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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an 01. 2024

그놈의 밥이 뭐라고

※ 내담자분에게 동의를 구하고 작성했습니다.


1. 중년의 부부가 상담실에 오셔서 한 목소리로 얘기하셨습니다.

“저 인간이 나를 무시해요.”

어떤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시게 되었는지 여쭤봤습니다.


2. 두 분의 이야기는 이러했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했습니다. 부모 노릇도 처음이었기에 서툴고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버거워하는 게 속상했고, 저녁이라도 해결하고 집에 들어가면 아내의 수고를 덜어줄 것 같았습니다.


3. 아내는 회사에서 고생하고 귀가하는 남편이 안쓰러웠습니다.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남편의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남편은 앞으로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을 테니 저녁 준비는 안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서운한 감정이 들었지만 남편에게 저녁을 챙겨주고 싶어 남편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정성껏 준비했습니다.


4. 남편은 저녁을 준비하지 말라는 얘기를 듣지 않는 아내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내가 싫으니 내가 차려준 밥도 먹기 싫은가 보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많이 상한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첫 아이는 대학생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남편은 퇴근길에 저녁을 먹고 귀가한다고 했습니다.


5. 부부는 남편이 왜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오게 되었는지, 아내는 왜 저녁을 준비했는지 서로의 생각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놈의 밥이 뭐라고 한탄도 하셨지만, 서로의 얘기를 듣는 내내 부부의 눈에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6. “내가 저녁을 먹고 들어와서 당신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 “가족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당신을 위해 저녁이라도 챙겨주고 싶어”라고 진작에 얘기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어떤 면에서 보면 우리가 상대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은 “잘 모른다는 것"뿐인 것 같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설명도 해야 하고 잘 들어야 합니다. 이 부부가 “그놈의 밥”에 담긴 서로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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