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교 여학생을 상담실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옷차림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여름이라 하더라도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합니다. 상담실에서는 보통 마주 보고 앉는데 의자를 제 옆으로 가져와 앉더니 턱을 괴고 저를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닙니까.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침착하게(?) 옆으로 온 이유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해맑게 웃으며 ‘선생님, 여자친구 있으세요?’ 이번에도 당황하긴 했지만 다시 침착하게(?) ‘그게 왜 궁금하니?’ 물어봤습니다.
2. 제가 마주 보고 앉아 얘기하는 게 좋겠다 하니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옮기더니 상담시간 내내 성적인 느낌을 주는 행동, 질문들을 했습니다. 첫 시간 상담이 끝나고 쟤는 굳이 상담에 와서 왜 저런 행동이나 말을 할까 고민이 들었습니다.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었던 거라면 굳이 상담실에 올 이유가 없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도, 주로 남자들과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맺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3. 몇 번의 상담시간 내내 비슷한 태도를 보였고, 상담이 나침반 없이 표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어머님이 상담을 제안하셨다는 생각이 떠올라 부모님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아버지에 대해서는 전혀 하지 않아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에 대해 물어봤는데 아버지 얘기는 전혀 안 하네?’ 물어보니 해맑던 표정이 굳는 게 아닙니까. 그래서 아버지와 뭔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물어볼 때마다 말을 돌리거나 상담실 밖에서 만나주면 하겠다 해서, 그렇게는 어려우니 얘기하고 싶을 때 얘기해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제 답변이 실망스러웠는지 온갖 짜증도 내고, 저에 대해 비난 섞인 말들도 했습니다. 짜증이나 비난 섞인 말들이 불쾌하기보다 어린아이가 투정 부리는 느낌이 들어 왜 이런 느낌이 들까 고민하던 찰나에 갑자기 ‘오늘은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할게요.’ 하면서 들려준 얘기는 이러했습니다.
4. 아버지는 세상 누구보다 따뜻하고 좋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 때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큰 충격이었고, 어머니께서는 생계를 돌보기 위해 일을 시작하시면서 내담자는 아버지 죽음에 대해 애도할 기회도, 상황도 되지 않았기에 가슴에 묻어 두고 살아온 것입니다. 어머니 역시 남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힘드셨지만 우선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인해 슬퍼하는 시간을 갖는 건 사치였고 딸이 어떤지 살필 여유가 없으셨습니다.
5.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듣다 보니 저에 대해 짜증내거나 비난 섞인 말들, 성적인 표현들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 남성들에게 그런 식으로 어필함으로써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가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가장 쉽게 친밀한 관계를 맺는 방법이 성적인 표현이었고, 그동안은 이 방법이 제법 유용했던 것 같았습니다.
제가 내담자의 성적인 표현에 대해 불쾌하거나 불편한 마음만 갖게 되었다면, 혹은 아직 내가 남성으로서 매력이 죽지 않았구나 하면서 으쓱해했다면 내담자의 진짜 마음을 알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내담자의 성적인 표현 이면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담자의 말이나 행동들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6.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해나가는 내내 오열했습니다. 그 눈물들이 아버지의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는지를 증명하는 것 같아 지켜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시진 않겠지만 더 이상 참지 않고 실컷 우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본인의 울음을 들어주는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최소한 외롭게 울지는 않을 것 같아 위안을 삼았습니다.
7. 기쁨도 나눌 사람이 없다면 안타까운 일인데, 슬픔을 같이 나눌 사람이 없는 건 더욱 가슴 아픈 일인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나눌 사람이 없어 상담실에 오시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게 참 외롭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롭다는 건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줄 누군가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 내담자가 ‘딸, 오늘 하루 어땠어?’ 이런 말을 건네 줄 아버지가 없으셨던 것처럼.
지금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 줄 누군가가 없다면 우선 스스로에게 어떤 말이든 건네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