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래도 Jan 20. 2024

내 탓이오

1. ‘전부 내 탓 같아요.’ 하시는 분들을 종종 뵙게 되는데 주로 우울함 때문에 상담실에 오시는 분들이십니다. 일이든, 관계든 모든 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들에 대해 듣다 보면 실제로는 내 탓을 할 필요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설득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설명한들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객관적 사실과 상관없이 주관적으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모든 게 ‘내 탓’ 같다고 하시는 분들은 그렇게라도 본인의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모든 상황에서 ‘내 탓’이 될 만큼 나는 영향력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면 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시게 되었을까요? 삶에서 중요한 누군가를 통해 오해(?)하시게 된 사정이 있는 듯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신의 기준과 가치를 자녀에게 강요하는 경우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 어렵습니다. 부모가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부모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자녀는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자신에 대한 평가 기준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 타인에게 있다는 점입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난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타인에게 있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되고, 자신 역시 타인을 평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타인도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타인의 평가가 두렵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날까 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4. 종종 ‘자기소개’ 하는 경우들을 듣다 보면 직업, 출신 학교, 사는 아파트 등을 얘기하는데 이는 ‘나는 누구인가’라기보다 ‘나는 무엇인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무엇’이 중요한 세상에 살고 있긴 하지만 우리는 왜 ‘무엇’이 ‘나’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살고 있는 아파트 이름이 나란 사람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일까요?     


5. 살아오면서 어떤 모습이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면 ‘누군가와 같은 삶’을 살려하거나 ‘누구처럼은 살지 않겠어.’ 하며 여전히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닌, ‘타인’에게 매인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매인 삶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과 가치를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삶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이것이 맞을까, 저것이 맞을까 잘 알긴 어려울 수 있지만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으신가요?"

이전 07화 라면 먹고 갈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