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콤한복이 Jan 22. 2024

나의 장례식에서 틀고 싶은 노래

잎새에 적은 노래


하늘에 별이 총총 박혀있던 캠핑장에서 아이들과 별을 보며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한창 별자리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에게 우리 가족 별자리를 알려주었다.

예전에 괌에 여행 가서 별구경하려고 설치해 둔 별자리어플을 실행했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별자리를 찾고 있었다.


엄마, 외할머니는 지금 어디쯤 있을까?
글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말이다.

우리 엄마는 까마득히 넓고 넓은 저 하늘 어디쯤에 계실까? 우리를 보고 계시려나?


엄마는 미리 약속하고 가면 안돼? 그럼 우리가 엄마를 빨리 찾을 수 있잖아!
맞아. 별자리어플 그거 보면 언제나 엄마별자리 나오지?
엄마자리가 나오면 엄마가 거기 있단 거겠지?
그럼 엄마는 하늘나라 가기 전에 그거(어플) 어떻게 하는 건지 나한테 알려주고 가야 해.
엄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엄마별자리가 있는 쪽 보면서 이야기할 거야. 알았지?




어려서부터 내 기억에 우리 엄마는 건강했던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았던 것만 같다. 좋았던 날보다 좋지 않았던 날이 무서워서 더 크게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늘 그렇게 아픈 중이라는 걸 알면서도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못해서였는지 엄마의 죽음은 마른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았다. 심지어 엄마가 떠나기 전 일주일을 병원에서 함께 지냈음에도 그랬다. 그 충격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것 때문인지 아이들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한다. 나는 지금 너무 건강하고 젊지만 그게 언제가 됐던지 그날은 올 것이고 남겨진 자식들에게는 갑작스러운 일이 될 테니까.

그렇다고 손을 꼽아 날을 세고 있겠다는 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압박을 주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영원한 이별’이기에 평범한 일상처럼 편하게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마치 ‘오늘 아침은 무얼 먹고 싶어?’,  혹은 다 함께 모인 저녁자리에서 ‘오늘 낮에 이런 일이 있었어’처럼.


처음에는 아이들이 울고 불며 엄마는 절대 죽지 말라고 난리를 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기는 매한가지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그전만큼 불안해하지는 않는다는 거다.

예전에는 지금 당장 엄마가 떠나기라도 할 것처럼 저 멀리 앞서 나가서 머릿속에 이미 장례를 열두 번도 더 치른 것 같았는데 지금은 생각만으로도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프긴 하지만 받아들인다. 세상에서 우리 엄마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누구나 적어도 한 번쯤은 죽을 만큼 슬픈 이별을 겪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 슬픔도 괜찮아질 때가 온다는 것을 엄마를 보고 알게 되었으리라.


신기한 것은 나 또한  아이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죽음이 더 이상 무섭지만은 않다. 아이들의 말처럼 미리 어디 있을 거라고 약속하고 가면 될 것 같고, 투명한 핸드폰을 만들어 들고 가면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을 것만 같고.

사실 나에게도 마음의 준비는 필요하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 불규칙하게 가빠지는 호흡이 점점 옅어지는 걸 보면서 나는, 지금 이 순간 엄마는 얼마나 두려울까 생각했다.

마침내 엄마가 완벽하게 우리의 옆에서 사라졌을 때 나는,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다.


훗날 나에게 죽음이 닥쳤을 때 나는, 사라져 가고 있다는 사실에 무서울 것이고, 내가 떠난 뒤 두려워할 아이들 생각에 겁이 난다. 그런 나에게 어린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심심한 위로가 된다.

나중에 나이가 지긋하게 들었을 때 지난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스스로 생을 정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그런 축복과도 같은 기적이 나에게 와줄까?



꼬리를 무는 생각이 길어지다 문득 나의 장례식에는 누가 올까?

나의 손님보다는 내 자식들의 손님이 더 많으려나? 그래도 나의 오랜 벗 한둘쯤은 다녀갈 수도 있겠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토끼 같은 자식들이 빨간 눈을 하고 자리를 지킬 테고.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은 벌써부터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은 사람이었건 아니었건 간에 나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에게만큼은 나쁘지 않았다고 믿어도 될까.

결코 가볍지 않았을 힘든 걸음으로 그곳까지 와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도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다. 비록 남의 목소리를 빌려 부를지언정 나의 마음이 전해지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어떤 노래가 좋을까. 내 장례식에서 흘러나왔으면 하는 노래라...

