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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경 Mar 31. 2021

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미지의 배반


2. 이미지의 변용과 조작 – 어둠의 미술사


재현된 이미지는 대상의 유사함과 차이를 동시에 발현한다. ‘바로 그것’과 ‘여기 이것’

에는 시공간적 간극이 있고 그러한 간극에는 기억과 왜곡, 욕망과 기원 따위들이 

재현하고자 하는 대상에 투사되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중에서 

시각적 이미지는 언어와 추론적 사고를 앞선다. 시각적 이미지는 언어가 갖는 단계적 서술의 과정을 단숨에 뛰어넘는 직관적 인식과 연상 작용을 통해 즉각적인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다. 또한 이미지에 대한 공감이라는 상호작용은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며, 이렇게 확대 재생산된 이미지는 최초 대상의 실제 가치와 무관한 

상징 가치를 만들어 낸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이미지는 다양한 활용성을 갖게 되며 때로는 의도된 변용과 조작을 통해서 지배전략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문자가 비의처럼 지배계급에 의해 독점되고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는 

당연히 미술이 – 그중에서도 평면 미술인 회화가 - 이미지의 변용과 조작의 

첨단 매체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 권력과 재력을 모두 갖춘 지배층이 작품을 생산하는데 드는 거의 모든 비용을 지불했으니 미술가들은 그들의 의도와 취향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사적 소유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지배, 

피지배 계급으로의 사회적 분화가 형성된 고대국가로부터 

이미지의 변용과 조작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헤지 레의 초상. 이집트 미술    


이집트의 태양신이자 창조신인 라(Ra)와 맞먹는 권위를 지닌 파라오(이집트 왕의 통칭)를 비롯해서 귀족들의 이미지는 평민들의 모습과는 달라야 했다. 

그래야만 왕을 중심으로 한 소수 귀족 계급이 다수의 인민을 지배하는 초기 단계의 

국가체제가 강화되고 안정된 권력을 행사하지 않겠는가! 파라오와 귀족들이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다는 멋지고 용맹한 모습을 만백성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가장 강력한 선전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미술이다. 종이, 문자, 인쇄술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조건에서 미술은 이미 선사시대부터 정보와 교육의 저장고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조각보다는 경제적이며 한 번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고, 평면이라는 

공간을 쉽게 변용하고 조작할 수 있는 회화가 중심 역할을 했고 부조(벽이나 평면의 

팔레트 따위에 돋을새김으로 표현하는 조각의 일종)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집트 회화의 그리드    



이집트의 궁전. 파라오와 궁정화가가 대화를 하고 있다.


파라오 : 화가여!


화가 : 예, 위대한 왕이시여!


파라오 : 내 무덤에 쓰일 나의 위대한 업적과 나의 백성들을 교화시킬 

         그림의 초안은 나왔는가?


화가 : 위대한 왕이시여, 그보다 우선 이것부터 보아주십시오.


파라오 : 아니 이게 무엇인가? 이렇게 뒤틀려 있고 왜곡된 그림이 

정녕 나의 모습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웃 나라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학, 천문학 그리고 무엇보다 도량형이 월등하게 발달해 있거늘.


화가 : 왕께서는 이제 세상 만물 창조의 근원인 태양신이나 다름없사옵니다. 

일반 백성들과 같은 모습으로 왕께서 나타나신다면 백성들이 어찌 우러러볼 수 

있겠사옵니까! 해서 팔레트나 벽면에다 혹은 파피루스 같은 평면의 그림이라 할지라도 늘 완벽한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본 것입니다.


파라오 : 이 그림이 어째서 그러하다는 것이냐?


화가 : 인간의 모습을 평면에다 가장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얼굴은 정면보다 

      측면이어야 하고 눈은 늘 정면을 하고 있어야 얼굴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몸통은 측면의 바탕 위에 가슴은 정면이 다 보여야만 하고, 손가락은 어떤 위치에 

  있든 간에 엄지를 포함한 다섯 개가 다 보이도록 해야 하며 발 또한, 언제나 

  엄지발가락이 보이도록 그려야만 신의 모습과 같이 완벽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파라오 : 오, 듣고 보니 그럴듯한 것이 꽤 솔깃하구나!


