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을 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그래서 그 잘난 명상을 하면 뭐가 좋은가

by 김종환

일단 한번 초를 치고 시작하겠다. '명상 엘리트주의'는 죄악이다.


이 글의 결론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명상을 하는 사람은 하지 않는 사람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혹은, 만약 다른 점이 있다면, 오히려 명상을 하는 사람이 더 ‘고장 난’ 상태에서 출발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말에 의아함을 느꼈다면,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란다. 이 글은 명상에 대한 흔한 자기계발서적의 찬양이 아니다. 이것은 ‘명상’이라는 처방전이 필요했던, 망가진 시스템을 가진 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이자,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현실적인 제안이다.



명상이 필요한 우리들의 슬픈 현실


애초에 ‘명상이 필요 없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 아마도 그것은 뇌의 보상체계에 왜곡이나 폭주가 없는, 외부 자극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본래의 평온한 상태일 것이다. 그들은 굳이 명상이라는 인위적인 훈련 없이도,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꾸려나갈 힘을 이미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들’은 다르다. 우리의 내면 시스템은, 마치 적정량만 복용하면 이로운 약인 아세트아미노펜을 매일 과복용하여 간이 손상된 사람과 같다. 현대 사회의 과도한 자극, 잘못된 습관, 내면에 대한 무지로 인해, 우리의 편도체는 끊임없이 거짓 경보를 울리고, 도파민 시스템은 더 큰 쾌락을 찾아 폭주하며, 우리의 정신 에너지는 밑 빠진 독처럼 새어 나간다.


우리가 명상을 시작한 이유는, 우리가 더 우월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고장 난 시스템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더 이상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에 내몰린 사람들이다. 명상은 선택 가능한 취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유일한 응급처치이자 재활 훈련이었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며 마음에 울림이 있다면, 그대 또한 나와 같은, 명상이 필요한 이 슬픈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첫 번째 변화: ‘비범함’이 아닌 ‘평범함’으로의 복귀


그렇다면 이 절박한 재활 훈련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놀랍게도, 그 첫 번째 변화는 비범한 깨달음이나 초월적인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해진다’는 것이다.


과거의 나에게는 ‘평범한 하루’가 불가능했다. 아침에 제때 일어나고, 밥을 챙겨 먹고, 방을 치우고,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밤에 편안히 잠드는 것. 이 모든 당연해 보이는 일들이 나에게는 거대한 심리적 저항에 부딪히는 어려운 과업이었다.


하지만 명상을 통해 내면의 거짓 경보가 줄어들고, 새어 나가던 에너지가 보존되자, 나는 비로소 이 ‘평범한’ 일들을 너끈히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평범함’이란, 결코 무기력하거나 개성 없는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필요한 내면의 소음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며, 주어진 삶을 충실하게 살아내는 ‘건강하고 올바른 상태’를 의미한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이 지극히 정상적인 상태를 잃어버리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두 번째 변화: 삶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이해하다


명상이 가져온 두 번째 변화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라는 게임의 구조와 규칙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의 나는, 게임의 조작법도, 적의 패턴도, 승리 조건도 모른 채, 그저 눈앞의 자극에 반사적으로 버튼을 눌러대는 초보 플레이어와 같았다. 왜 지는지도 모른 채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게임 탓, 혹은 내 손가락 탓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명상은 나에게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고, 게임의 ‘설정 화면’을 들여다볼 기회를 주었다. 그 안에서 나는 ‘편도체’, ‘도파민’, ‘전전두엽’이라는 나의 캐릭터 스탯과, ‘보상예측오류(RPE)’라는 게임의 물리 엔진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어떤 경지에 도달하는 특별한 과정이라기보다는, 어쩌면 그저 게임의 룰을 이해하고 공략집을 읽어보는 ‘정상화’ 과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 나는 더 이상 맹목적인 플레이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이제 게임의 구조를 이해하고, 승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을 짜는, 한 명의 정상적인 플레이어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하여, 명상을 꾸준히 해낸 사람은 이렇게 달라진다


그렇게 꾸준히 수련을 이어간 사람은, 겉보기에는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면의 운영체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특징 1: 감정의 진폭이 작아진다. 외부 자극에 대한 흥분도가 내려가고, 감정의 오르내림 폭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좋은 일에 광분하지 않고, 나쁜 일에 절망하지 않는다. 이것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이 아니라, 어떤 감정이 일어나든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내면의 깊은 평온함이다.


특징 2: 삶에 대한 지루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물론 지루함과 따분함을 느낀다. 하지만 더 이상 그 감각을 ‘견딜 수 없는 고통’이나 ‘반드시 탈출해야 할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다. “아, 도파민 시스템이 또 자극을 달라고 보채는구나” 하고 알아차리고는, 그저 가만히 내버려 둔다.


특징 3: ‘옳은 선택’을 하는 빈도가 늘어난다. 더 이상 충동이나 감정의 목소리가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삶과 옳은 행동’에 부합하는 ‘자애심’의 목소리에 따라 선택하는 힘이 길러진다. 그 선택은 당장의 만족이 아닌, 장기적인 성장과 평화를 향한다.


특징 4: ‘원하는 것’의 질(質)이 달라진다. ‘쾌감’을 삶의 목적지가 아닌, 여정의 과정으로 삼게 된다. 저급하고 소모적인 쾌락을 좇는 대신, 운동 후의 상쾌함이나 배움의 즐거움처럼,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질 좋은 쾌감’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폭력이나 억지가 아닌 ‘적절한 수단’을 선택할 줄 알게 된다.


특징 5: 고통과 변화에 대한 태도가 바뀐다. 고통을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면을 탐구할 수 있는 흥미로운 ‘데이터’로 여긴다. 결과에 대한 조급한 집착 없이, 한 걸음 물러서서 ‘여유롭게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모든 결과는 필연과 우연의 합작품임을 알기에, 어떤 변화 앞에서도 겸허하게 대처한다.



결론: 그래서, 우리는 왜 명상을 해야 하는가


이 모든 변화는 우리의 실제 삶에서 수많은 이점으로 이어진다.


감정 기복이 줄어드니,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필요한 마찰이 사라진다. 지루함을 견딜 수 있으니, 해야 할 일에 더 깊이 몰입할 수 있다. 옳은 선택을 하는 힘이 길러지니, 장기적인 목표를 성취할 확률이 높아진다. 질 좋은 쾌감을 추구하니, 삶의 만족도는 더 적은 비용으로도 훨씬 더 높아진다. 고통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더 용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명상을 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평범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고장 난 시스템을 수리하고, 게임의 규칙을 배우며, 마침내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이다.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며 단 한순간이라도 ‘이것이 내 이야기’라고 느꼈다면, 당신 또한 이 위대한 ‘정상화’의 여정을 시작할 때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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