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에 대하여

원초적 욕구를 다루는 법

by 김종환

식욕에 대하여: 내 안의 원초적 욕구를 해부하다


수면욕, 그리고 식욕과 같은 인간의 가장 기초적이고 강력한 이 욕구들 앞에서, 우리는 종종 이성의 힘을 쉽게 놓아버리곤 한다. 다른 충동들은 ‘나쁜 것’, ‘없애야 할 것’으로 규정하고 어떻게든 저항하려 애쓰면서도, 이들의 요구는 ‘생존을 위한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기며 유독 관대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는 최근, 내 안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면밀히 관찰하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가장 원초적이고 당연해 보이는 이 ‘식욕’조차도, 수시로 우리를 속이고 ‘거짓 경보’를 울린다는 것이다. 어느 늦은 밤, 어김없이 찾아온 야식의 유혹 앞에서 나는 이 거대하고 오래된 욕망의 실체를 해부해보기로 결심했다. 이 글은 그 분석과 투쟁의 기록이다.



저항할 수 없는 유혹: 우리는 왜 식욕에 관대한가


우리가 식욕에 그토록 쉽게 무너지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신호는 머릿속의 막연한 속삭임이 아니라, 온몸으로 외치는 거대하고 물리적인 아우성이기 때문이다. 다른 감정이나 충동과 달리, 식욕의 경보는 구체적인 신체 반응을 동반한다. 허기 호르몬이 분비되어 뇌를 직접 타격하고, 비어있는 위장은 경련하며 ‘꼬르륵’ 소리를 내어 존재감을 과시한다. 입에는 침이 고이고, 머릿속은 온갖 음식의 이미지로 가득 찬다.


이처럼 선명하고 구체적인 신체 반응 앞에서, 우리의 이성은 쉽게 마비된다. 이것은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당장 해결해야 할 ‘실제적인 생존의 문제’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 안의 가장 오래된 파수꾼(편도체)은 “지금 에너지를 보충하지 않으면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가장 강력한 경보를 울린다. 이 원초적 공포 앞에서 ‘건강’이나 ‘절제’ 같은 추상적인 가치는 힘을 잃는다.


여기에 ‘죄책감의 부재’라는 사회적 인식 또한 우리의 저항을 무력화시킨다. 다른 충동과 달리, ‘먹는 행위’는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활동으로 여겨지기에, 우리는 식욕에 굴복하더라도 다른 충동에 비해 심리적 저항이나 죄책감을 덜 느낀다. 이처럼 식욕은 ‘생존 본능’이라는 명분과 ‘강력한 신체 반응’이라는 실체를 모두 가진,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내면의 강적이다.



저항의 시작: 식욕을 거부했을 때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


만약 이 강력한 요구에 저항하기로 결심하면, 내 안에서는 즉시 격렬한 내전이 시작된다. 파수꾼은 더 큰 목소리로 경보를 울리고, 온몸은 이 불편한 상태를 끝내기 위해 전방위적인 반발을 시작한다.


정신적 공격: 뇌는 마치 보복이라도 하듯, 온갖 음식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바삭한 치킨의 소리, 쫄깃한 족발의 식감,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맛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된다. 다른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도록, 의식의 모든 채널을 음식 생각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신체적 공격: 위장은 더욱 격렬하게 수축하며 고통에 가까운 허기를 호소한다. 몸에 힘이 빠지는 듯하고, 가벼운 현기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상태를 지속하면 정말로 위험해질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감정적 공격: 이성적인 저항이 계속되면, 뇌는 ‘감정’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다. ‘왜 나만 이렇게 유난을 떨어야 하지?’라는 억울함, ‘이것 하나 못 참는 나약한 존재’라는 자기 비난, ‘오늘 하루 힘들었는데 이 정도는 괜찮잖아’라는 자기 연민과 합리화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것이 식욕이라는 원초적 욕구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벌이는 총력전이다.



‘가짜 식욕’의 발견: 무엇이 아닌, 왜 먹으려 하는가


그날 밤 나는 배가 고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저녁을 먹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의 뇌는 굳이 돈을 내고 배달시켜야 하는, 더 짜고 달고 기름진 ‘자극적인’ 음식들을 원하고 있었다. 이 명백한 불일치 앞에서, 나는 ‘틈’을 만들고 질문을 던졌다.


이것은 진짜 배고픔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


나는 이 식욕의 본질이 세포가 원하는 ‘영양 보충’이 아니라, 내가 그토록 경계하던 ‘도파민 시스템의 요구’에 있다는 사실을 직면했다. 하루 종일 느꼈던 미세한 스트레스,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는 지루함. 나의 뇌는 이 불편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가장 빠르고 손쉬운 해결책으로, ‘음식’이라는 도구를 통해 도파민을 얻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무엇을 먹고 싶다’는 문제 이전에, ‘나는 왜 지금 먹으려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었다. 그것은 생리적 허기가 아닌, 감정적 허기이자 도파민에 대한 갈망이었다. 나는 가장 원초적이고 순수해 보이는 식욕에도 이처럼 정교한 ‘오류’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오류의 배후에는 늘 도파민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너짐은 실패인가: 도미노와 데이터의 차이


그렇다면 이 가짜 식욕의 유혹에 넘어가 야식을 먹는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수련과 노력은 허사가 되는 것일까? “열심히 세운 도미노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일까?”


