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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래도 Jan 06. 2024

감정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요

1. “감정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요.”

쓰레기통에는 좋은 것이나 아끼는 걸 버리진 않을 테니 상대의 좋지 않은 감정을 일방적으로 받아내는 사람이 된 것 같다는 표현 같습니다.


2. 감정쓰레기를 일방적으로 버리는 분들은 더럽거나 불편하게 생각되는 것들을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불편함에서 벗어나려 합니다.본인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이 힘들거나 아쉬울 때만 연락하거나 만남을 갖자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감정교류로 포장된 일방적인 토로 가능성도 있는데 상대가 불편해하는 것 같으면 “난 내가 힘든 걸 너와 나누고 싶은 것뿐이야”라는 말로 포장할 수도 있습니다.


3. 감정쓰레기를 일방적으로 버리는 분들은 본인이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해오면서 그런 소통 방식을 자신도 모르게 체득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해왔고, 본인도 살기 위해서 어딘가에 그걸 쏟아내는 경우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것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감정적 동요가 일어나게 되면 자신의 이야기를 배설하는 방식으로 푸는 것 같습니다. 이는 스스로 내 불편한 감정을 해결 못 할 거야라는 자기 인식이며 결국 의존성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의존적인 사람들은 문제를 늘어놓기만 하는데,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 왜 이렇게 불편한 감정이 드는지 생각하기보다 누군가 자신을 불편함에서 건져 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의존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의존성이 심하거나 너무 약한 것이 문제입니다.


4. 쓰레기통 입장이 되는 분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손절하면 간단한 것을 그렇게까지 하면서 관계를 유지할까요?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장 과정에서 기초적인 신뢰를 쌓지 못한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누르면서까지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하려 할 수 있습니다. 거부에 대한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거부에 대한 두려움 뒤에는 자신이 상대에게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자기 비하, 열등감이 있습니다.


5.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지나치게 거절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내가 애쓰면 상대가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최소한 좋아하진 않더라도 애쓰면 버림받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버림받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고 손절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거절 못하는 분들이 이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유독 큰 사람들은 종종 버림받는 비참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미리 상대방을 밀어내 버리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버리기 전에 내가 먼저 밀어내서 버림받는 상황을 피하기도 합니다.


6. 쓰레기통 입장을 자처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구원자 역할을 하려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은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관계 맺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겐 본인의 역할이 필요 없기 때문에 존재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자 역할 하는 분들은 행동으로만 보면 매우 이타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자기중심적입니다. 이타적 행동이 선의가 아닌 자신의 불안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7. 건강한 관계는 서로가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입니다. 한 사람만이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은 이용당하거나 착취당한다면 건강한 관계라고 할 수 없겠지요. 저 역시 편하게 동등한(?) 관계에서 소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 직업 특성상 대부분 자기 얘기를 들어주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쓰레기통이 되지 않기 위해선 내 한계와 경계를 잘 세우는 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한계와 경계를 잘 세우는 일은 결국 내가 어느 정도까지 선의를 갖고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지, 없는지 내 상태에 대한 분리수거를 잘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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