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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mad Jun 28. 2024

7. 아빠의 탈진과 회복

터덜터덜 아빠의 나 홀로 유후인 나들이

이튿날 저녁에 소고기로 배를 채운 뒤, 여동생과 숙소 근처의 마트와 도시락 가게에 들렀다. 다음 날 아침에 먹을 것들을 사 들고 돌아오면서 우리는 짤막한 대화를 했다. 내가 물었다.

- 첫날에는 막내, 오늘은 엄마, 내일은 누가 곤경에 빠지려나.

- 아빠?

- 그러려나?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의 씨를 싹 틔웠다.




버스에서 하차한 주차장에서 숙소까지의 길은 쉬운 편이었다. 좌회전 두어 번 정도. 그러나 주말의 한낮 거리 위였고 사람이 많았다. 여백이 보일 때마다, 나는 그 속으로 양손을 쑥 밀어 넣었다. 밀기에도 요령이라는 게 붙는지, 팔꿈치가 앞으로 뻗치는 순간들이 늘어났다. 다리에도 속도가 붙어 나와 남동생은 무리에서 이탈해 버렸다. 뒤를 돌아보니 인파에 가려 부모님과 여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도착 지점에 먼저 가서 땀을 식히자는 결론을 냈다.

유후인의 길은 우둘투둘하고 비탈진 길이 많았다. 여행 첫날처럼 그를 도랑에 내동댕이 칠 뻔했다. 동생은 자신의 몸뚱이를 자책하며 멋쩍게 웃었다. 그의 속을 알면서도 나는 웃지 못하고 그저 밭은 숨만 내쉬었다. 아직 길은 멀었다.

- 헉, 헉, 야, 이제는 얼마 남았냐?

- 이제 1킬로미터대 깨졌다, 800미터!

...

- 이제는?

- 이제 500미터야!

시야에 숙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온 욕 하나를 아주 시원하게 뱉어냈다. 어찌나 찰지게 했던지 남동생은 꼭 자기에게 하는 거 같다며 웃었다. 나는 말로만 손사래 쳤다.

- 아냐. 이 길바닥에 하는 거야.

숙소 앞에 겨우 다다르니 남자 직원이 있었다. 그가 우리를 거둬주었다. 나는 물을 연거푸 마신 후에 료칸 라운지 의자에 녹아내리다시피 앉았다.

라운지에서 바라본 정원. 이렇게 평화로울 줄이야.


다소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머지 가족을 만났다. 다들 더위와 피로에 찌든 표정이었다. 특히 아빠의 짜증 지수는 단연코 1등이었다. 식사다운 식사 없이, 30여 분이 넘는 시간 동안, 캐리어를 이끌고, 땡볕 위를 걸으셨으니.... 당신의 노동량 최고점을 달성한 셈이었다. 당신의 원기는 웰컴 티를 마셔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만사 귀찮은 표정으로 아무 데도 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좋아하시는 사진으로도 꾀어보았지만 아빠는 이미 방전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빠를 두고 지나쳐왔던 거리를 천천히 음미해 보기로 했다.

거리에는 달착지근한 것들로 가득했다. 주머니 사정과 뱃속 사정이 얄팍했으므로 우리는 검색을 통하여 선택과 집중을 실천했다. 그럼에도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다. 따뜻하고 보드라워 떠먹어야 하는 치즈케이크와 금상을 받아서 그것이 이름이 된 금상 크로켓은 입맛에 맞아 한 번이라도 더 먹고 싶었다. 반면에 딸기가 위에 얹힌 찹쌀떡과 당고는 그저 '경험'이라고만 기억하고 싶다. 왜냐고 묻는다면 혀가 닳을 정도로 달았다고 말하리.

반은 성공하고 반은 실패했던 간식 대모험.  당고 뒤로 깨알 세듯이 동전을 세고있는 여동생의 야무진 손가락이 보인다.

길의 끝에 긴린코 호수가 있었다. 그곳의 아침 물안개가 그렇게 예쁘단다. 노을 진 햇빛에 반사된 윤슬 또한 아름답단다. 하지만 가족의 남은 체력과 다음 날 아침 이동 거리를 생각하면 쨍한 오후의 호수에 만족해야 함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우리는 입을 모아 녹음이 짙푸른 호수의 얼굴을 보았으니 그걸로 됐다고 했다. 유후인에서 흘린 땀방울을 모두 말려줄 만큼의 청량한 산들바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도. 우리는 호수 변두리를 따라 걸으며 우리만의 즐거운 이야기를 덧씌웠다. 덤으로 아빠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도.

호수를 바라다보는 나의 아련한 등딱지. 초점이 나간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


호수 관광까지 마치고 무사히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아빠도 같이 다녔으면 얼마나 좋아란 말이 무섭게 엄마가 혀를 내두르시며 앞을 가리키셨다.

- 어머, 느그 아빠 맞냐? 귀신 아녀?

- 어디, 어디?

과연 저 멀리서 아빠가 뭐에 홀린 듯한 얼굴로 터덜터덜 걸어오고 계셨다. 뒤늦게나마 아빠가 마실을 감행하신 거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 우린 다 돌아서 이제 숙소 돌아갈 거야. 같이 가자.

- 그냥 돌아보고 올게.

- 잘 돌아올 수 있어?

아빠의 고집은 우리 가족 그 아무도 꺾지 못한다. 그러니 아까도 '나 홀로 숙소에'이지 않았는가. 엄마는 가시다 당신 배가 꺼질 때 먹으라며 아빠 몫으로 챙겨둔 크로켓을 손에 쥐여드렸다. 아빠는 남은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끝내지 못한 채, 우리를 지나치셨다. 우리가 남기고 온 아쉬움을 이렇게나마 달래주려는 듯이. 아빠의 뒷모습을 보았다. 진득이 아빠를 좀 기다려볼걸 하는 얕은 후회감이 몰려왔다.


그나저나 아빠, 잘 돌아올 수 있겠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서야 비로소 고요함을 찾았다. 이 거리에 아빠가 없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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