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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르 Nov 18. 2021

혼자가 될 수 있는 용기

-인프피 일기 #3


 요즘은 어딜 가나 혼자서 밥을 먹는 사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고깃집이나 유명한 맛집에서도 혼자 앉아 밥을 먹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나에게 ‘혼밥’이란 너무나도 먼 세상의 이야기였다. ‘어떻게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안 뻘쭘한가?’ 생각하며 약간의 의아함과 함께 존경 어린 시선으로 그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심지어 대학교 1학년 때는 난이도가 가장 낮다는 학생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도 하지 못해서, 늘 공강 시간이 맞는 친구들을 찾아다녔고, 그냥 조그만 간식이나 음료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하지만 항상 나를 위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 법이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되어야만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나도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걸 체감했다. 그 후, 혼자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도전할 퀘스트는 바로 혼밥이었다. 우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정말 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같이 밥을 먹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며칠을 쫄쫄 굶을 수는 없다. 그런 바보가 되기는 싫었다. 또 내가 마음을 다잡게 된 이유에는 아무렇지 않게 혼자서 자주 밥을 먹는 친구들의 영향도 있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가는 그 친구들이 나보다 더 빨리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난 아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옛날의 나 그대로 남아있는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나에게도 우연히 혼자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나의 첫 혼밥은 그렇게 시작됐다. 카페에서 일을 하던 중, 갑작스레 옆 식당에 밥을 주문해뒀으니 지금 빨리 가서 먹고 오라고 사장님이 말하셨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당황한 채로 헐레벌떡 옆 식당에 들어섰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는데 핸드폰도 없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가지고 나올 걸'이라고 든 생각이 무색하게도, 혼자서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는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빨리 먹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단지 그 국수의 면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마치 그 국수와 나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약간은 정신없이 국수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식당을 나오는데 문득 ‘내가 오롯이 혼자였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혼밥을 하다니. 왠지 더 오래 혼자서 밥을 먹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사실은 혼자서 밥을 먹는다는 게 싫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서웠던 것 같다. 사람들 사이의 왁자지껄함 가운데 홀로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것.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보고,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때 나는 혼자서 무엇을 보고 어떤 걸 들어야 할지를 몰랐었다. 그런데 막상 혼자여서 볼 수 있는 것이 많았고, 혼자이기에 더 새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창밖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라던가, 가게의 인테리어, 들어오고 나가는 손님들, 내가 먹는 국물의 방울들, 잘려있는 야채의 모양들. 탁탁탁 칼질 소리, 주문하는 손님들의 말소리, 웃음소리, 내가 밥을 씹는 소리, 내 마음의 소리. 혼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을까.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데에, 내 말을 하는데에 집중하느라 모두 놓쳤을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혼자라서 누릴 수 있는 기분 좋은 침묵. 생각보다 고독하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고요함을 즐길 줄 아는 내가 된 것 같아 스스로가 기특했다. 혼자가 되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능력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집중할 때 나 자신으로 시선을 옮길 수 있는 용기, 나를 둘러싼 주변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볼 수 있는 마음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혼자임을 즐길 줄 아는 법을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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