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서론: ‘중요하다’는 착각이 만드는 고통
지난 글에서 우리는 명상의 첫걸음으로,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인 ‘호흡 알아차리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 단순한 훈련을 꾸준히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의 뇌는 오랫동안 작동하던 방식대로 작동하기를 선호하기에, 낯선 고요함에 머무르려 하면 온갖 종류의 저항을 일으킨다.
그 저항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우리가 세상을 규정하고,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맺어온 수많은 ‘관계’와 ‘학습’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다양한 현상, 대상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과의 경험을 통해 학습한 바를 따라 자신만의 ‘규칙’을 만든다. 그 과정에서 우리에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생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중요한 것’처럼 가장하여 우리를 속이고, 우리의 삶을 불필요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착각하는 것’에 의해 실망하고, 분노하며, 크나큰 불만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 장에서는 바로 이 ‘중요성’의 환상을 걷어내고,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명상의 두 번째 단계, ‘의미와 상징의 해체’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의미와 상징의 해체: 왜, 무엇을 위한 작업인가
호흡으로 돌아와 잠시 고요를 되찾았다면, 명상의 다음 단계는 ‘의미와 상징의 해체’다. 이 작업은 언뜻 보면 명상적이라기보다 매우 의식적이고 분석적인 작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의 목표는 명확하다. 바로 사고의 틀에 의도적인 혼란을 줌으로써, ‘내가 세상에 부여한 가치의 한계’를 인식하고, 자동적으로 흐르던 사고의 관성을 멈추는 것이다.
우리의 뇌, 특히 연상 체계는 몹시 효율적이다. 사과를 보면 빨갛고, 달콤하며, 맛있다는 정보가 순식간에 떠오른다. 이 덕분에 우리는 고도화된 인지 능력과 학습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 효율적인 시스템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A는 B를 의미한다’ 혹은 ‘X는 Y를 떠오르게 만든다’라는 이 자동적인 작용이, 때로는 우리를 왜곡된 현실 속에 가두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이 자동적인 연결 고리를 의식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대상과의 관계를 ‘중립’으로, 그 가치를 ‘0’으로 재설정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내가 세상을 바라볼 때, 불필요한 의미 부여와 연상 작용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세상과 나와의 관계는 비로소 평화로워지고, 그 자리에는 오직 ‘지금 이곳의 나와 저것’만이 순수하게 남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명상 상태’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접근법 중 하나다.
이 해체 작업은 우리에게 궁극적인 자유를 선물한다. 경직된 사고와 의식의 낭비를 막아주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반사적인 감정들을 완화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된 여유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 원하는 것과 추구하는 것’을 재규정하여 ‘가치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의미와 상징을 해체하는 구체적인 과정
이 해체 작업은 복잡한 심리 분석이 아니다. 오히려 몇 가지 단계를 따라,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는 관찰에 가깝다. 처음에는 나에게 불쾌감을 주는 대상(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저해하는 것들)에 대해, 익숙해지면 나에게 쾌감을 주는 대상(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들)에 대해 이 작업을 시도해볼 수 있다.
1. 대상을 바라본다.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인식한다. 길에서 마주친 값비싼 외제 차, 나를 비난했던 상사의 얼굴, 오래 전 받은 선물, 사람이든, 사건이든, 물건이든 좋다.
2. 내면의 연쇄 반응을 관찰한다. 그 대상을 마주하는 순간, 내 안에서 어떤 감정과 생각의 연쇄가 일어나는지 가만히 지켜본다. 외제 차를 볼 때 ‘나도 저런 차를 타야 성공한 건데’라는 열등감이 드는가? 상사의 얼굴을 떠올릴 때 ‘어떻게 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라는 분노가 치미는가? 추억에 잠기는가? 애타는 느낌이 드는가? 슬픈가? 분명 어딘가에 강하게 ‘꽂히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3. 그 기저의 ‘중요성’을 발견한다. 그 연쇄 반응의 기저에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즉 ‘내가 의미 있게 생각하는 가치’가 숨어있다. 외제 차 앞에서의 열등감은 ‘사회적 성공과 타인의 인정’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고, 상사에 대한 분노는 ‘존중받을 권리’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4. ‘중요성’의 기원을 추적한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을까? 이 중요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가만히 추적해보면, 그 기원은 지극히 단순하다. 그것은 단순히 ‘어떤 불쾌함’ 또는 ‘어떤 유쾌함’이 반복된 결과일 뿐이다. 과거에 무시당했던 불쾌한 경험이 ‘인정’에 대한 갈망을 만들었고,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받았던 칭찬의 유쾌한 경험이 ‘성공’에 대한 집착을 만들었을 수 있다. 혹은, 부모나 사회로부터 ‘그것이 중요하다’고 단순히 학습하고 주입받은 바일 수도 있다.
5. 생존 본능의 속임수를 인지한다. 이 모든 과정의 배후에는, 우리의 생존 유전자, 즉 편도체가 있다. 편도체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성공, 인정)에는 ‘쾌감’을, 불리한 행동(무시, 실패)에는 ‘불쾌감’을 조건화하여 우리를 길들여왔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강력한 ‘중요성’이, 사실은 생존을 위한 편도체의 오래된 속임수이자 ‘조건부 쾌감’의 약속일 뿐임을 알아차린다.
6. 다시, 대상을 바라본다. 이 모든 분석을 마친 뒤, 처음의 그 대상을 바라본다.
7. 자유를 선언한다. 이제 그것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다. 그것은 그저 그곳에 놓인 그것이다. 때로는 하나의 ‘자연 현상’이자 ‘우연의 산물’일 뿐이다. 그것에 ‘성공’이나 ‘실패’, ‘행복’이나 ‘불행’, ‘추억’, ‘상처’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전적으로 ‘나의 자유’임을 인지한다. 나는 그 의미를 부여할 수도, 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론: 산은 그저 산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유명한 화두의 진정한 의미다. 산에 ‘정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물에 ‘빠지면 죽는 위험한 곳’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이 모든 의미의 껍데기를 벗겨냈을 때, 산은 그저 산으로, 물은 그저 물로,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드러난다.
나와 세상의 관계를 이처럼 재규정할 때, 나에게 남는 것은 ‘언제 어땠던 무엇’이나 ‘언젠가 어떻게 될 저것’따위의 어떤 의미로 가득 찬 복잡한 세상이 아니라, ‘지금 이곳의 나와 저것’뿐이다.
이것이 세상이 무상하고 무가치하다는 허무주의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에게 진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들’은 분명 존재해야 한다. 다만, 이 해체 작업을 통해 우리는 그 근거가 무논리적이고 맹목적인 ‘가짜 중요성’들을 솎아낼 수 있다. 그들과의 관계를 중립으로 설정하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훨씬 단순해지고, 명쾌해진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진정으로 소중한 것에만 우리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