과거의 나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어차피 망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음식을 먹어치우며 자포자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한 번의 무너짐은 결코 전체의 실패가 아니다.


수련의 핵심은 ‘한 번도 휩쓸리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몇 번을 휩쓸리더라도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오는 회복력’에 있다. 야식 한 번을 먹는다고 해서 내가 쌓아 올린 알아차림의 능력이나, 전전두엽의 조절 능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무너짐’은 가장 값진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아, 나는 이런 상황(스트레스, 지루함)에서 가짜 식욕을 느끼는구나.’, ‘이 음식을 먹으니 잠시 기분이 좋았다가, 30분 뒤에는 더 큰 무기력과 자책감이 밀려오는구나.’ 이 모든 것을 판단 없이 관찰하고 기록할 수만 있다면, 그 실패는 다음번 싸움을 위한 최고의 전략서가 된다. 무너짐은 도미노가 아니다. 그것은 다음 실험을 위한 오답노트다.


합리화는 했으니 이제 야식을 먹어볼까?

아니, 뒷 내용이 남았다.




두 개의 갈림길, 두 개의 보상: 욕구의 ‘질량’과 이성의 ‘빛’


‘가짜 식욕’ 앞에서 나에게는 언제나 두 개의 갈림길이 놓인다.



첫 번째 길 (욕구를 따르는 길): 이 길의 끝에는 즉각적이고 폭발적인 보상이 있다. 갈망의 고통이 사라지고, 혀끝에서 뇌까지 이어지는 짜릿한 쾌락이 온몸을 감싼다. 하지만 이 보상은 짧다. 그 뒤에는 더부룩한 속, 다음 날 아침의 부은 얼굴, 그리고 ‘결국 또 졌구나’하는 자기 비난이라는 청구서가 반드시 뒤따른다.


두 번째 길 (욕구를 따르지 않는 길): 이 길의 시작에는 고통이 있다. 갈망을 견뎌내야 하는 불편함과 내면의 치열한 싸움이 있다. 하지만 이 고통의 터널을 지나고 나면, 그 끝에는 조용하지만 깊고 오래 지속되는 보상이 기다린다. 건강한 몸, 편안한 아침,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았다’는 강력한 자기 신뢰와 존중감이다. 거창하게 얘기했지만, 참으면 돈 굳고, 속 편하고, 살도 안찌고, 잠도 일찍 잘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면 두 번째 길이 압도적으로 유익하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토록 자주 첫 번째 길을 선택하는가? 나는 그 이유가 두 선택지가 가진 ‘질량감(sense of mass)’의 차이에 있음을 관찰했다.


식욕이라는 욕구는 ‘막대한 질량의 신체’가 보내는, 묵직하고 뜨거운 납 덩어리 같은 현실적인 작용이다. 그것은 내 위장을 뒤틀고, 내 온몸의 감각을 지배한다.


반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이라는 가치는 형태가 없는, 영롱하지만 희미한 한 줌의 달빛 가루와 같다. 질량이 없다. 나의 몸은 거대한 납 덩어리를 향해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나의 이성은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이 압도적인 질량의 불균형. 이것이 내 보상체계의 솔직한 현주소이자, 선택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다.



원초적 욕구 길들이기: 나의 5단계 대응 프로토콜


그렇다면 이 질량이 다른 싸움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이제 그 둘과 나를 분리하여 ‘삼자대면’을 시킬 힘이 있다. 나는 이 과정을 5단계의 대응 프로토콜로 정립했다.


1. 직시 (Facing): 식욕의 존재를 피하거나 억누르지 않는다(부정하거나 억지로 참지 않는다). 오히려 그 욕구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아, 내가 지금 몹시 무언가를 먹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그 강력한 에너지의 존재를 정직하게 인정한다.


2. 분별 (Discerning):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영양적 실조에 의한 진짜 배고픔인가, 감정적 허기인가? 나는 왜 지금 이것을 원하는가? 스트레스 때문인가? 지루함 때문인가?” 원인을 분별하는 것만으로도, 욕구의 힘은 절반으로 약해진다.


3. 정위치 (Neutral Point): 즉시 행동하지 않음으로서 ‘먹고 싶은 나’와 ‘먹지 않으려는 나’ 사이 정 가운데 서서, 어떤 선택이든 동일한 힘을 들여 할 수 있을 때 까지 기다린다.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질량의 불균형 자체를 하나의 명상 주제로 삼는다. 이 고요한 관찰의 시간이 바로 ‘선택의 정위치’다.


4. 비교 (Comparing): 두 갈림길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한다. 욕구를 따르고 합리화해도 좋고, 이성을 따르고 보람차해도 좋지만, 그 선택이 객관적으로 나에게 가져다주는 베네핏을 하나하나 따져본다.


5. 선택 (Choosing): 마침내,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나’의 의지로 하나의 길을 선택한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욕구에 의한 ‘반사’가 아닌, 나의 주권을 행사한 ‘선택’이 된다.



어쨌든 나는 그날 밤, 먹지 않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 지독한 싸움의 순간마저도 내면을 탐구하고 성장하는 흥미로운 ‘숙제’로 바꿀 수 있게 된 나의 새로운 시선이었다. 식욕은 이제 나의 주인이 아니라, 나의 가장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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