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
엉가와 덕구의 큰 조카, 그리고 철희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붙고, 기환이 '군함 거북선' 영화를 다 찍고 마지막 편집을 마칠 즈음 방개는 이순신에 대한 연작시를 다 마치고 첫 시집을 냈다.
방개는 기환과 둘이서 조촐하게 현충사 뒷산에 돗자리를 깔고 마주 앉았다. 그들 앞에는 새우깡 한 봉지와 마른오징어 몇 마리가 있었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산 막걸리가 한 병 있었다. 기환과 방개는 막걸리 한잔으로 두 사람의 조촐한 출판기념회 겸 영화 개봉에 대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그들은 힘든 굴곡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누구보다 방개는 자신의 나이가 이제는 녹녹히 않음을 깨달았다. 엉가 엄마의 포대기에 잠들었던 엉가가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으니 그의 나이도 이제는 오십이 훨씬 넘은 것이다. 그리고 대학생이던 기환이 이제 사십 줄에 서 있으니 세월은 참으로 무심하게 흘러만 갔다.
방개는 소년병에서 떠돌이로 그리고 병자로 살던 자신이 이제 시집 한 권을 낸 시인이 된 것도 뿌듯했지만, 무엇보다 자살을 시도했던 기환이 버젓이 살아나서 신춘문예에 당선하여 소설가가 되고, 장가를 가고 학교 이사장을 하다가 영화감독이 되어서 이순신에 관한 영화를 마지막 씬까지 잘 찍어 낸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엉가와 덕구 조카 그리고 철희가 대학생이 된 것이 그로써는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듯이 뿌듯해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더구나 부모도 제대로 없는 아이들이 대학생이 된 것은 월척을 한 어부처럼 감격이 아닐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어도 말이 통하는 사이로 이제는 굳이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이였다. 세상이 시끄럽다 한들 둘은 산속에서 언제나 고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아무리 유명해진다 해도 두 사람의 사이는 서로를 위한 배려와 절제가 숨어 있기에 방개는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던 덕구와는 점점 멀어지는 느낌이 좀 있었지만, 기환이와는 나이가 들 수록 더 가까워졌다.
"축배를 한 잔 들어야지. 자, 그동안 영화 찍느라 고생했네."
방개가 먼저 기환의 영화 개봉을 축하해 주었다.
"네, 아저씨도 시집 내시느라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방개는 그 자리에 덕구가 없는 것이 영 아쉽고 불편은 했지만, 덕구가 큰 한정식집에서 방개와 기환을 부르고 아이들을 다 부르고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서 방개와 기환의 축하의 자리를 마련해 준다고 야단이었지만, 두 사람은 그에 호의와 열성을 조용히 사양을 했다.
그 이유는 최근에 덕구의 모습에는 절제되지 않고 차분하지 않은 모습이 자주 보여서 둘은 은근히 덕구를 걱정을 하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에는 산벚꽃과 하얀 싸리꽃이 서로 뽐을 내듯이 골짜기에 마주 보고 피어 있었다. 방개는 덕구가 매일 천안 부동산에서 화투를 치고, 농사일보다는 천안에서 화투 놀이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그가 농사꾼으로서 절제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속으로 걱정을 했다.
그래서 덕구가 시집을 낸 방개에게 잔치를 차려준다는 것도 사양을 한 것이었다.
"덕구 아저씨는 요즘도 매일 천안에 부동산에 나가시나 봐요."
"그렇지 뭐, 그 사람이야 거길 하루도 안 가면 안 되는 부동산 사장이 됐지 뭐, 그리고 화투판이 맨날 벌어지니까 그 재미에도 가는 거지, 그 사람이 화투를 좋아해. 젊어서부터."
"그것도 놀음인데, 덕구 아저씨도 이제는 젊을 때 하고 다르니까, 자신을 다스리셔야 그 많은 재산을 잘 붙잡고 성공한 인생의 말미를 장식하실 텐데......... 쪼금 걱정스럽네요. 농사꾼이면 천상 농사꾼으로 인생 마무리 하시는 게 좋으실 텐데."
"그래도 그 사람은 특출 난 사람이여, 머리도 뛰어나게 좋쿠, 노력도 무진장 하구, 사람 돕는 데는 일등이니까 하나님이 복두 많이 준 것 같아. 동네 어려운 사람네 쌀가마니 몰래 갔다 주는 집은 그 집 밖에 없으니까 내가 알기루는."
