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한경 Apr 02. 2021

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미지의 배반


3. Ceci n’est pas une pipe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미술가가 대상을 아무리 사실적으로 묘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 – 르네 마그리트



실재와 시각적 재현 즉, 이미지 사이에 형성될 수밖에 없는 <다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제는 중세 말의 ‘원근법 소동’을 일으킬 만큼 실제 대상과 시각적 이미지 

사이의 다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없다. 아무리 사진보다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그리는 극사실주의 계열의 작품이라도 그것은 그림이지 그려진 실재 - 현실 세상에 

존재하는 그림의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거의 누구나 다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정물. 로베르토 네 르날 디. 극사실주의 미술    


 그런데, 그렇게 빤히 알 수 있는 그림을 그려놓고 캔버스 하단에  

‘여기 이것 = Ceci 은 그림이지 실재가 아니다.’ 

라고 노골적으로 적어놓은 화가가 있다. 자신을 그림을 그리는 철학자로 불러주기를 

원했다는 르네 마그리트. 그는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담배 파이프를 그려놓은 캔버스에 그림 아닌 그림 같은 글씨로 커다랗게 

‘Ceci n’est pas une pipe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 놨다. 

원제가 ‘이미지의 배반’이다. 원제란, 흔히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아래 벽 쪽에 붙여놓는 작품의 제목을 말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 초현실주의 미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것이 (담배) 파이프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은 실제 파이프를 유화물감으로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 = 이미지다. 

당연히 그림 속의 파이프에다 담배가루를 넣고 불을 당 겨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마그리트는 실제의 파이프를 그려놓고 캔버스 하단에 마치 또 다른 그림의 소재처럼 

‘ Ceci n’est pas une pipe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고 써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또 다른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이 어떤 것을 숨기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한다.

                                             – 르네 마그리트


저것 - 3차원의 실제 공간에 놓인 3차원적 입방체인 파이프 - 는 

이것 -  2차원의 평면 위에 물감으로 그려진 파이프의 재현 즉, 담배 파이프의 이미지 -와는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파이프의 그림을 보고 '파이프구나'

하고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파이프를 그린 캔버스 밑에 붙어있는 제목에 

'이것은 파이프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파이프에 대한 온갖 연상 작용이 

일어난다. 화가는 '왜 파이프를 그렸을까?' '저 파이프에는 무슨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일까?' '인생이 파이프의 연기처럼 허무하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것일까?'라는 등등 파이프 그림을 보면서 작가의 의도를 알아내고자 한참 동안을 그림 앞에서 

서성일 것이다. 철학자 미셀 푸코는 재현된 시각적 이미지 자체는 이와 같이 

사유 작용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리고 제목과 동일한 지시성을 갖는 텍스트가 더해져 

작품은 감상자에게 일방적인 권위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바로크 시대의 거장 

카라바조의 <성 마테오의 영감>의 일화는, 이미지가 어떠한 이유로 변용되고 조작되며 당시의 사람들에게 거부되고 받아들여지게 되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1700년경, 이탈리아의 화가 카라바조는 한 성당으로부터 <성 마테오의 영감>이라는 

제단화를 의뢰받는다. 화가로써 자부심이 강하고 완고했던 카라바지오는 

마테오가 늙고 가난한 노동자임을 드러내면서도 맡은 바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싶어 했다. 


‘그리하여 그는 대머리에 먼지 묻은 맨발로 커다란 책을 어색하게 거머쥐고. 

익숙하지 않은 글을 쓴다는 긴장감 때문에 걱정스럽게 이마를 찌푸리고 있는 성 마테오를 그렸다. 그의 옆에는 방금 천상에서 내려와 마치 선생님이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노동자의 손을 공손하게 잡아 이끌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천사를 그렸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성 마테오의 영감(원작). 카라바지오. 바로크 미술


하지만 이 작품은 성당 측과 사람들에 의해 심한 질타를 받으며 거부된다. 

성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카라바지오는 성인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작품으로 다시 제작하게 된다. 


(재제작한) 성 마테오의 영감. 카라바지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 바로크 미술 


‘카라바조가 제단 위에 걸게 되어있는 이 그림을 성당에 납품하자 사람들은 

이 작품이 성인에 대한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다고 분개했다. 

그 그림이 수락되지 않아 카라바조는 그림을 다시 그려야만 했다. 

이번에는 그도 모험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사와 성인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에 관한 인습적인 관념을 엄격하게 

준수했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마그리트는 이러한 텍스트와 이미지의 동일체적 결합이 인간의 사유를 파괴한다고 

생각하며 그 일방적인 지시성을 부정한다. 그동안 미술계의 이러한 관습이 인간의 

자유로운 사유를 마비시켜왔다는 그의 성찰이, 사실적으로 재현된 파이프 그림 안에 

또 다른 문자 그림 – 칼리 그램 –으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써넣고, 

원제 ‘이미지의 배반’을 붙임으로 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흔들고 깨운다. 


실제 대상을 재현하는 도구와 방법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실제 파이프와 이미지로서의 파이프는 동일물이 아닌 것이 명백하다. 또한, 

그 표현방법이 극사실주의 미술처럼 정밀하고 또는 수억만 화소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 해도 실제의 ‘그것’과 이미지로서의 ‘이것’은 성질과 차원이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다른 실재인 것이다. 마그리트가 그린 파이프 그림의 원제가 <이미지의 배반>이라 했는데 이미지는 배반하지 않는다. 그것이 실제와 똑같이 보이는 

환영을 일으킨다 해도 - 이미지는 배반할 수 없다. 배반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이용하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그리트는 파이프를 그려놓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라. 아무리 사실적으로 그렸다 하더라도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이미지에 대한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 11화 미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