수많은 주옥같은 곡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평소 즐겨 듣던 곡이나 자주 부르는 노래들도 떠올려보았다. 이것도 좋을 것 같고 저것도 좋을 것 같고. 장례식에 너무 딱 인 것 같은데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마지막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딱 한 곡만 선택하기가 어려워 차라리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다 넣어볼까? 상상일 뿐인데도 괜히 심각해져서는 별의별 생각에 고민이 길어졌다.


그러다 몇 해 전 어떤 노래를 처음 듣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다. 들을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려서 자주 꺼내 듣지 못했던 곡. 말도 안 되는 억지지만 마치 내가 쓰고 부른 내 노래인 것만 같은 생각에 왠지 더 소중하게 느껴졌던 노래이다.

한참만에 잊고 있던 노래를 들어보았다. 다 아는 노래임에도 왜 처음처럼 눈물이 날까. 격정적이지도 않고 담담하게 흘러갈 뿐인데 나의 마지막이 벌써 눈앞에 와있는 것만 같은 이유는 뭘까.

이 노래는 왜 이토록 내 마음에 맺히는 걸까.


참 좋은 인생이었다. 너를 만나 다행이다.
고마운 일이 너무 많아 널 생각하면 슬퍼진다.
아 좋은 날들이었다.
너와 걸은 모든 길이 천국 같은 길이었다.
이제는 알 것 같아.


나를 배웅하러 와준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이야기야 밤을 새워도 모자라겠지만 떠나는 마당에 시간을 붙들고 수다 떨 겨를이 없다. 그 긴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동안에 충분히 나눴으리라 믿는다.

슬프겠지만 슬프지만은 않길 바라는 마음, 비록 나는 먼저 떠나가지만 나 역시 우리가 함께했던 많은 시간들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너로 인해 내 인생에 좋은 날이 더 많았다는 것 또한.


소중하고 좋은 것일수록 항상 깨달음은 늦은 것 같다. 매번 마음을 고쳐 먹어보아도 또 그렇게 되고 말더라.

살면서 놓치는 것도 많고 미루다가 잃어버리는 것도 많지만 다 놓아야 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모든 것이 확실해지리라.

내가 받은 것들, 내가 누린 것들, 내가 얻은 것들, 내가 가진 것들, 온통 사랑뿐인 너의 마음도 모두 다.


아름다운 건 모두 너에게 받았지
다정한 그리움과 잎새에 적은 노래들
아름다운 것 모두 지금 여기 새길래
모르는 새 어딘가로 사라져 버릴 걸 알잖아


주체 못 할 슬픔을 떠안게 된 이를 억지로 웃게 하고 싶지 않다. 곡을 할 필요까지야 없지만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넘쳐흐르는 눈물은 그냥 다 흘려보내기를.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살아생전 내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나면 그냥 울고 나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곱씹으며 실컷 수다나 떨고 가주기를.


고인에 대한 예의는 굳이 차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나의 장례식에서 만큼은.

정해진 절차와 의식들 모두 내가 받길 바라는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고인이 떠나는 먼 길에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예의라는 말에 괜한 죄책감 느끼지 않길 바란다. 내가 사는 동안 이미 당신이 나눈 것들 그걸로도 나는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을 내어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시간이 더 있다면 혹시 내가 잊었을지도 모를 기억을 꺼내 조곤조곤 들려주다 가주기를.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 언젠가처럼 마지막으로 나에게 그런 시간을 할애해 준다면 가는 길이 덜 외로울 것 같다. 조금은 덜 무서울 것 같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기 전 나의 이야기도 들어주기를.

이제 나의 음성으로 들려주지는 못하겠지만 내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을 이 노래로 대신할 수밖에 없음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길 바라며.


너와 걸은 모든 길이
별처럼 빛난다.


기억해 주기를.

당신이었기에 좋았고 우리 함께여서 행복했고 그래서 내 삶이, 나라는 사람이 빛났다는 것을.


그러니 그대, 티끌 같은 기억에 마음이 걸려 끝도 없이 미안해말기를.

부디 편한 마음으로 보내주기를. 그리고 내내 평안하기를.

너무 많이 그립고 보고 싶겠지만,


우리. 지금은. 여기서. 이제. 안녕.




잎새에 적은 노래 [자우림]

https://youtu.be/eciih6MmZk4?si=eW2mDAT_I7-R0A63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겨울방학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