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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an 03. 2024

석기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최근에 수능이 치러졌고, 벌써 주위에서 대학 합격 또는 재수, 삼수 등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열심히 했건, 그러지 못했건, 원하는 결과를 얻었건, 못 얻었건 간에 인생의 많은 시간을 입시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수험생들에게 정말 수고했단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2. 한편으로 입시에 인생의 많은 비용과 시간, 노력을 들이는데 무엇을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앞으로 되었으면 하는 직업들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직업들은 다양한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한 위치에 놓이길 기대합니다. 돈이나 성공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인생에 목적이 돈이나 성공을 통해 ‘남들보다 많은 것’을 누리는 삶이라면 과한 표현일 수 있지만 석기시대에 사냥 능력이 뛰어난 족장이 좋은 가죽옷, 넓은 동굴, 많은 부인을 거느리는 삶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인정이 있어야 자신의 존재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낮은 자존감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종종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나오는 갑질 기사들처럼 무시당할 것에 대한 불안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취미생활조차 그 자체가 즐겁고 좋아서라기보다 자부심이나 인정을 받기 위해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 ‘남들보다 나은 삶’을 추구한 들 만족할 날이 올까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엔 나보다 더 잘나고,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늘 어딘가에 있을 테고, 설사 지구에서 가장 ‘나은 삶’을 산다고 한들 ‘나은 삶’을 유지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들 것 같은데 말입니다.   

  

4. ‘나은 삶’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상실하게 되는 것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으로 생각이 됩니다. 입시에 실패해서, 일자리를 잃어서, 주식으로 돈을 날려서 등등 상실하게 된 것들과 자신을 동일시했기 때문에 삶의 의미도 상실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실들이 가볍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말씀은 아니지만 왜 그러한 것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만큼 삶의 중요한 의미가 되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5. 교육제도를 탓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입시 준비에는 온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데 왜 공부를 해야 하고, 왜 일을 해야 하며, 직업 선택에 있어 그 직업에 필요한 고유한 가치나 의미는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입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인생에 낙오자처럼, 입시에 성공한들 또 취업이라는 전쟁이 기다리고, 취업한들 또 다른 경쟁이 계속 펼쳐질 텐데 말입니다. 설사 그러한 반복된 경쟁에서 살아남은들 어떤 성취나 보람,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 싶습니다. 기껏해야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정도나 들 것 같은데 말입니다. 

    

6. 저희 아이가 언젠가 저에게 ‘아빠가 오은영 선생님처럼 유명했으면 좋겠어.’ 하길래 왜 그런지 물어봤더니 ‘그럼 돈도 많이 벌고 내가 갖고 싶은 장난감 다 사줄 수 있잖아.’ 하길래 웃으며 넘긴 적이 있습니다. 저 역시 직업적으로 남들에게 존경받고 부러워할만한 위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때때로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가 오은영 선생님보다 유명해지는 방법은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켜 뉴스에 나오는 방법 외엔 없는 듯합니다. 중2병 걸렸을 때 저라면 시도해 볼 법한 방법일 수도 있겠지만 유명해지기 위해 애쓰기보다 내 주어진 삶에 만족하며 사는 게 더 이루기 쉬운 것 같습니다. 

‘난 능력도 없고 부족해’라는 자기 비하적인 태도로 늘 더 나은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이윤주 작가의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그래, 사람이 다방면에 무능하기도 쉽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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