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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네니 Jan 01. 2024

맏며느리 아닌 맏며느리의 삶

몇 해 전, 큰형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막내며느리에서 맏며느리가 되었다. 여러 해를 거쳐 할머니와 둘이 준비해 왔던 제사 준비가 더는 싫었고 맏이로서 여러 가지 일을 신경 쓰는 것도 싫어 고의는 아니었지만, 장남인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다. 그런데 차남과 결혼한 지 몇 해가 흘러 어쩔 수 없이 맏며느리가 되었다. 장녀로 살아온 내 시선으로 관찰했을 때, 집안에서 셋째인 남편의 의견은 크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보였다. 무언가를 제시하면 형의 태클이, 또 다른 무언가를 제시하면 누나의 태클이 항상 뒤따랐기에 큰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따르기만 했다. 올해는 우연히 어머님의 생신이 연초에 맞닿아 있었다. 살아가는 방식과 삶의 수준이 다른 네 가족이 의견을 맞춰 여행을 떠나거나 무언가를 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더 나이 들기 전에 형, 누나와 함께 해외여행 한번 떠나란 말도 수없이 해 왔고, 가까운 곳이라도 온 가족이 함께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생활환경에서 어쩌면 여행은 사치라는 생각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고 가족의 의견에 동의해 주는 것뿐. 어머니의 생신에 맞추어 우리 집으로 가족들을 부르자는 남편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동의했다. 우리 집이 가장 넓고 아이들이 어려서 대가족이 모여 편안하게 놀기엔 가장 적합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맏며느리도 아닌데 늘 맏며느리 역할 한다고 걱정하셨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어쩌겠는가. 나는 종갓집 며느리 역할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숨은 인재인 것을.      


평생을 맏이로 책임감 있게 살아온 생활 습관이 하루아침에 쉽사리 변할 리 없다. 어린 시절 많이 받은 덕에 나누고 베푸는 일 또한 하나의 기쁨임을 잘 알기에 2023년의 끝, 2024년의 시작을, 대가족을 맞이하는 일로 바쁘게 보냈다. 일하며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내가 가장 자신 없는 분야는 단연코 요리! 요리만큼은 언제나 포기 선언을 먼저 하기에 우리 집에 올 땐 어머니, 형님 모두 음식을 한가득 만들어 오시기에 대가족을 맞이해도 조금 덜 힘든 편이다. 청소/정리, 3끼 상차림, 설거지, 간식과 커피 대접, 이부자리 정리, 주변의 놀거리 찾기 등등이 내가 할 일이랄까. 어른 6명, 청소년 4명, 어린이 2명이 모여 복작이는 연말을 보넀다. 부침개, 잡채, 회, 아귀찜, 양주, 맥주, 소주 등등 끊임없이 먹고 씻고 정리하고. 참으로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 같은 연휴였다. 오랜만에 술을 곁들이자, 어머님은 자주 전화하지 않는 가족들을 나무랐고, 장모님이라 불러주지 않는 사위에게 서운함을 표현했다. 사노라 바빠 자주 전화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조용히 반성했고, 아주버님은 장모님을 여러 번 외치며 노래를 불렀다. 즐거움도 기쁨과 슬픔도 모두 터놓고 시원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가족의 힘이다. 서운하게 꿍해 있지 않고 시원~하게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야말로 더욱 오래 사이좋게 지낼 방법이지 않을까. 체력적으로 피곤하여 2023년 마지막을 느낄 틈도 없이 2024년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즐겁게 웃으며, 다음을 기약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해돋이보다 더욱 갚진 연말연시의 시간이었고 이런 게 바로 가족이 주는 커다란 행복임을 핵가족 시대의 아이들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올 한해도 받은 만큼 베푸는 맏며느리의 삶을 살아가야겠다. 

고단한 하루의 마무리는 커피믹스 한잔과 함께... 2024년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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