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9. 2023년의 마지막 출근일.
너무나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였다. 마지막까지 마무리하지 못한 위원회를 마치고 밀린 결과 보고 자료를 올리고, 결재 서류를 사인받으러 왔다 갔다 했으며 아이의 영유아 검진 결과서를 받기 위해 병원에 갔다가 그 서류를 가지고 유치원으로 달려갔다. 그 와중에 점심을 먹고 커피와 후식을 잔뜩 먹고 공공의 적인 한 사람을 욕했다. 회사 생활이 마지막 날까지 정신없는 걸 보면서 일을 못 하는 건지 책임감이 과도하게 강한 건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무얼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것일까.
결론은 미리 하지 않아서였다. 올해 회사 내 인원이 감축되고 팀장님이 사라지면서 옆 직원과 나 둘이 모든 일을 해결했다. 처음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미뤘고 그다음엔 하기 싫어서 외면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해야 하는 시기를 마주하면서 일을 쳐내기 시작한 게 10월쯤이었던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결론은 둘이 다 끝냈다는 것. 12월 29일 끝자락까지 쳐내느라 한심한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끝이 났고 홀가분하게 12월 30일을 맞이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엄마로서도, 나는 항상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틈이 나면 그 시간에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뭐라도 하나 더 하는 사람이기에 항상 약속 시간에 늦고 마감을 넘기고 미리 준비해 놓지 못한다. 많은 것을 행하면서 내가 왜 이랬을까 후회하고 그러면서 꾸역꾸역해 나간다. 일을 한다는 건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가지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것, 살아갈 만한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할 수 있는 돈을 버는 것, 해냈다는 약간의 성취감을 얻는 것, 인정받는 것을 위해 꾸역꾸역 해내고 있다. 꾸역꾸역 이란 말이 자꾸 맴돈다. 그렇다. 나는 일을 꾸역꾸역 해내고 있다. 즐거웠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성취감을 느끼고 인정받는 일이 줄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 자리에서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로 최선을 다하고 싶다.
2023년, 사랑하는 할머니가 할아버지가 계신 세상으로 길을 떠난 해였다. 평생의 슬픔을, 내 몸의 모든 눈물을 쏟아냈던 날이었다. 언젠간 마주할 일이었지만 바쁜 하루를 사느라 마지막 요양원에 한 번도 방문하지 못했던 나를 원망하고 아쉬워했다. 임종 당일 부리나케 달려 방문한 요양원은 도심 속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상쾌한 느낌으로 기억된다. 할머니의 사랑하는 모든 아들과 며느리, 할머니를 가장 사랑했던 손녀인 나까지 한자리에 모였으니 할머니의 가시는 길은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이 이렇게나 가슴 따뜻하고 평온한 일인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너무나 슬플 것 같았는데 오히려 떠나가는 길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했던 것 같다. 그만큼 임종을 지키는 일이 소중하단 걸 알게 되었다. 삼일장을 치르며 온 가족의 묵은 감정도 표출되어 터져 나왔지만 일평생 한번은 마주해야 될 일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나는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는 대신 할머니를 슬프게 떠나보내는 걸 선택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몇 달이 흘러 11월의 어느 날, 할머니가 꿈에 나타났다. 그날도 역시 침대에 누워 기기의 마지막 음이 들렸는데 갑자기 되살아나신 할머니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넓고 포근한 가슴으로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셨다. 마치 너무나 잘 하고 있다고 토닥여 주듯이. 연말이 되니 할머니가 많이 생각난다. 곰국을 사면서, 오메가3를 사면서 항상 생각나는 사람은 여전히 할머니다. 할머니 집에도 보내드려야 될 텐데 하고 말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삶 속에서도 항상 주변을 챙기는 사람이고 싶다. 언젠가 헤어짐의 날을 맞이할 때, 더 이상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실컷 사랑하며 베풀며 살아가려 한다. 그 마음은 언제나 내게 되돌아온다는 걸 잘 알기에.
감정적으로 많이 흔들린 한해였다. 큰 아이가 학교에 가고, 할머니가 떠나시고, 진급에 또 누락되었으며 진급한 사람들이 퇴사하거나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웠다. 내 안의 부글거림이 잦은 한해였지만 이 또한 묵묵히 견뎌왔음에 수고했다는 한마디 전하고 싶다. 2024년은 조금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한 해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