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미지의 배반
이미지의 배반
1. 이미지 – 그림으로써 사물을 지배하는 힘
미술, 그중에서 평면 미술인 회화는 세상에 있는 모든 실제 대상을 시각적으로 모방
또는 재현하는 데서 출발했다. 이미지(image)의 어원이 라틴어 imago이고
동사형은 imitari인데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imitate = 모방하다. 재현하다
라는 뜻이다.
인류 최초의 시각적 이미지인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는 투쟁과 공존의 대상이었던
여러 동물들을 모방하고 재현한 것이다.
구석기시대 유럽 어느 마을의 동굴 안. 부족 가운데 나이 든 사람들이 동굴 깊숙한 곳에 모여 모닥불을 쬐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구가 : 큰일이다. 이제 곧 겨울인데 짐승들의 털가죽 하고 쟁여 놓을
고기도 더 많이 있어야 하는데... 사냥해 놓은 것들이 턱없이 부족 해.
우가 : 그러게. 이대로는 올 겨울을 버티기 힘들겠어.
구가 : 무슨 좋은 방도가 없을까? 좀 더 강한 무기들도 만들어야겠는데.
마가 : 무기 탓만 할게 아냐. 요새 젊은것들이 힘만 세 가지고 사냥을 제대로 할 줄
아는 놈들이 드물어. 짐승들이 움직일 때, 잘 때, 쉬거나 먹는데 정신이
팔려 있을 경우를 잘 모르고 무턱대고 덤비는 경우가 많아.
우가 : 그뿐이 아냐. 지난번 저 아래 동굴의 한 젊은 애는 자고 있는
사자를 사슴처럼 순한 줄 알고 다가갔다가 외려 먹이가 되고 말았잖아. 라떼는
그런 것 정도는 슬쩍 보기만 해도 알아차렸는데 말이야 쯧쯧.
구가 : 문제야 문제! 아직도 짐승들의 습성과 모양을 구분하지 못해서
그런 변고를 당하고 있으니.. 어떡하든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한쪽 팔을 괴고 심드렁하게 누워있던 저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저가 : 형님들~ 저기 저 벽면을 좀 보세요!
구가 우가 마가 고개를 돌려 저가가 가리키는 벽을 바라본다.
구가 : 뭘 보라는 거야?
저가 : 저기 저 툭 튀어나왔다 살짝 들어간 부분이 있는 데 말이요.
오늘 낮에 사냥하려다 놓친 소와 꼭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일렁이는 불빛에 비친 벽면의 모습이 과연 소 모양하고 아주 흡사해 보인다.
우가 : 음, 진짜 소같이 생겼군.
마가 : 그래서? 벽이 소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저가 : 형님들~ 내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단 말이요. 사냥할 짐승
들의 모습을 벽면에다 그려 놓는 거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생긴 짐승은 언제 잡기 쉽고, 저렇게 생긴 것들은 만나면
냅다 도망쳐야 하고, 요렇게 생긴 것은 고기도 생기고 가죽도
얻을 수 있으니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거죠.
구가 : 오오, 좋은 생각이야!
저가 : 당장 내일부터 사냥을 나가서 짐승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봤다가 밤중에 자기들이 기억한 모습들을 전부 얘기하고
모아서 그려보자, 잘못 그린 곳은 또다시 보고 고쳐 그려서
그 특징과 모습들을 정말 똑같이 만들어 보자 이겁니다.
마가 : 그래! 지난번 제를 올리고 한바탕 놀 때 보니 동물 흉내를 아주 그럴듯하게
내는 젊은이들도 있더군. 사냥터에 데려가서 각자 본모습들을 흉내 내라고
하면 훨씬 더 도움이 되지 않겠어?
우가 : 좋아 아~주 좋아. 그림을 보고 미리 사냥 연습을 해보면 사냥
나가서 다치거나 죽는 일도 줄일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니 일석 만조야!
구가 : 먹는 것만 밝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저가가 아주 기특한 생각
을 했네. 잡아 온 짐승들과 똑같은 그림이 완성되는 날,
다 같이 모여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면서 한바탕 축제를 열자고!
