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은영선생님 덕분에 정신과나 상담실 문턱이 낮아진 것 같아 감사한 생각이 들면서도 최근 들어 ‘금쪽같은 내 새끼’의 오은영선생님처럼 몇 마디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길 기대하고 상담실에 오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고, 그만큼 힘드신 일이신가 보다 생각하게 됩니다.
2. ‘해결책’을 요청받게 될 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해결책을 요청하시는 저분의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입니다. 제가 상담자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증상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증상 이면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증상들이 비슷하더라도 그 이면의 마음은 다를 수 있습니다. 증상은 우리를 괴롭히려는 목적보다 증상을 통해 우리에게 정말 힘든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결책을 요청하는 것을 증상으로 본다면 해결책을 요청하는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함을 갖게 됩니다.
3. ‘선생님이 전문가니 해결책을 제시해 주세요.’ 하는 요청을 받게 되면 저는 우선 ‘같이 고민해 볼까요?’라고 말씀드립니다.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지만, 제 나름의 해결책을 말씀드려도 이미 해보신 방법이거나 도움이 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상담실에 오신 분들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에서 해결책부터 제시한다면 오히려 피해를 드릴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상황을 신중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뺏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상황을 신중하게 살펴보는 기회가 있어야 늘 누군가에게 해결책을 요청하지 않고도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4. 사실, 상담자 입장에서 그럴듯한 답을 드리는 게 어떤 면에서는 훨씬 품이 덜 듭니다. 오히려 답이 없는 것 같은 막막한 상황을 같이 고민하고 견디는 게 저로서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대부분 상담실에 오시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고 오셨을 텐데 그분들의 어려움들이 ‘전문가’ 몇 마디에 해결될 일은 대체로 아닐 테니까요.
해결책을 제시해 주길 요청하는 분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정작 본인이 원하는 것에 대해선 잘 모르고 계신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계의 비극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나의 욕구를 상대가 알아서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인 것 같습니다.