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운영체제를 바꾸기

세로토닌 기반의 보상 프로그램

by 김종환

내 삶의 기본값: '결핍'을 먹고사는 사냥꾼, 도파민 프로그램


나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내면의 운영체제(OS), 그 기본값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그 시스템에 ‘굶주린 사냥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공식 명칭은 ‘도파민 기반 보상 프로그램’이다.


이 사냥꾼은 태생적으로 만족을 모른다. 그의 행복은 오직 ‘다음’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그것을 ‘예상치 못하게’ 잡았을 때의 짜릿함 속에만 존재한다. 그 외의 모든 시간, 즉 현재는 다음 사냥을 위한 지루하고 의미 없는 기다림일 뿐이다.


그의 언어는 언제나 “더 많이(More), 더 새롭게(New), 더 빠르게(Fast)”를 외친다. 그는 결코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지 않으며, 지금 발 딛고 있는 땅의 풍요로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저 너머의 새로운 사냥감에 고정되어 있다.


이것이 ‘보상예측오류(RPE)’ 시스템의 본질이다. 이 시스템은 안정적인 만족이 아니라, ‘기대와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놀라움’을 먹고 산다.


기대치 못한 큰 보상(사냥감)은 도파민을 폭발시키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는 우리를 즉시 실망과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이 사냥꾼이 내 삶의 주인이었을 때, 나의 삶은 영원한 롤러코스터였다. 짜릿한 성취의 순간은 너무나 짧았고, 대부분의 시간은 다음 쾌락을 찾아 헤매는 갈증과, 기대가 무너졌을 때의 허탈감으로 채워졌다.


이 사냥꾼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모든 동기가 ‘결핍’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 부족하다’,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저것을 가져야만 행복해진다’는 믿음이 바로 그를 움직이는 연료다. 이 ‘도파민 프로그램’이 우리의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한, 우리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속에서 다음 사냥감을 찾아 헤매는, 지친 사냥꾼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새로운 운영체제의 발견: '충만'을 가꾸는 정원사, 세로토닌 프로그램


사냥꾼의 삶에 지쳐갈 무렵, 나는 내 안에 또 다른 운영체제가 존재할 수 있음을 어렴풋이 발견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새로운 시스템에 ‘만족을 아는 정원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공식 명칭은 ‘세로토닌 기반 만족 프로그램’이다.


정원사는 사냥꾼과 모든 면에서 정반대다. 그는 저 멀리 있는 사냥감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작은 정원 안에서, 이미 주어진 것들로부터 ‘충만함’을 길어 올린다. 그의 기쁨은 화려한 수확의 순간에만 있지 않다. 씨앗을 심고, 물을 주고, 흙을 만지고, 따스한 햇볕을 느끼는 ‘과정’ 그 자체에서 그는 온전한 만족을 느낀다.


이 정원사는 언제나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그의 언어는 “충분하다(Enough), 평온하다(Calm), 감사하다(Grateful)”이다. 이 시스템이 활성화될 때, 우리는 외부의 보상이나 칭찬 없이도 내면에서 샘솟는 은은하고 지속 가능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세로토닌 프로그램은 도파민처럼 폭발적인 쾌감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그것은 우리의 기분을 안정적인 상태로 조율하도, 사냥꾼의 과도한 충동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며, 삶의 배경에 잔잔한 평화와 감사의 배경음악을 깔아준다.


도파민이 ‘흥분’의 신경전달물질이라면, 세로토닌은 ‘행복’ 그 자체의 신경전달물질에 가깝다. 나는 이 새로운 운영체제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내 삶의 기본값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운영체제 전환하기: 사냥꾼의 저항과 정원사의 씨앗 심기


새로운 ‘세로토닌 OS’의 존재를 알게 된 나는, 즉시 내 삶에 그 프로그램을 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바로 ‘명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운영체제를 설치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기존의 운영체제, 즉 ‘도파민 사냥꾼’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내가 명상을 위해 조용히 자리에 앉는 순간은, ‘정원사(세로토닌)’가 텅 빈 땅에 첫 씨앗을 심으려는 순간과 같다.


하지만 이 순간, ‘사냥꾼(도파민)’은 경악한다. 아무런 자극도, 사냥감도, 보상에 대한 기대도 없는 ‘고요’는 그에게 굶주림이자 곧 생존의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루하다! 이건 시간 낭비다! 당장 일어나서 뭐라도 사냥해!”라고 내 머릿속에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내가 명상 초기에 겪었던,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지루함과 몸을 배배 꼬게 만들던 불편함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것은 굶주린 사냥꾼의 마지막 저항이자, 새로운 운영체제 설치를 방해하려는 강력한 시스템 오류 메시지였다.


