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일기
신생아라 불리는 시기는 약 한 달이다.
이 기간 동안 아이는 작은 변화나 사소한 불편감으로도 충분히 예민해져 끊임없이 울며 나를 좀 돌봐달라고 소리친다. 막 엄마가 된 나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며 조리원 방 한 구석에 놓여있는 수화기를 들어 선생님을 콜 한다.
"선생님 감자가 울어요. 어떻..."
선생님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에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분유 좀 타서 바로 갈게요'라고 반자동으로 대답하며 전화를 끊는다. 정말 쏜살같이 나타난 선생님 품으로 인계된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한껏 찌푸려졌던 눈은 가늘게 펴고 목젖이 보일 정도로 벌어졌던 입은 끔뻑거리며 편안한 듯 분유를 꿀떡꿀떡 잘도 받아먹는다.
아이는 정말 잘 먹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40~60ml를 먹을 때, 조리원에서 나올 때는 80ml도 거뜬히 먹었다. 모유가 잘 나오지 않는 내 가슴에 만족할리가 없었다. 게다가 조리원에 입소한 지 이틀 만에 황달이 온 아이에게 모유수유 중단을 처방받아 초유는 제대로 먹여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2주 내내 하루 3시간씩 총 여덟 번을 꾸역꾸역 유축해서 냉동했다. 샛노란 초유를 언젠가 먹이고 싶은 마음도 컸고 이렇게 유축을 해야 모유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해서였다. 유축하는데만 30분이 걸려서 유축 후 잠깐 눈 붙여다 떼면 금방 유축시간이 돌아왔다. 중간중간 교육도 듣고 모자동실 시간도 보내고 나면 하루가 금방 흘렀다. 잠이 부족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리원에선 그 외에 시간에 편하게 눈을 붙일 수 있어서 그나마 나았다. 아이가 울면 당황스럽긴 했지만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은 적었고, 조리원 선생님들은 모두 아이가 순하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집에 오니 완전 다른 아이가 내 품에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었고, 어제는 잘만 잤던 침대를 오늘은 거부했다. 조리원에서 젖을 잘 물지 못했던 아이에게 엄마 가슴을 적응시키며 두 시간마다 젖을 물리려니 매 순간 체력적인 한계를 느꼈다. 나는 극도로 잠이 부족해졌고 급격히 예민해졌으며, 표정을 잃어갔다.
3주간 집에 와서 도와주시는 나이 지긋하신 산후 도우미님은 좋은 분이셨다. 하지만 모유수유를 하는 한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일찍 감치 간단한 청소와 요리를 끝내신 도우미님은 낮시간에 아이가 잠을 자거나 내게서 맘마를 먹을 땐 책을 보셨다. 아이가 울 때는 큰 소리로 달래셨다. 아이를 무척 예뻐하셨으나, 내가 조리원과 미디어에서 배웠던 것과는 조금씩 다르게 아이를 돌보셨다. 처음엔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있었던 것들이 내가 점점 예민해지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고기를 안 드시는 것도 불편해졌다. 안 드시는데 고기반찬을 해주시려니 얼마나 힘드실까 싶다가도 누워 쉬는 나를 불러다 간 좀 보라 하니 마음이 많이 어려워졌다. 조리원 마사지를 받지 않고 출장 산후 마사지를 불러 받았는데, 받는 동안 거실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산후도우미님이 아이 달래는 큰소리가 들리면 신경이 곤두서서 편히 쉬어지지가 않았다. 설상가상 집에 온 지 얼마 안돼 감기에 걸린 남편을 작은방으로 격리시키고 나니 세상 서러워져 눈물이 다 났지만 아이는 내가 지켜야(?)한다는 투철한 의무감에 감정을 꾹꾹 눌렀다.
주변에서 나의 안부를 물어주고 조금이라도 도와주고자 하는 손길들이 있었다. 가깝게는 남편과 시어머니, 그리고 고용의 형태지만 산후도우미님, 조금 멀리서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아이와 나만 남겨두고 모두 떠났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기 시작했다. 뭐가 필요하냐는 물음에 대답하기도 귀찮아지고 그냥 날 좀 내버려 두었으면 했다. 하지만 막상 옆에 누가 없으면 속이 상했다. 나는 온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꾸역꾸역 아이를 품에 안아 관심과 애정을 전하고 모유를 먹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지칠 줄 모르고 울어댔고 밤새 배앓이를 했다. 왜 아이는 끊임없이 불편한 걸까, 무얼 더 해줘야 하나, 나는 왜 아무것도 모르는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온갖 질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이젠 정말 안 되겠다 싶었을 때, 내가 정서적, 감정적 예민해지는 이유가 호르몬 영향도 있지만 무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라도 눈과 귀를 돌려 조용히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수면교육 책을 주문했다. 완벽한 타인이 건네는 지식과 위로의 말들이 위안이 되기 시작했다. 예민한 건 아이가 아니라 나였다. 아이는 그저 본능에 충실하며 자기표현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나는 본능에 지지 않으려고 예민함을 키우고 있었다. 아이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들어보니 아이의 울음소리의 미묘한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아이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구나.'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그러고 나니 내 상태가 보였다. 나의 예민함에 눈치를 보고 있었을 주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를 예민하게 만드는 건 엄마의 예민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놓고도 귀를 쫑긋 세우고 잠에 편히 들지 못했던 나는 조금씩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아이도 신생아 딱지를 뗐다. 아이의 성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 조그마한 아이가 벌써 신생아 졸업이라니. 여전히 아주아주 작고 작은 이 아이가 목을 좀 더 가누고 나와 눈을 마주쳐주고 무언가를 집중해서 보며 입을 오므리고 트림을 시원하게 한다. 방귀도 뽕 하며 뀌고 나선 흡족한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곤 한다. 나를 위하는 남편의 마음, 시어머니의 마음, 그리고 노력해 주었던 산후도우미님의 마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를 본능적으로 사랑하고 원하는 아이의 마음이 내게 닿았다. 아이만큼 나도 케어받고 사랑받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아이는 오늘도 나를 목청껏 부르고 있다. 하지만 잠시 틈을 준다. 아이가 스스로 진정할 수 있도록, 그리고 때가 되면 따스히 안아준다. 그동안 예민하게 다가가서 미안하다고 부드럽게 안아준다. 여전히 아이의 마음은 어려워 아이의 마음을 읽기를 실패하는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이제는 아이도 나도 나름 서로 교감이 이루어지는 게 느껴진다.
아이가 신생아 딱지를 뗐듯이, 이제 나도 초예민보스 딱지를 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