아, 원형이가 죽었대."




  난정이는 영문도 모르고 웃고만 있었다.




  "원형이가 죽었는데 너는 왜 웃니?"




  그제서야 눈물이 하나 둘씩 흘러 내렸다. 다시금 죽음 앞에서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 자신도, 내 개도 지켜내지 못하는 무기력함에 주저 앉아버렸다.



  두 번째 죽음이었다. 밍밍이를 떠나 보내면서 죽음에 대한 첫 충격을 얻었다면, 원형이를 떠나 보내면서는 나의 무능함을 깨달았다.



  주인의 자격. 그런 것이 있다면 나는 분명 실격임에 틀림 없었다. 난정이의 등을 매만지면서 생각했다. 나는 앞으로 너도 못 지켜줄 것 같다고.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없겠지만 마지막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맑게 웃는 난정이의 얼굴에서 원형이의 얼굴이 그려졌다.



  또다시 개를 잃었다. 그리고나서 생각했다. 개를 잃는 마음은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이겨낼 수 없는 것이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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