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명상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명상’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자 유행이 되었다. 서점에는 깨달음과 마음의 평화를 약속하는 책들이 넘쳐나고, 스마트폰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명상 앱이 출시된다. 각종 매체는 명상이 마치 모든 현대인의 고통에 대한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 거대한 유행의 한복판에서, 나는 종종 깊은 이질감과 함께 길을 잃는 기분을 느낀다. 그들이 파는 화려한 명상과, 텅 빈 방에 홀로 앉아 내가 하는 명상은 너무나도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내가 가는 길과 가지 않는 길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이것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보고서이자, 나의 명상에 대한 정체성을 밝히는 선언문이다.
내가 단호하게 버린 것들
첫째, 나는 신비주의와 모든 종류의 유행을 버렸다.
나는 명상을 통해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거나, 보통 사람은 알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을 깨달을 목적이 없다. 고도의 정신작용이나 고차원적 감각도 관심 없다. 나의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이었고, 내가 겪는 고통은 구체적이었다. 끝없이 나를 덮치는 불안과 충동은 신비로운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삶을 망가뜨리는 실제적인 문제였다.
실제 하는 문제에는 실제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나는 증명할 수 없는 영적 체험이나, 특정인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높은 경지’에 대한 이야기 대신, 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를 원했다.
나의 명상은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이해와 훈련의 영역에 있다. 나는 구원이나 깨달음이 아닌, 내 뇌의 ‘작동 방식’을 바꾸기 위해 명상한다.
둘째, 나는 모호한 용어와 그들만의 언어를 버렸다.
나는 ‘마음챙김’이라는 단어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어감이 입에 잘 붙지도 않을뿐더러, 너무나 많은 의미로 오용되어 이제는 그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모호해진 단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모호한 그릇에는 모호한 생각만이 담긴다.
물론 나 역시 ‘편도체’나 ‘전전두엽’ 같은 과학적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차용일 뿐이다. 나는 나의 경험을 설명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 혹은 그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과학적인 언어를 선호한다. 나의 명상은 특정 집단만이 이해하는 비밀스러운 언어 뒤에 숨지 않는다.
셋째, 나는 유사과학과 모든 형태의 자기기만을 버렸다.
나는 ‘긍정 확언’이나 ‘자기 암시’,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것들을 믿지 않으며, 오히려 가장 위험한 자기기만이라 생각하여 단호히 거부한다. 나는 ‘자기암시는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나는 불안과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거울을 보며 억지로 “나는 행복하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실재하는 내면의 고통을 외면하고, 그 위에 거짓된 긍정의 페인트를 덧칠하는 행위에 불과하다. 이것은 내 안의 진짜 목소리를 억압하고,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 더 깊은 내면의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나의 명상은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세상에서 가장 정직한 훈련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은, 문제가 있음을, 내가 고통받고 있음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정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선택한 단 하나의 본질
이 모든 화려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걷어내고 나면, 나의 명상에는 몇 가지 단순하고 명료한 ‘본질’만이 뼈대처럼 남는다.
* 나의 유일한 목표는 ‘신경망의 재배선’이다.
나는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명상하지 않는다. 나는 내 뇌의 물리적인 구조를 바꾸기 위해 명상한다.
낡고 반응적인 생존 회로(편도체)의 사용을 멈추고, 새롭고 안정적인 조절 회로(전전두엽)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뇌 안에 새로운 고속도로를 닦는 것. 이것은 ‘뇌의 재개발’이자, 내 존재의 구조를 바꾸는 거대한 ‘내면의 토목공사’다.
* 나의 유일한 기술은 ‘알아차림과 돌아오기’뿐이다.
나는 복잡하고 비밀스러운 명상 기술을 배우지 않았다. 나의 유일한 기술은, 마음이 다른 곳으로 방황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이라는 현재의 닻으로 부드럽게 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지루하고, 단조로우며, 그래서 가장 위대한 훈련이다. 이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 뇌의 낡은 길 위에 잡초를 자라게 하고 새로운 길을 단단하게 다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 나의 유일한 닻은 ‘호흡’이다.
나는 특별한 만트라나 이미지 따위를 사용하지 않는다. 차크라네 기운이네..됐다. 나의 유일한 닻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는 나의 ‘호흡’이다. 호흡은 과거를 후회하지도, 미래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여기에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아무런 이야기도, 판단도 달라붙어 있지 않은 가장 순수하고 정직한 감각이며, 생각의 폭풍우 속에서 나를 현재로 되돌려 놓는 가장 확실한 생명줄이다.
* 나의 유일한 성과는 ‘현실적인 변화’다.
나는 명상을 통해 하늘을 날거나 미래를 보는 능력을 얻지 못했다. 내가 얻은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변화다. 타인의 말 한마디에 내면의 지옥을 오가지 않을 수 있는 힘, 충동이 나를 덮치기 전 그것을 알아차리고 멈출 수 있는 ‘틈’을 만드는 능력이다. 나의 목표는 열반이 아니라, 그저 일상 속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조금 더 평온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명상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고, 믿음이 아니라 훈련이다. 특별한 이름도, 화려한 구호도, 신비한 약속도 없다. 그저 뇌의 낡은 회로를 바꾸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훈련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내가 걷는 길의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