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새로운 출발은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밝은 빛과 공기를 불어넣는 것처럼 상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곽집사가 소록도에서 돌아온 이후로 방개와 기환 그리고 엉가와 덕구의 조카들 그리고 철희까지도 방개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리만치 행복한 날들이 많아졌다.
첫째는 곽집사가 새벽이면 교회를 갔다 오면서 시장에서 사 온 싱싱한 해물이나 야채로 만든 반찬을 밥상 가득 차려서 상을 내오면 가지나물 하나도 인류요리사 뺨칠 만큼 맛이 있었다. 그녀는 들판에 널린 냉이를 뜯어다가 된장을 끓여도 임금님 밥상이 부럽지 않을 만큼의 손맛이 기가 막혔다. 기환이도 이제는 서울에 있는 아내의 밥상에서는 맛보지 못한 이 기가 막힌 밥상 때문에 서울에를 자주 가질 못할 정도로 방개네에서 밥을 먹는 것이 좋아서 아내에게 가끔은 서울에 오지 않는다고 닦달을 당할 지경이었다.
곽집사의 음식솜씨에 반한 기환도 곽집사가 온양역 앞에 엉가네 분식점을 내는 것을 돕기로 했다. 영화에 성공한 기환이 기부금을 내주고 방개도 두 손을 걷고 분식점 내부 수리를 도왔다. 철희가 그린 고호의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을 식당의 중앙에 턱 하니 걸어 놓으니 엉가네 분식점은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며 손님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국숫집을 차리려 했던 계획이 바뀐 것은 기환의 아이디어였다. 청소년들을 자주 대하려면 그리고 힘든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려면 아무래도 김밥이나 떡볶이, 돈가스를 팔면 더 좋을 것 같다고 해서 메뉴도 바꾸고 분식점을 내기로 한 것이었던 것인데, 역시 기환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방개네 집으로 오고 갈 데 없는 아이들이 모여들자, 어디서 소식을 듣고 왔는지 별의별 사연을 가득 실은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환은 주로 아이들의 상담과 학교 관련 된 일을 맡아서 해주었고, 방개는 아이들의 빨래와 청소를 도왔고, 곽집사는 주로 아이들의 밥과 반찬과 책임져주었다. 어느 날 엉가가 집 앞에 예쁘게 간판을 걸어 두자고 이름을 지어왔다.
"방개아저씨와 천사들의 집" 이란 간판을 나무로 잘 다듬어서 나무 현판을 걸어두자 정말 그 집에는 날마다 이상할 정로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별의별 물건을 다 갔다 놓기 시작했다. 버려진 아이들에게 책상과 책을 선물하는 사람들 심지어 비싼 피아노나 운동기구를 가져다 놓는 사람들부터 두부나 감자, 고구마, 쌀등을 갔다가 놓는 사람 든 부지기 수였다. 방개와 기환은 놀랬다. 신혼부부들이 주로 온천 관광을 다니는 관광 도시 온양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는 참 따스했던 것이 놀라웠던 것이었다.
"여긴 온양 온천물이 뜨뜻해서 사람들도 대체로 착하구 맘씨두 따시구 그런가봐유."
방개가 기분이 좋아서 한마디를 하자 곽집사가 방개의 얼굴을 환히 쳐다보면서 거들었다.
"방개아저씨가 사니까, 온양 사람들이 따순건 아니구유."
"그럴리가 있나유, 일류요리사 곽집사님 덕에 원님도 나팔분다구 저두 덕을 보는거지유."
방개와 곽집사가 서로 신이 나서 서로를 추켜세우며 웃음보따리는 푸는 걸 보자 기환도 신바람이 나는 건 사실이었다. 기환은 이제 온양에서는 유명인사였기에 그가 지나 만 가도 사람들은 그에게 인사를 하거나 그가 온양에 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좋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기환은 소탈하게 사는 편이라서 여전히 음봉면의 시골집을 작업실로 쓰고 있었고, 방개네에서 식사를 하거나 엉가네 분식점에서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그러나 기환이 만든 이순신 영화 관련한 일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기환은 늘 소설을 쓰거나 대본을 쓰는 일이 바쁘기도 하고 가끔씩 대학에 초청 강의를 나가거나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온양관광호텔에서 기자나 유명인들을 만나느라 바쁜 때도 많았다.
