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환의 영화가 대박이 나고, 방개의 시집도 베스트셀러에 단숨에 올라섰다. 둘은 운수대통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에 대해서 서로 무던히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연발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누구의 눈에 띄어서 가벼이 보이는 그런 행동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이 승승장구하는 소식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가서 기환은 금세 유명인사가 되었고, 방개도 가끔씩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온양 시내에서도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유명세 때문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 서천에서 방개에게 까만 솥단지를 이고 처음 방개가 살던 허름한 집에 나타났던 과부였다.
숨겨진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소록도로 떠났던 젊은 과부가 기환과 방개를 찾아서 온양엘 온 것이었다. 기환은 영화가 개봉되어서 유명한 감독이 되었지만, 음봉면에 있는 작업실에서 다음 작품을 위해서 계속 머물러 있었던 터라 소록도로 갔던 젊은 과부의 출현이 그도 반갑기만 했다.
"아니, 아주머니 너무 변하셨군요. 이제는 다른 분 같아요. 예전 모습은 전혀 없으시네요."
"네, 제가 죄를 속죄하고 나니까 이렇게 사는 게 기쁘고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기환도 방개도 젊은 과부의 옛 모습이 너무 변해서 정말 다른 여자가 자기들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얼굴이 이상할 정도로 빛이 났는데, 해 같이 빛이 난다는 말이 그녀에게 어울릴 정도로 사람의 얼굴에서 저리도 아름다운 빛이 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이고, 하늘에서 떨어진 천사 같이 얼굴이 어째 그리 훤하고 빛난데유, 눈이 부셔유."
방개는 진심을 말하면서도 어쩐지 자신의 변화하지 못한 모습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서천 교회에 대한민국에서 최고 유명하다는 부흥강사가 오셔서 설교를 할 때 과부는 회개를 했지만, 자기는 제대로 된 회개를 하지 못한 것 같고, 교회는 계속 다니긴 해도 술도 아직 다 못 끊고, 때로는 하나님을 믿는 건지 제대로 된 확신이 없는 것처럼 믿음도 없을 때가 있는 방개로써는 과부의 얼굴에서 나는 빛이 어쩐지 자기와는 아주 먼 거리에 사람처럼 눈이 부신 느낌이었다.
"아휴, 방개씨 무슨 그런 말씀을 하셔요, 지는 아직도 죄인구먼유. 다만 속죄의 길에서 소록도에 사람들과 잠시 살았을 뿐이지유, 전 거듭나지 않았어요. 아직도. 그런데 이제는 소록도에서 제가 했던 봉사일도 끝나고 해서 저도 기환씨와 방개씨가 있는 온양에서 같이 살아보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그 대신 집은 제가 아주 작은 집을 하나 얻어서 살려고 미리 얻어 놓았어요. 실은."
기환과 방개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부가 온양에 집을 벌써 얻었다니 그건 소록도를 떠났단 말보다도 더 놀라운 일이었다.
"아휴, 정말 너무 반가운 일이네요. 아주머니가 이렇게 온양에서 사신다고 하니요."
"참 이 사람이 사람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구먼, 이제 보니까 말여."
기환과 방개가 과부가 온양에서 산다는 말에 두 손을 번쩍 들고 축하를 해주었다. 소록도에서 분명 과부는 몇 년 동안 그곳에 환자들을 위해 그녀의 손이 마르고 닳도록 헌신과 봉사를 했을 여자다. 그런 사람이 자신들의 주변에 다시 오게 된 것에 대해 둘은 무척이나 반가웠던 것이다.
"그런데, 제가 집을 하나 마련한 이유는 온양에서 집을 나와서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좀 데리고 살고 싶어서 마련한 거예요. 가출한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버렸는데 고아원에는 가지 않은 아이들도 좋구요, 친척이 데리고 있기 힘들어서 오갈 데가 없는 아이들..... 뭐 그런 아이들이 있으면 제가 평생 내 새끼처럼 데리고 살고 싶어서 그동안 하나님이 기적처럼 주신 돈이 있어서 그걸로 전제집을 하나 마련했어요. 그러니 제가 그런 일 하는데 두 분이서 이래 저래 저 좀 도와주셔야 해유."
젊은 과부는 자신이 죽인 두 번째 남편의 아들에 대한 속죄가 남아있다고 생각을 해서 버려진 아이들을 데리고 살고 싶었다. 그녀는 음식을 만드는 데는 남다른 솜씨가 있었기에 낮에는 식당을 다니면서 돈을 벌 계획까지 세웠던 것이다.
기환과 방개가 가슴이 설레는 감동이 느껴져 둘 다 할 말을 잃은 듯이 가만히 방바닥을 보았다. 방개는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혼자 있기에는 너무 크기에 젊은 과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그 전셋집이 어떻게 생겼나 당장 가봅시다. 어디에다 얻었는데유."
"네 온양 장 근처에 얻었어유. 아무래도 번화한 곳에 있어야 식당일이 편할 것 같아서유."
"그럼 얘들을 데리고 사는거는 우리 집에서 하구유, 그 전셋집 다시 빼고 온양역 앞에다가 국숫집을 하나 내셔유, 내가 국수 나르는건 다 해줄테니께유."
방개의 제안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젊은 과부는 방개의 성품을 알고 그에 모든 것을 잘 알기에 그가 어떤 의도로 자기에게 집을 내주는지를 잘 알았다. 기환도 대찬성을 했다. 비행청소년들을 데리고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방개와 과부가 함께 한다면 그건 그래도 잘 될 일이란 것을 그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젊은 과부의 본명은 곽영옥이었다. 과부는 자신이 성씨 뒤에 집사라는 교회의 직분을 꼭 붙여달라고 해서 방개와 기환은 그날부터 그녀를 부를 때 곽집사라고 불렀다. 젊은 과부도 이제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어서 인지 해 같이 빛이 나는 그 광채 뒤에 이제는 중년 여인의 모습이 너그러운 이웃집에 아주머니 같은 모습도 보여서 기환은 그녀가 그렇게 편안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고단한 아이들이 이 여인의 품에 안겨서 많이 울고 웃으리란 느낌이 기환에게는 가슴 깊이 전달되었던 것이다. 방개아저씨가 엉가를 잘 키워서 대학을 보냈고, 덕구의 고아 조카들을 키워냈고, 철희를 키워냈듯이 곽집사도 이제는 어디선가 별을 보며 달을 보며 눈물을 짓는 아이들을 품어 안을 수 있는 사랑이 깃든 여인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밤 기환은 자신이 서울이 아닌 온양에서 다시 학교를 세우고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 밤이었다. 세 사람은 모처럼 만에 곽집사 만들어 준 밥상을 받았다. 정말 가히 그녀의 음식 솜씨는 어느 일류요리사를 뺨치는 실력이었다. 둘은 그녀가 차려준 우럭매운탕에 회덮밥을 먹으며 세상에 이토록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를 생각하며 온양에 이사 온 곽집사를 목청껏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기환과 방개가 잠든 깊은 밤에 곽집사는 자신이 과연 의붓아들을 죽인 죄인으로 이 속죄의 길을 다시 또 잘 갈 수 있을지 하나님께 겸허히 무릎을 꿇고 그 밤이 다 새도록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항상 두렵습니다. 그러나 내 죄를 용서하신 주님께 감사함으로 새 길을 다시 가고 싶습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이 든든한 두 사람을 내게 동역자로 붙여 주신 은혜에 다시 한번 주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주여, 이 길을 도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