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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Mar 31. 2023

04. 의 좋은 친구들

나에게는 산타클로스가 둘이나 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P와 M. 연말이 되면 우리는 카드와 작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우리의 겨울은 뜻깊다. 우리의 엽서에는 서로를 향한 사랑과 감사가 담뿍 담겨있다. 그래서 추운 겨울은 싫지만 따뜻한 기다림은 좋아한다. 어느새 우리 마음에 깃든, 소박한 우리만의 전통.




앞으로도 우리는 그리하겠지만 우리에게 작년 성탄절은 앞으로도 특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특히 나에게는 더더욱. 준 것보다 받은 것이 컸던 지난겨울이었으므로.


여느 때와 같이 내가 제일 먼저 카드와 선물을 보냈다. 건강에 부쩍 관심이 커진 나는 선물로 눈 찜질팩을 골랐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 눈의 피로를 덜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며칠 후, M으로부터 답장 엽서와 책 선물이 왔다. 정성스레 포장된 선물을 다 뜯기도 전에 놀라버렸다. 지난가을 무렵에 P가 내게 강력하게 추천해 줬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였던 것이다. 내가 책을 먼저 읽었다는 것에 M이 실망할까 봐 걱정했다. 다행히 M은 개의치 않아 했다. 오히려 M이 P로부터 그 책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아니 이런 우연이! 우리 셋에게 공통적인 올해의 책이 있었다니. 감개무량했다. 어른의 텔레파시란!


다음 날 P로부터 마지막 선물이 왔다. 나는 이번에도 놀라움이 섞인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언젠가 읽으려고 사두었던 책인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가 소중하게 포장되어 온 것이다. 나는 P에게 연락했다. 우리 이렇게 한마음 이기니?!


이로써 나는 친구들 덕분에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권,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각각 두 권을 갖게 되었다. (정작 P가 M과 나에게 선물한 두 권은 본인이 소장하고 있지 않단다. 정말 '의 좋은 형제' 친구 버전! P는 우리와 만나서 책을 돌려받고 다른 책으로 사주겠노라,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얼른 만나야 해!)


친구들의 책 선물을 나란히 두고 보니 전래동화 ‘의 좋은 형제’가 생각이 났다. 우리가 함께 나누고 싶었던 감상의 볏짚단을 주고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대들이 나를 생각하는 만큼의 무게가 왠지 감동스러워 괜스레 울컥하기까지 했다.

이제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앞으로는 서로에게 책을 가지고 있는지부터 물어볼 테니까. 아쉽다. 이렇게나 행복한 우연이 끝나기 전에 나도 그대를 위해서 올해의 책을 사볼걸. 내가 만일 그대에게 책 선물을 하기로 했다면 무슨 책을 골랐을까. 나도 그대의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선물했을까.




오늘은 M의 생일이다. 그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아 지난 크리스마스 때부터 지녀왔던 고마운 마음을 풀어본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과 희망을 주는 친구들. 서로의 삶에 치여서 잘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연결돼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친구들.


친구야 존재만으로도 항상 감사해.
보고 싶은 친구야, 생일 축하해.


P가 이 ‘귀여운 사건’에 영감받아 그려준 그림. 사용할 수 있도록 기꺼이 허락해준 작가님 감사합니다! 우리우정 뽀에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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