화가 : 위대한 파라오시여, 그뿐만 아니옵니다. 뭇 백성과 같은 크기의 모습으로 

       그려진다면 이 또한 왕의 위엄과 영이 서지 않을  터, 앞으로는 모든 벽화와 부조에 위대한 파라오를 가장 크게  표현할 것이며 서열에 따라 크기의 차등을 

     둘 것입니다. 가장 하급의 백성들은 옛사람들의 표현법을 그대로 따라 그리게 

   하여 또 하나의 태양이신 파라오와 완전하게 다른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파라오 : 그대의 생각이 나의 생각과 하나도 다름이 없도다. 내 너에게 후한 상을 

 내릴 것이니 앞으로는 모든 그림을 이 방식대로 제작하거라!


 아메넴헤트 왕과 헤멧 왕비의 무덤벽화. 이집트 미술    


 사자의 서. 이집트 미술 (의자에 앉아있던 파라오가 일어나면 키가 얼마나 될까?) 


가끔 겁 없는 관리들과 부자 애들이 자기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 싶어서 파라오와 

맞먹는 크기와 정면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 그림도 있다. 


 네바문의 정원 벽화 중 늪지의 새 사냥. 이집트 미술    


도화지나 캔버스와 같은 평면 위에 사실처럼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한 원근법의 원리는 아직도 수천 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스 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이집트에서 고안해낸 <정면성의 원리>가 

미술을 통해 지배세력의 정당성과 불멸성, 신정일치의 고대 노예제 국가체제를 

정당화하려는 국가권력의 의도된 이미지의 변용과 조작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감각적 쾌락 특히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극히 경계한 중세시대의 모든 

미술작품의 목적은, 성서의 복음을 민중들에게 교육시켜 기독교의 원리가 철저히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었다. 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세속적 아름다움이나 원근법적 구성 따위는 철저히 제거해 버렸다. 

거의 르네상스 직전까지 중세 회화는 딱딱하고 평면적이라 할 수 있는데, 

그리스 로마와 같은 이교도들의 미술작품에서 보이는 물질적 생생함이나, 

금방이라도 손에 만져질 듯하고 화면에서 툭 튀어나올 듯한 입체감과 역동성 따위는 

거짓되고 인간을 타락으로 이끄는 유혹과 환영 같은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레베카와 엘리에 제. 작자미상. 중세미술    


특히 그리스도의 표현에 있어서는 일체의 세속적 아름다움을 제거한 채 

전형적이면서도 부자연스러운 포즈, 웃음기 하나 없이 굳어있는 표정의 

엄숙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또한 엄연한 서열이 존재했으니 예수를 비롯한 성서 속 중요 인물들은, 화면의 중앙에 위치하며 언제나 정면의 모습을 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크게 그렸는데, 심지어는 배경이 되는 자연과 건축물 혹은 화면의 뒤에 있을지라도 

앞에 있는 사람과 동물들보다 훨씬 더 크게 그려 기독교가 

세상과 우주의 중심임을 각인시켜야만 했다.


 두초 디 부오닌 세나. 산 위에서 유혹을 받는 예수. 중세 미술    


성이나 산보다 커다란 모습의 예수가 그림 중앙에서 악의 화신인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는 모습을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다. 예수의 왼쪽에서 예수를 바라보고 있는 

천사들과 예수를 세속의 세계로 유혹하려는 사탄의 모습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자세인 반면, 예수는 마치 연극 무대에 서있는 것처럼 관객을 향해 

정면으로 서 있으면서 오른손을 뻗어 사탄의 유혹을 뿌리치고 있다. 예수와 성서의 인물들은 주위의 성들과 산보다 훨씬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때로는 아동화 같은 수준의 그림들도 눈에 띄는데 이는 중세 초기 기독교에 봉사하는 화가들의 수준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각이 갖는 

욕망을 배제한 신적 순수성을 구현하기 위함이 컸다.


 예수와 두 도둑. 중세 미술    



그렇다면 아직도 오늘날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지향하고 있는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모태이자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조화와 아름다움을 꿈꾸었던 

그리스는 어떠했을까? 그리스의 고전적 사실주의 미술에서도 이러한 

이미지의 변용을 통한 선전 수단화는 다른 시대, 국가와 다를 바 없이 적용된다. 

남아있는 회화 작품이 거의 없고 있어 봤자 도자기에 그려진 것들뿐인 

그리스 미술에서는, 회화보다 신들의 거처인 건축물의 주요 요소로 사용된 

조각 작품들이 그들의 국가적 전략과 미적 지향을 이상적으로 구현했다. 

