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작 일 년도 되지 않은 흰색 벨트 수련생에게 벌써 정체기가 찾아온 건가? 매일 같은 시간 땀을 흘리며 숨 가쁘게 몸을 움직이지만 뾰족하게 달라진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에 서둘다가 상대에게 틈을 내주고 말았다.
여기서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 사실은 내가 운동 신경이 둔하다는 것이다. 들인 시간과 수고에 비해 변화는 더디다. 그걸 알기에 남들보다 한번 더 해보려 하고 다른 관생들에게 묻고 배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비록 눈에 띄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매트 위의 시간을 즐긴다. 지금은 앞서려 서두를 때가 아니라 내 속도대로 움직여야 할 때다. 방향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언젠가는 능숙해질 것이다. 일 말고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련을 마치고 숨을 돌리는 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머리는 흐트러지고 땀에 젖은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띠와 도복은 삐뚤어지고 머리카락은 힘을 잃고 엉켜 붙었다. 헝클어지고 망가진 것도 모른 채 무언가에 몰두한 내 모습이 근사하고 멋져 보인다. 끈기 있게 한 방향으로 내달리는 모습에 자부심이 솟는다. 승리를 확신할 수 없더라도 상대방의 기세에 눌려 쩔쩔맨다 해도 목덜미와 옷깃과 바짓가랑이를 잡고 버틴다.
성실하게 체육관에서 땀 흘리는 수련생들, 차가운 매트에 시린 발을 쓰다듬으며 연습하는 수련생들, 그들의 꾸준한 걸음과 움직임을 보면 삶과 사람이 그저 무력하고 진부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희망을 발견한다. "체력이 좋은 게 아니라 그냥 하는 거예요" 대련을 앞두고 인사를 나누던 수련생, 발바닥에 스포츠 테이핑을 촘촘히 싸매면서 매일 수련하는 젊은 청년이 한 말이다. '그렇지, 체력이 좋은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따로있나, 나부터도 체력을 키우려 시작했는데 그냥 하면 되겠지 했던 마음이 식었구나' 매트 위에서 비루한 일상을 빛나게 하는 통찰을 만난다.
빳빳하고 까끌한 도복이 부들부들해지기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무슨 일이든지 반복하다보면 지루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 시간을 무던하게 통과해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단계에 이른다. 미련하고 우직한 반복을 거쳐야 부드러워진다. 낯설고 어색해서 잔뜩 힘이 들어간 몸도 느긋해진다. 혼자 수저를 쓰려는 아이는 수만 번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어떤 결심이나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될때까지 그냥 한다. 능숙함과 노련함은 그냥 할 수 있는 뒷심에서 나온다.
출처: pintere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