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끊임없이 원하게 하는 것

충동이란 무엇인가?

by 김종환

내 안의 야생마를 길들이는 법


우리는 종종 우리 안의 또 다른 존재에 의해 삶이 조종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성적으로는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명백히 알면서도, 어느새 그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모든 것을 망칠 것을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강력한 힘. 나는 오랫동안 그 힘의 정체를 몰라 ‘의지박약’이나 ‘나쁜 습관’이라는 이름표를 붙여왔다.


또는, 우리는 그것을 ‘충동’이라 부른다.

그 강력한 힘의 정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그 위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



충동의 해부학: 경보기와 엔진의 합작품


충동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내 안에는 충동을 만들어내는 두 개의 강력한 시스템, 즉 ‘경보기’와 ‘엔진’이 있다.


경보기 (편도체): 모든 것은 종종 우리 뇌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편도체, 즉 ‘생존-방어 시스템’이 울리는 경보에서 시작된다. 이 경보는 불안, 공포, 혹은 “견딜 수 없이 심심하다”거나 “무언가 결핍되었다”는 형태의 미묘한 고통 신호로 나타난다. 이 신호는 우리에게 ‘지금 이 상태는 위험하니,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다.


엔진 (도파민 시스템): 경보가 울리면, ‘도파민 시스템’이라는 강력한 엔진이 작동한다. 이 엔진의 목표는 고통스러운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탈출구를 찾는 것이다. 그 탈출구가 바로 우리가 ‘충동적 행동’이라 부르는 것이다. 즉, 충동은 ‘위험 신호(불편함)로부터의 도피’와 ‘보상 추구’라는 두 가지 욕망이 합쳐져 만들어낸 강력한 합작품이다.



충동에 ‘납치’된다는 것의 의미


충동에 휩쓸리는 경험을, 나는 ‘사나운 야생마 위에 거꾸로 올라타게 되는 것’에 비유하고 싶다. 평소 우리는 두 발로 땅을 딛고, 내가 원하는 길을 걷는다(의식적인 상태). 하지만 길가의 수풀에서 ‘충동’이라는 야생마가 튀어나와 우리를 납치하는 순간, 모든 것이 뒤집힌다. 야생마의 등 위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잃어버린다.


첫째, 감각을 잃는다. 땅의 감촉도, 하늘의 빛도, 바람 소리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오직 말의 거친 숨소리와 쿵쾅거리는 심장박동, 흔들리는 시야만이 온 세상을 채운다. 나의 모든 의식이 오직 충동 그 자체에만 집중되는, ‘어지럽고 치열한 정신상태’다.


둘째, 시간을 잃는다. ‘지금, 여기’는 사라진다. 오직 ‘이 고통스러운 질주가 끝나기만을 바라는 미래’ 혹은 ‘말에 오르기 전으로 돌아가고픈 과거에 대한 후회’만이 남는다.


셋째, 나를 잃는다. 가장 무서운 단계다. 나그네는 자신이 ‘말에 올라탄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자신이 곧 ‘달리고 있는 말 자체’라고 착각하게 된다. 말의 공포가 나의 공포가 되고, 말의 목적 없는 질주가 나의 의지가 된다. ‘관찰자’는 사라지고, 오직 ‘경험’만이 남는 것이다.


한참을 날뛰던 말이 제풀에 지쳐 멈추었을 때, 우리는 상처투성이로 낯선 곳에 쓰러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자괴감과 허탈함에 빠진다.



충동의 또 다른 얼굴: ‘하기 싫다’는 마음의 정체


충동이 항상 이처럼 거칠고 폭력적인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주 교묘한 모습으로 위장하여 우리를 속인다. 내가 발견한 가장 교묘한 충동의 모습은 바로 ‘하기 싫다’는 마음이었다.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눈앞에 있을 때, 우리는 종종 ‘하기 싫다’는 무기력감에 빠진다. 과거의 나는 이것을 그저 게으름이나 의지박약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감정을 깊이 해체해 본 결과, 그 실체는 전혀 달랐다.

‘하기 싫다’는 감정은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금 해야 할 어려운 일’을 피해서, ‘더 쉽고 즉각적인 보상을 주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는 매우 능동적이고 강력한 ‘숨겨진 충동’이었다.


그것은 더 큰 노력이 필요한 ‘진짜 보상’을 회피하고, 도파민 시스템이 제안하는 ‘값싼 보상’으로 도망치려는 뇌의 유혹이다. 미루고, 딴짓하고, 회피하는 우리의 모든 행동 뒤에는 이 숨겨진 충동이 도사리고 있다.



새로운 관계 맺기: 충동은 위기가 아닌 ‘자원’이다


이 모든 분석 끝에, 나는 충동을 대하는 새로운 관점에 도달했다.


충동은 위기가 아니라, 내 안에 잠재된 거대한 ‘에너지의 출현 신호’다.


충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향이든, 내 안에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강력한 ‘원천 에너지’가 존재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과거에는 이 에너지가 나타나면 겁을 먹고 싸우거나, 그대로 휘둘려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이 야생마 같은 에너지는 죽여 없애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길들여야 할 대상이다. 이 에너지의 방향을 파괴적인 곳에서 건설적인 곳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그것은 내 삶을 그 어떤 의지력보다도 강력하게 밀고 나아갈 추진력이 될 것이다.


싸움은 끝났다. 이제부터는 길들이기의 시간이다. 충동이라는 야생마의 고삐를 잡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함께 달려 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찾은 충동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이다. 그리고 그 고삐를 잡는 기술이 바로, ‘알아차림’과 ‘틈 만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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