그리스의 고전적 사실주의 미술에서도 

이러한 이미지의 변용과 조작을 통한 선전 수단화는 다른 시대, 다른 국가와 

다를 바 없이 아니, 오히려 더 완벽하게 적용된다. 

지덕체 일치를 완벽하게 구현한 젊은 남자의 몸을 이상적으로 표현한 

조각 작품 중 하나가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이다.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 그리스 미술    


그런데,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처럼 포즈를 취한다면 

원반을 제대로 던질 수가 없다. 스포츠 연구자들에 따르면, 현실에서 원반을 잡은 

팔과 양 발의 위치가 저런 자세로는 원반이 하늘로 떠버리거나 땅에 처박힌다고 한다. 뒤틀린 상체인데도 똑바로 서있는 모습 속의 가슴처럼 완벽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힘의 부하가 다를 수밖에 없는 양팔과 양다리의 근육이 같은 상태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모양을 띠고 있는 것은, 마치 여러 사람들의 완벽한 근육질의 신체 부분들을 

잘라다 이어놓은 것 같이 보인다. 가슴 바로 아래쪽을 가리고 보면 원반을 들고 똑바로 서있는 모습처럼 보이며, 오른쪽 넓적다리 위쪽을 가리고 보면 어린아이가 톡 하고 밀어도 금방 쓰러질 듯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자세다. 현실에서 이런 자세로는 

원반은커녕 돌멩이 하나도 제대로 던질 수 없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화가 파라시오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미의 원형을 형상화할 때, 모든 부분에서 완벽한 사람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각 개인에게서 취한 아름다운 부분을 모두 결합해서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신체를 그려야 한다.’


지금은 고대 그리스를 서양 예술의 기원으로 삼을 만큼 완벽한 조화와 비례의 

아름다움이 꽃피웠던 예술지상 국가, 철학 지상 국가로 숭상하고 있지만 

그리스의 역사는 사실, 물건이든 노예든 여자든 닥치는 대로 빼앗고 뺏기는 약탈 

전쟁으로 점철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라였다. 저 유명한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 오디세이아> 역시 그리스 도시 국가들 간의 살육의 내전 역사를 문학의 외피를 덧씌워 기록한 것이다.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해 느슨한 도시 연합체의 국가를 형성하고 해상무역을 기반으로 한 늘 불안정한 정세 속에 살고 있던 그리스인들에게 절제, 조화, 비례, 질서라는 미학적 세계관이 발달한 것은 아이러니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연한 귀결처럼 보인다. 체제의 안정이 무엇보다 절박했을 것이고 이러한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현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국가적 이념의 필요가 다양한 철학사상과 민주주의적 정치체계를 세웠다. 또한 근동지역의 강력한 패자였던 페르시아를 

두 번에 걸쳐서 물리칠 만큼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언제든 전장 속으로 뛰어 들어갈 젊은 남자의 완벽한 육체였다. 해서 

‘미의 원형을 형상화할 때, 즉 미술 작품을 만들 때’ 각 신체의 완벽한 부분을 

조화롭게 결합해서 

‘전체적으로 아름답고도 완벽하게 보이며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 내야만 했던 것이다. 



 마라의 죽음. 자끄 루이 다비드. 신고전주의     


신고전주의 미술은 왕정 귀족 통치의 부패와 부조리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었지만 

동시에, 혁명 세력의 우월성 내지는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이미지를 변용하고 조작하는 데는 그들의 적대세력과 다를 바 없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신고전주의 미술의 

지도자 다비드가 그린 혁명 당시 급진적인 자코뱅파의 지도자 <마라의 죽음>이다. 


왕족과 귀족들 뿐 아니라 혁명 전선에 같이 서있던 온건파나 중도파들도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공격을 했던 장 폴 마라를, 온건 지롱드 파 일원인 

샤를로트 코르테라는 24살의 젊은 여성이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실제로는 

가슴을 난자당한 채 처참한 몰골로 죽었지만 바로 다음날, 

신고전주의 미술의 대부이면서 마라와 같은 자코뱅파 당원인 자끄 루이 다비드에 의해 그림 속의 모습으로 변용되어 그려진다. 