"그러게요, 사람은 진국이신데, 감정에 기복이 좀 있으신가 봐요. 그러니까 천안에 가면 또 화투꾼들이 끌고 다니는 데로 다니시고, 동네에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이시고 허허허. 보통 재주가 아니시네요, 그 아저씨."
"하하하 그런가,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런 모습인가. 강도 만난 이웃은 다 돕는데, 화투를 좋아하고 돈을 좋아한다. 하하하. 자네 말을 들으니 덕구가 하나님이 쓰시는 멋쟁이구먼. 절제는 부족해도 말여."
둘은 덕구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와 감동이 있지만, 최근의 그에 모습에 좀 아쉬움이 있어서 서로 터놓고 농담반 진담을 했던 것이다. 서울에서 인류대학에 법학과를 나온 기환과 한국전쟁 전에 중학교에 다니며 그래도 영어라도 배운 방개에 비해서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덕구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덕구를 더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방개는 덕구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그에 절제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충고를 가끔씩은 조심스레 건네며 진실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저씨 저는 절제가 부족한 사람이라면 일에 대해서는 사양하는 편입니다. 그런 사람과 함께 일을 하다가는 언젠가는 큰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영화배우들 캐스팅할 때도 스캔들 잘 일으키지 않고, 몇 년 동안 자기 관리 잘 한 배우들을 주인공으로 뽑은 겁니다. 큰 일에는 덕도 중요하지만, 그 큰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철저한 계획과 관리가 더 중요하잖아요. 덕구 아저씨도 큰 재산을 벌었다면 그 큰 재산을 얼마나 끝까지 잘 관리하느냐는 그 재산이 생긴 과정에 복이나 운보다 더 중요한 일이지요. 저는 법학에서 배운 것은 어쩌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어요. 법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절제나 관용, 도덕, 그리고 인격을 인생에서 잘 다듬어야 내가 사회에서 얼마나 유용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운 것 같거든요. 법을 지키려면 내가 참을 때 참아야 하고, 이득과 실리를 너무 따지지 말고, 자기 분수에 맞는 삶, 그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것이 주님 안에서 배운 내려놓는 연습일 수도 있지요.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숙제 같아요 그래서."
"암, 그렇지, 큰 일에는 큰걸 내려놓아야 하고, 작은 일에는 작은 걸 내려놓을 줄 알아야, 다음을 보는 거지. 미래에 시선을 둔 사람이라면 큰 시야가 있어야 하는가 그래서. 나 좀 봐봐. 젊어서 앞일을 내다볼 줄 몰라서 인생이 이렇게 작고 보잘것도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거잖아. "
"아휴 참, 아저씨가 어때서요,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에 시인이신데, 이순신 연작시를 쓰실 정도면 멋있는 시인이시죠. 그동안 저도 아저씨가 이순신 연작시를 쓰시니까, 이순신 영화도 더 신이 나서 만든 것 같거든요.
참 우리가 이렇게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콤비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었겠어요. 서천에서는 꿈도 꿔본 적이 없는 일이 온양에서 이루어졌네요, 그러보니."
"자, 그럼 기념으로 온양 부라보, 현충사 부라보, 이순신 장군 부라보 한번 해 보세. 하하하."
둘은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산이 어둑해지도록 둘은 산에서 지난 이야기에 꽃을 피워내고, 향기를 발산했다. 그러나 두 사람 역시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고민과 걱정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방개는 자신을 아무도 알아보는 이가 없는 떠돌이가 되어서 살아도 된다는 생각에 언젠가는 온양을 떠나서 자신보다 더 남루한 이들이 사는 곳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 엉가가 대학을 갔으니 몇 년만 더 그 아이들 곁에 있어주면 그때는 자신이 더 낮고 초라한 사람들을 다시 돌볼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늘 자신의 본래 모습이었던 가난하고 별 볼 일 없는 떠돌이로 살았던 그 젊은 날에 모습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이 혼자 사는 길일지 아니면 여럿이 함께 사는 길 일지는 그도 모르지만, 방개는 어디서나 가난하고 볼품없는 이들과 함께 하길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기환이 가야 하는 길은 달랐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이름을 내 걸만한 영화감독으로 다시 재탄생한 것이다. 그의 영화 '군함 거북선'은 기환을 영화감독으로 세계적 거장으로 만들어 낼 것을 방개는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기환이 가진 모든 삶에서의 큰 시야와 절제가 가진 미덕 때문이라고 방개는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