시스템 전환은 단번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사냥꾼이 쉴 새 없이 소리를 지르며 방해하는 황무지에서, 정원사가 묵묵히 돌을 골라내고 땅을 파서 씨앗 하나를 심는 과정과 같았다.


매일 명상 자리에 앉아 지루함을 견디고 호흡으로 돌아오는 나의 모든 노력은, 사냥꾼의 비명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정원에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정원사의 신성한 노동이었다.



세로토닌 프로그램 설치법: 현재를 '보상'으로 만드는 기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저항을 이겨내고 ‘세로토닌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설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굶주린 사냥꾼을 진정시키고, 내 안의 정원사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을까? 나는 수련을 통해 몇 가지 구체적인 ‘설치 기술’을 발견했다.


* 기술 1: 알아차림 수련 (현재 감각에 가치 부여하기)


‘알아차림(Awareness)’은 지금까지 사냥꾼이 하찮게 여기고 무시했던 ‘지금, 여기’의 사소한 감각들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행위다. 찻잔의 온기, 의자에 닿은 엉덩이의 감촉, 코끝을 스치는 바람의 느낌. 이것들을 가만히 느끼는 것은 “이 평범한 감각이 바로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보상이다”라고 뇌에게 가르치는 것과 같다. 이 훈련은 ‘다음’이 아닌 ‘지금’의 가치를 높여, 세로토닌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활성화한다.


* 기술 2: 자애 수련 (내부에서 만족 생성하기)


‘자애 명상’은 외부의 사냥감 없이, 내 안에서 스스로 따뜻함, 친절함, 안정감이라는 긍정적 상태를 만들어내는 훈련이다. 손을 가슴에 얹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행위는, 외부 조건에 의존하지 않는 세로토닌적 행복을 생성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나는 이미 안전하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신호를 뇌에 보내, 사냥꾼의 결핍감을 근본적으로 치유한다.


* 기술 3: 감사 수련 (이미 가진 것에 가치 부여하기)


‘감사’는 도파민의 결핍 회로에 대한 가장 강력한 역공이다. 잠들기 전, 오늘 있었던 사소한 일들에 대해 감사함을 떠올리는 행위는 “나는 이미 충분한 것을 가졌다”고 뇌에게 선언하는 것과 같다. 감사는 ‘더, 더’를 외치는 사냥꾼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이미 충분하다’는 정원사의 충만 회로를 강화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효과적인 기술이다.



삶의 새로운 방향: '결핍'에서 '충만'으로의 여정


나는 아직 이 새로운 운영체제, 즉 '세로토닌 프로그램'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수십 년간 내 삶의 기본값이었던 '도파민 사냥꾼'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 굶주린 사냥꾼은 시시때때로 고개를 들고,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속삭이며, 나는 그의 목소리에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희망적인 ‘징후’들이다. 나는 이제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등대를 발견한 항해사와 같다. 아직 항구에 도착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내 삶의 기본 상태가 ‘결핍’에서 ‘은은한 충만감’을 향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행복을 느끼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좇아야 했지만, 이제는 잠시 멈추어 나의 호흡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조용한 만족감을 맛보는 순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정원사’의 힘이 내 안에서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 증거다.


굶주린 사냥꾼(도파민)과의 관계도 변하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왕국의 유일한 폭군이 아니다. 정원사(세로토민)의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힘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둘은 이제 내 안에서 힘겹게 공존하며, 왕국의 주도권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때로는 사냥꾼이 이기기도 하지만, 이제는 정원사가 승리하는 날도 많아지고 있다.


나는 언젠가 이 둘이 파괴적인 경쟁을 멈추고, 현명한 정원사의 지휘 아래 사냥꾼의 강력한 힘을 빌려 쓰는, 건강한 협력 관계를 이룰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보상예측오류(RPE) 시스템에 휘둘리는 정도도 줄어들고 있다. 예상치 못한 나쁜 일에 완전히 절망하기보다, 그 안에서 배울 점을 찾으려는 내가 있다. 예상치 못한 좋은 일에 흥분하여 이성을 잃기보다, 그 기쁨을 조용히 음미하려는 내가 있다. 이것이 진정한 ‘평정심’으로 향하는 길이리라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나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수많은 씨앗을 심었지만, 정원은 이제 막 작은 싹을 틔웠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길을 꾸준히 걸어 나갈 때, 매일 묵묵히 나의 정원을 가꿀 때, 삶의 기본값은 마침내 ‘충만’으로 설정될 것이라는 것을. 이 길의 끝에서, 굶주린 사냥꾼이 아닌, 만족을 아는 정원사가 미소 짓고 있으리라는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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