방개는 "방개아저씨와 천사들의 집"에 아이들이 점점 불어나서 이십여 명이 넘게 살자 더 이상 그 집에서 그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살기가 힘들어져 엉가와 상의를 했다. 집을 이층으로 한 층을 더 올려서 지을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엉가는 언제나 방개를 아버지라 부르며 상냥하게 말하는 편이라서 방개는 엉가가 정말 친딸 같고 그 아이만 보면 가슴이 뿌듯한 지경이었다.
"아버지가 하시고 싶은데로 모든 걸 다 마음대로 하셔도 돼요, 저는 아버지가 저 재산 하나도 안 남겨 주셔도 좋은 일만 하시문 되거든요. 그리고 저는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갈게요. 지금 유학 가려고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패션 디자이너로 성공하려면 아무래도 미국에 가서 공부를 좀 하고 싶어서요. 몇 년 공부하고 와서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제 개인 브랜드 회사 차려보고 싶어요. 아버지 제 브랜드 회사 이름 나중에 엄마 이름 따서 "유니 패션"으로 해보고 싶어요. 엄마가 저에게는 너무 좋은 재능을 물려주신 것 같거든요. 전 옷공부하는 거 너무 재미있고, 제 적성에 너무 잘 맞아요. 엄마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아마 저 보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로 자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엄마 재능 생각하면. 지금도 온양에 오면 가끔씩 아줌마들이 옷 입고 다니는 거 보면 저는 엄마가 만든 옷인지 금방 알아보거든요. 엄마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들은 참 멋쟁이처럼 보이거든요. "
"그럼, 네 엄마는 내가 생각해도 너무 아까운 여자지. 아프지만 않았어두 지금 얼마나 우리가 행복하게 살건냐, 가슴이 저린다 저려."
방개는 새삼 엉가엄마에 대한 추억과 병으로 죽은 그녀 생각에 가슴이 저릿했다. 그러나 또 누가 엉가엄마 윤희처럼 죽음의 끝에서 그렇게 아름답게 천국에 입성한 사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다. 소록도에서 돌아온 젊은 과부 곽집사가 살아서 천사 같은 삶을 산다면 엉가엄마는 많은 회한과 아픔 속에서 죽음의 골짜기에서 천사처럼 살다 간 여인이 아닐까 싶었다. 방개는 순자의 고통스럽던 삶에 끝이 늘 가슴에 멍이 들 정도로 아팠지만 이제는 그 아픔도 서서히 사라져서 계절마다 찾아가던 순자의 무덤에도 이제는 잘 가지를 않았다.
산자는 산자의 몫을 해야 했고, 죽은 자는 언제나 돌아올 수 없는 법이란 것을 그도 그리움의 무게나 그녀의 자살로 인한 격정적이던 고통도 점점 폭풍 같던 바다에 가라앉은 듯이 초연해진 것이었다.
방개가 집을 이층으로 올려 짓는 데는 일 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앞집에 땅을 조금 더 사서 텃밭과 꽃밭을 넓히고 이층에는 방을 다섯 개나 더 지어 놓고 보니 정말 집이 대궐처럼 커졌다. 스무 명이 넘는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위아래층에 뛰어다니고 어린애서부터 고등학교 재수생까지 어느 아이는 대학에 가서도 "방개아저씨와 천사들의 집"에서 나가지를 않고 살고 있었던 터라 집은 언제나 북새통이었다.