들소 사진
쇼베 동굴 들소 그림. 약 35천 년 경
구석기시대의 사냥꾼 예술가는 그림을 통해 실물 자체를 소유한다고 믿었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려진 사물을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고 믿었던 것이다
- 아널드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중에서>
선사시대의 인간이 느끼는 자연과 우주는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주위의 모든 생태계는 생존을 위해, 종의 번식을 위해
넘어서야만 할 어떤 것, 극복하고 제어해야 하는 도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동굴사자는 물론 초식동물인 사슴, 말, 들소에게도 종종
커다란 피해를 입고 사냥에 실패했음에 틀림없다. 처음, 그곳에, 미리 포획해
놓아야만 하는 벽면 위의 동물들과 사냥꾼 화가들 사이에는 장식적인 아름다움이나
유희 따위가 아니라 팽팽한 긴장과 두려움이 지배했을 것이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냥에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와 절실함이 본 그대로의
사실적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들소의 머리 사진
초식 동물인 들소의 머리 크기만 보아도 몸 전체 크기가 짐작된다. 생과 사의 기로에선 사냥에 최초의 인류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연구하고 동원했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동굴벽화이며 생존의 절박함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한 것이다.
하지만 구석기시대의 동굴 벽화에 그려진 동물 그림들이 사실적으로 재현된 것이라
해도 관찰된 그 시각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니다.
하루 종일 들소, 사자, 말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돌아와서 최대한 비슷하게 스케치하고 채색하기 위해 자신들이 본 동물들의 모습과 습성에 대한 의견들을 수없이
주고받았을 것이며, 또한 많은 물감과 도구들을 수없이 찾아 헤매며 한 땀 한 땀
완성해 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완성되는 순간, 숲이나 들판에 있었던 들소나
사슴, 코뿔소가 아니라 동굴 깊숙이 아주 특별한 듯한
장소의 벽면에 그려진 평면 미술 작품 – 물론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미술 작품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 인 것이다. 따라서 현실의 실제적 대상과 시각적으로 재현한 이미지 사이에는 당연한 <다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미지는 단순한 시각적 모방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감과 기억과 판단의 중첩 물로써, 대상에 대한 유사성과 차이성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재현이라는 의미는 이미 그 말 자체에 주관에 의해 재창조된다는 것을 포함한다.
그러한 유사성과 차이성을 발생시키는 사이의 간극이 모방과 재현이라는
시각적 이미지 = image에 추상적 상상 = imagination이 끼어들어 정말 상상치 못한 양식으로 변화하기도 한다.
구석기 미술의 사실적 재현에서 신석기 미술의 기하학적 추상으로의 전환이
바로 그렇다.
자연이 주는 사냥감과 식량원들을 따라 이동하면서 살던 구석기인들이
농사를 중심적인 생존수단으로 삼게 되고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미술에 있어서도
거짓말 같은 형식적 전환을 맞게 된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의 사실적 모방과 재현은 온데간데없고 아주 간략한 형상들로 표현된 그림과 문자 이전의 문자 역할을 하는
추상적인 이미지들로 채워진다. 한번 동굴을 나온 인간들은 다시 동굴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동굴을 나와 들판을 일구고 씨를 뿌려 곡식을 거두는 삶이
그렇게 만만치 않았음도 틀림없다. 대홍수나 극심함 가뭄 같은 재해라도 일어나면
아마도 구석기시대 이상 가게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기 때문에 변덕스러운 자연의 변화에 온 신경이 닿아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땅만 쳐다보고 다니던 인간들이 비로소 하늘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 하늘은 농사의 성공 여부를 가리는
힘을 가진 초월적 존재가 되었고, 사냥꾼에서 농사꾼으로 바뀐 신석기 화가들에게
동물을 대신해서 농사에 필수적인 해, 달, 비와 같은 자연 대상과 농사 도구 등이 더욱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보다 많은 정보량을 축적하고 교환하기 위해
구석기시대와 같은 사실적인 재현은 이제 장애물로 뒤바뀐 것이다.
농경도. 신석기 미술
이렇듯 추상적 이미지로의 급변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깊은 단절을 뜻한다고 할
생산수단과 문명 전반에 걸친 일대 변혁과 관련된 것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급변을 한 것은 아니고 수 만년에 걸쳐 일어난 변화지만,
보관된 기록과 유물이 전무해서 그 과정을 유추하기 어려운 데서
기인한 단절이기는 하다. 어쨌든 사냥, 수렵채집과는 달리
농사는 훨씬 더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고와 수많은 정보의 교환과
기록이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제작하기 어렵고 기록의 보관이나 교육,
정보를 교환하는데 거추장스러운 사실적인 그림은 점차 폐기되었고 보다
단순하고 추상화된 이미지의 신석기 미술을 낳게 되었으며,
곧바로 본격적인 계급사회의 출현과 함께 시각적 이미지를 지배계층과
국가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데 활용하는 단계에 접어든다.
농사짓는 사람들. 신석기시대 미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