왼손으로는 살인자 코르테가 마라를 속이고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마리 안느 샤로테라는 가명으로 자신의 처지와 고통을 호소하는 편지를 쥐고 있으며, 욕조 밖으로 늘어뜨린 오른손에는 여전히 펜이 들려있는 것이 고통받는 인민에 대한 

마라의 연민과 혁명의 대의에 대한 헌신, 굳건한 신념을 표현하고 있다. 

아토피가 심해 자주 욕조에서 집무를 보던 마라는 다비드의 작품 속에서 죽음을 마주한 공포는 온 데 간 데 없고 잠시 잠을 자는 듯, 혁명에 대한 꿈을 꾸는 듯 

의연한 순교자의 모습이다.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 덕분에 자코뱅파의 잔인함에 

등을 돌렸던 시민들을 자기들 편으로 돌리는 데 성공하게 된다. 1차 혁명이 실패하면서 혁명에 참여했던 많은 인사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고, 왕정복고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로베스 피에로를 비롯한 혁명 지도자들을 처형한다.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대대적인 선전작업이 필요했던 나폴레옹은 감옥에 갇혀있던 다비드를 풀어준다. 

그 또한 야심가였던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황제를 참칭 하는 제정 복고 이전에 

그의 야심과 성공을 간파하는 기민함을 발휘한다. 해서 저 유명한 알프스 산을 넘어 

러시아로 진격하는 나폴레옹의 영웅적인 모습을 여러 버전으로 그려 헌납한다.


 알프스 산을 넘는 나폴레옹. 자끄 루이 다비드. 신고전주의     


7, 80년대 ××전과라고 하는 학습보조교재가 있었다. 그 표지에 다비드의 

<알프스 산을 넘는 나폴레옹>의 도판이 자주 실렸고 항상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나폴레옹이 하지도 않았다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당시 선생들은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환란에 휩싸인 프랑스를 구하겠다는 강철 같은 의지와 불세출의 지략으로 마침내 프랑스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른 나폴레옹의 영웅담을 소개하며, 우리들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격조 높은 훈화 말씀을 하시곤 했다. 그림 하단을 보면 뒤쪽에 턱이 져있고 말은 놀라서 앞발을 번쩍 치켜들고 눈을 휘둥그레 떴는데 나폴레옹은 무심한 얼굴로 태연하게 

‘돌격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이 저렇게 요동을 치는데 저런 폼을 잡을 수가 있는가 하는, 문자 그대로 가당치도 않은 그림 속 나폴레옹의 모습은 당시 아이들에겐 올라야만 하는 알프스 산이었고, 현실에서는 결코 오르지 못할 백일몽을 꾸게 했다. 

역사는 나폴레옹이 대리인을 세워 자신의 모습처럼 꾸며 앞서게 했으며 

척후 부대를 보내 안전을 확인하고 난 후, 평민 복장으로 

자그마한 노새를 타고 따라 넘었다고 기록한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사진과 더불어 영화, TV 등 영상매체가 발전하면서  미술의 시각적 이미지의 활용과 지배계층과의 밀월관계는 끝이 난다. 

사진이나 영상매체가 미술작품보다 훨씬 효율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조건의 변화로 미술계에서는 재현 대상과 이미지의 불일치와 모순관계를 

해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보통 미술작품을 감상할 때는

 작품에 붙어있는 제목과 그림의 내용을 일치시켜서 보게된다. 

 제목에 그림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녹아들어 있다고 생각하며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미셀 푸코 같은 철학자는 미술작품에 붙어있는 

텍스트- 제목 –으로 인해서 이미지에 대한 진실에 다가갈 수 없으며 더욱 커다란 혼동을 불러일으킬 뿐이라고 말한다. 그리스의 조각 작품 <원반 던지는 사람>은 작품과 작품을 설명해주는 제목이 일치하려면 <원반을 내동댕이치는 사람>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재가 아닌 변용되고 조작된 이미지로써의 배반과 더불어, 

작품의 내용을 정확하게 지시해야만 하는 제목의 불일치로 인해서 두 번 배신당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이러한 실제 대상과 이미지, 텍스트의 모순관계는 작품에 대한 

사유 작용을 파괴할 뿐임으로 차라리 대놓고 모순관계를 드러내서 

고정관념을 환기시키는 것이 현대 미술이 나갈 바라고 제시하고 있으며,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바로 그 방향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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