곽집사는 엉가네 분식점 사장으로도 바빴지만, 집에 오면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의 반찬을 해대느라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루 지를 못했지만 그녀도 자기 자식이 아닌 아이들을 밥과 반찬을 하면서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소록도에서의 삶은 회개와 헌신이었다면 온양에 와서 살아가는 삶은 그녀에게는 넓은 인생의 바다에서 사랑이 파도를 타고 넘실거리는 것처럼 그리도 기쁠 수가 없었다.
곽집사는 가끔씩 밤새도록 김밥을 말고 떡볶이를 하고 돈가스를 튀겨서 집에 있는 아이들을 깨워서 대천바다에 장항선 기차를 타고 놀러 가는 걸 좋아했다. 그걸 보고 엉가는 한 번씩 서울에서 내려올 때마다 "방개아저씨와 천사들의 단체 소풍"이라고 천으로 이쁘게 깃발을 만들어서 바닷가 모래사장에 꼽아 두고 놀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파도가 휘몰아치는 대천 바다에서나 태안의 바다에서 때로는 서천의 깃뻘에서 사랑에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은 엉가를 사랑하는 철희였다. 철희는 온양에 와서부터 엉가를 좋아하고 그런 엉가에 관심을 끌기 위해 불량한 친구들과도 놀아보고 오토바이도 훔쳐보고 별의별 짓을 다 했지만, 그래도 다시 그림을 그리고 서울에 있는 최고의 대학에 미대에 합격도 했지만, 덕구 조카를 좋아하는 엉가의 마음을 쉽게 얻지를 못했다. 그런 철희는 언제나 반항아였고, 방황하는 대학생이었고, 고독한 화가지망생이었다. 그러나 엉가 역시 철희의 마음은 잘 알지만,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덕구의 큰 조카 민기에게 마음이 더 깊으면 깊었지 쉽게 철희에게 그 마음이 옮겨가지지를 않는 것은 새가 나무를 좋아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었다.
엉가 역시 유학문제를 놓고 민기와 함께 갈 수 있을지가 제일 고민거리였다. 혼자 갔다 왔을 때 그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고, 같이 가자니 돈이 문제였다. 엉가는 자신의 유학비는 온양에 따로 있던 집 한 채를 팔기로 아버지인 방개와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지만, 민기의 유학비는 덕구 아저씨가 대주지 않으면 안 되는데 덕구 아저씨가 부자이긴 하지만 조카의 유학비까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덕구 아저씨도 자식들이 넷이었고, 조카들 결혼이다 뭐다 해서 그동안 어지간히 뒷바라지를 하느라 힘이 들어서 그도 그 많은 재산이 그다지 크게 많이 남아 있지는 않았던 것인데, 거기다가 얼마 전에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서 큰 재산에 손실을 봤다고 하니 유학비는 힘이 들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엉가는 혼자서라도 유학을 떠나기로 했다. 자신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란 생각이 들어서 그녀는 스스로가 가야 할 길을 먼저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엉가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철희와 민기는 둘 다 군대를 입대했다. 철희는 엉가의 마음이 누구에게 더 큰 사랑의 파도를 타고 넘어올지를 기다리는 수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철희는 자신이 큰 실수를 하고 다시 엉가네 집 대문에 걸린 자신을 기다려주던 방개아저씨와 기환아저씨 그리고 엉가와 덕구조카들의 글이 가슴이 박혀서 자신이 살아가는데 별처럼 빛을 비추고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엉가를 가볍게 대하고 사귈 수는 없었다.
이제는 철희도 서서히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자기 자신을 믿으며 엉가의 사랑이 누굴 향해있던 그것은 신께 맡길 일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엉가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겨울에 김포비행장에서 미국행 비행기에 트랙을 밟는 순간, 철희는 자신이 다시 한번 멋진 화가가 되어서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 다짐을 할 뿐이었다. 그리고 철희는 봄에 군대를 가고 민기는 여름에 군대를 갔다. 그러나 철희에게 너무나 아픈 군대 생활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예상한 사람은 방개아저씨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